사계절의 풍광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by marina

-가을-


근래 들어 우리가 생활하기 좋은 환경인 가을의 시간은 다른 계절에 비해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했던 시절에는, 3월, 4월, 5월은 봄, 6월, 7월, 8월은 여름, 9월, 10월, 11월은 가을, 12월, 1월, 2월은 겨울로 3개월씩 각각의 계절이 그 시간들을 영유하며 분명한 자기만의 색깔들을 내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온의 변화로 인하여 계절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고 온도가 높아지는 계절이 더 길어지는 현상으로 계절이 변화되어 인간의 지나친 교만과 과욕이 만들어 낸 상흔이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들기도 한다. 이는 사람이 좀 더 손쉬운 방법으로 편리한 생활만을 추구하다 보니 지구환경에 악영향을 주어 지구 온난화로 인한 다양한 피해를 마치 되돌아오는 부메랑처럼 되돌려 받고 있는 형국이 된 것이다.


계절이 가을로 들어시니 무덥고 부산스러운 여름날을 보내고 난 후라서 인지 계절 특유의 감성도, 가을을 걷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가라앉은 느낌이 든다.

아직은 가을 잎새들도 자기 색을 내지 않고 청청하며 새로이 맞이하는 계절 앞에 숙연해지는 사람들 마음도 초입의 감성인지 그저 차분한 기운이 감돌곤 한다.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흐르니 성숙의 계절 가을이 빠르게 무르익어가고 나뭇가지의 초록 잎 하나하나가 형형색색 예쁜 옷으로 곱게 단장하며 완성을 꿈꾸는 중년(中年)처럼 여유 있고 품격 있게 계절을 구가하니 그 풍성함은 절정에 이르러 사람들의 마음은 가을이 그가 되고 그가 가을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단풍에 물들고 갈잎에 스며들어 가을 길을 따라 정처 없이 걷기도 하고 여행에 빠져 들기도 한다.


한편 가을걷이로 풍성해진 사람들 마음은 완성의 절정을 경험하듯 들뜨기도, 낙담하기도 하며 노력으로 인한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여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을 보이기도 하여 이는 계절이 주는 감성의 여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계절의 깊이를 달리하는 변화들이 시야에 들고 계절의 끝을 향해 달리는 시간의 흐름이 속도를 달리하는 듯한 시간이 오면 사람들 마음은 점차 경건해져 가을의 숨결을 자신의 삶 속에 고스란히 받아들여 숙고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는 듯하며, 그와 더불어 계절의 각종 행사에도 응하여 깊어가는 계절의 향취에 동행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가을만이 주는 특유의 은밀함과 섬세함 그리고 한 계절에서 모두 느낄 수 있는 삶의 과정들을 경험하게 되는 계절이기에 그런 것 같다.


색색의 화려한 나뭇잎들이 하나 둘 그들의 삶을 등지고 낙하하는 시간이 오면, 가을 끝자락이 되어 나뭇잎은 살랑바람에도 가련한 낙엽이 되어가고 벗들과 이별에도 한 점 미련을 남기지 않으며,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을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여 그에 반하지 않고 의연하고, 담담하게 낙하하여 가을 대지에서 계절 시간의 마지막을 아낌없이 영유한다.

그들 바스락 소리의 가벼운 음률은 오히려 탄성과 절규로 들려 우리의 가슴을 더 허무하게 하고.


낙엽 하면 생각나는 프랑스의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의 詩 '낙엽'은 절절한 외로움이 가슴 깊숙이 파고 들어와 마음을 무척이나 저리게 하는 詩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생략)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니.'


구르몽의 이 詩 부분, 구절구절은 우리 마음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낙엽이 나인 듯, 내가 낙엽인 듯,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인간의 삶에 빗대어 봐도 낙엽과 외로움에 대한 교류가 가능할 듯한 착각을 불러 그에 동화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가을의 명상은 사람을 깊이 있게 변화시키고 '주제를 알라'는 통찰의 시간을 주며 세월의 무게만큼의 책임을 가지고 숫자를 인지하며 살라는 깨달음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도 언젠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하늘 여행의 당사자가 될 것이니 말이다.



-겨울-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은 차가운 냉기가 감돌지만 유독 북풍의 갑질이 심하게 작용하여 사람 마음까지도 서늘하게 하는 특유의 심술과 심통이 있어 사람들 마음을 심히 겁박하여 방콕을 유도하기도 한다.


거기에 겨울나라의 한설이 겹치는 극한 환경이 이어지면 침묵의 계절은 슬그머니 내면으로 스며들어 고독을 자극하며 외로움을 곁들이기에 계절에 빠져드는 명상은 짧고 깊이 있게 마무리하여야 하며 계절의 무거움은 한풀씩 내려놓아야 견디게 되는 계절이 된다.


안온한 곳에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겨울 나라는 환상적이며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백설로 물들여진 대지는 그림을 그려놓은 듯 하얀 뱔 자국이 여기저기 나들이에 나서고 가지마다 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경국지색도 부럽지 않을 만큼의 품격 있는 아름다움을 보인다.

때때로 심통 부리는 된바람의 경거망동만 아니면 마음 풀어놓고 겨울 풍경을 즐길 만도 한데, 그 하얀 바람은 그의 사명인지라 타박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음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겨울의 하얀 눈은 사람들의 여건에 따라 좋기도, 싫기도, 즐겁게도, 불편하게도 생각한다.

꿈으로 가득 차 있는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은 하늘에서 선물처럼 내리는 하얀 눈에 반응하여 환성을 지르기도 하며 추워도,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웃고 떠들며 흰 눈 내린 하얀 나라를 동심의 나라로 만든다.


내 어린 시절은 어느 집이나 아이들이 있는 집은 대문 앞의 눈사람은 기본으로 만들어 놓고 동무인 양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하며 뿌듯하게 바라보곤 했었다.

좀 더 멋지게 동무의 외양을 꾸미기 위해 눈과 눈썹은 숯으로 일자 눈썹을 붙이고 입술은 빨간 수수깡이나 당근, 고추 등으로 정성스레 붙여 제법 그럴듯하게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는 행여 눈사람이 추울까 염려되어 모자를 씌워 놓기도 하고, 더 고운 심성의 아이들은 눈사람을 난로가 옆에다 가져다 놓기도 하였다.

이렇듯 순수한 마음은 성장하면서, 생활에 치이면서, 순수성을 잃게 되고 편리성을 찾게 되어 계절에 맞는 환경의 필요성 충족을 외면하며 눈 내리는 환경을 감사보다는 귀찮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꿈을 키우는 선물이 생활인에게는 불편한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겨울의 냉랭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드물어서인지 그 쓸쓸함이 한계치를 넘나들 정도로 적막하다.

찬바람만이 스쳐지나니 기댈 곳 없는 마음들이 온기를 찾기 바쁘고 가게마다 호빵기계들이 빵을 덥히느라 뱅뱅 돌고 있지만 따스한 김은 기계 안에서만 돌뿐 밖으로 온기를 뿜어대지는 않는다. 간혹 어묵 장사의 포장마차에서 포근포근 올라오는 따뜻한 김이 차가운 거리를 그나마 조금 덥이고 있을 뿐이다.


겨울의 적막하고 긴 긴 밤은 우리를 주전부리의 세계로 초대하여 조금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즐거움의 한 자락이라고 감히 선언할 수 있는 것 같다.

붕어가 들어있지 않은 붕어빵, 뜨끈한 국물의 꼬치 어묵, 특유의 구수하고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군고구마와 군밤 등이 겨울 최상의 간식거리가 되어 우리를 유혹하고, 한기로 인한 몸의 떨림을 단번에 가시게 하는 어묵의 뜨끈 시원한 국물은 한 모금에도 온기의 수호자가 되어 언 몸을 감싸며, 달콤하고 보슬보슬하여 사르르 녹는 군고구마는 뜨거운 껍질을 까느라 손이 무척이나 바쁘지만, 그 즐거운 기다림이 군침을 돌게 하여 모락모락 나는 김의 뜨거움도 불사하고 한입 딱 베어 물면 '앗 뜨거워' 소리와 더불어 입천장이 데기도 하지만 그 달콤한 맛은 공감 백 프로가 되어 여전히 반복하는 겨울의 낭만이 되지 않나 생각하게 한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시간상으로 따져보면 거의 같은 비율로 사계절이 나누어지지만, 밖으로의 자유로운 활동이 쉽지 않은 환경 조건이 사람의 감정을 억압하는 탓인지 겨울은 너무 길고 긴 시간으로 느껴진다. 물론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환경 조건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스키를 타거나 기타 활동에 열을 올리기에 시간을 이기는 사람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추위는 사람을 회피하게 하여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위대한 자연의 엄중함은 게으름을 불허하고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며 계절 계절에 합당한 환경 조건을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사명을 가진다. 그러하기에 겨울은 음지에서도 그의 사명인 새 생명을 키워내는 창조작업을 꾸준히 실행하며 적절한 시기에 희망이라는 힘을 경이롭게 펼쳐내기 위해 내적인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겨울이 긴 시간 희생으로 지켜낸 생명의 힘으로 인한 새싹 움트는 봄, 잎이 자라나 꽃이 피어나는 봄, 따뜻한 햇살과 바람이 봄의 대지를 꿈꾸게 하는 봄이 서서히 대지에 희망을 품고 내려앉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순환의 역사가 실현된다.



우리나라 사계절의 변화는 계절마다 경이롭고 아름답다. 선택된 나라만이 누릴 수 있는 사계의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음은 무한 축복이며 감사함이다.

그러하기에 계절들의 특색을 잘 살펴 각각의 계절에 맞는 고유의 색깔을 잘 지켜내도록 해야 하며 그것은 계절의 빛이 혼동되거나 엇박자를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우리의 책임의식에서 나오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 하나의 노력, 나 하나의 행동'이 다수의 마음이 되어 소중한 많은 가치들을 지켜낼 수 있음을 인지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