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등반 그 무모한 도전(1)

하루에 이루어진 기적의 시간들

by marina

-1화. 하루에 이루어진 기적의 시간들-설악산 정상 대청봉 1708m-



설악 품으로 들어서 그 길을 걷다 보면 계곡에서 들려오는 웅장한 계곡 물소리의 깊은 울림이 주는 무게에 마음 경건해지며 마치 신선이 머무는 신성한 곳에 들어선 듯한 위엄이 느껴져 엄숙한 마음에 발걸음도 조심스럽게 내딛게 된다.

내설악 초입부터 짙게 풍겨오는 더덕 향 또한 그 특유의 풍미를 실감케 하는데 자연이 품은 신비로움과 고요함 속에 아늑함은 그 어떤 표현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묘하고 비밀스러운 마력을 지닌 것 같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자연의 품에서 얻어지는 것임을 새삼스레 느끼며 마음속 내재되어 있는 원인 모를 어떤 불안이 한낱 기우에 불과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에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구속받지 않는 의지로 진정한 휴식을 취함은 나다운 나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온전히 설악의 안온한 품에서 쉬지 않는 발걸음에 편안함을 얹어 걷고 또 걸으며 그를 기억의 영역으로 간직하는 소중한 작업을 계속한다.

자아도취에 빠져든 까닭인지 울창한 푸른 숲과 묵언의 대화를 나누며 한참 산길을 걷다 보니 또다시 시원한 계곡 물소리가 들려오고 길게 뻗은 너른 계곡의 풍광이 다시금 나타나는데 그 이름하여 수렴동 계곡이란다.


숲이 뿜어내는 맑은 공기와 신선한 숲의 바람과 함께 경쾌한 물소리를 들으니 몰려들던 피로감이 씻은 듯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면서 술에 취함이 아닌 물에 취함으로 인하여 설악의 깊은 품으로 들어서는 걸 잠시 멈추고 그와의 은밀한 만남을 시도하며 맑은 계곡물에 손발을 담가 휘저어 본다.

시원시원한 그를 내게로 온전히 받아들이니 내 어린 시절 개울물에서 동무들과 물놀이하던 생각이 맑은 물속에 스며들어 그와 함께 잠시 추억놀이에 빠져 흐르는 시간을 잊고 있었다.


갈 길은 멀고 시간은 멈춰있지 않으니 마냥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을 터, 잠시라도 쉼의 시간을 가진 것에 감사하며 수렴동계곡을 끼고 다시 설악산 정상을 향해 출발이다.


껑충껑충 돌다리도 건너뛰고 첨벙첨벙 운동화를 적셔 물장구도 치면서 더위를 식히며 자연을 걸으니 운동화의 비명도, 물소리의 경쾌함도 즐거움으로 인지되니 무거운 발걸음도 어느새 잊게 되어 나는 듯한 가벼움으로 그 숲에 거주하는 산사람이 되어가고 대청봉에 남겨질 내 아름다운 궤적을 생각하며 그 뿌듯함에 피로감도 마다하고 정신적 승리를 외치며 신난 발걸음을 재촉한다.


한 시간을 걷고 두 시간을 걷고 서너댓 시간을 거의 쉼도 없이 거대한 바위를 올라타 넘기도 하고 급경사진 험준한 산길을 온몸의 힘을 이용하여 힘겹게 오르기도 하며 체력을 소모하다 보니 정신적 무장도 무력해지고 신나던 발걸음은 흔적도 없어지며 점점 기력이 쇠해짐에 따라 이 고난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가에 대한 초조함과 선택의 여지없는 상황들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별다른 대책도 없고 기진맥진할 지경이니 쉬어서나 가야겠다 싶어 바위에 누우니 이 세상인가 저 세상인가 가물가물 정신이 흐릿해지며 잠이 쏟아지는 듯했다.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는 계곡의 웅장한 물소리 음률은 자장가가 되어 나를 재우려 하고 지친 몸은 그에 답하여 스르륵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의 손이 나를 일으켜 세우며 서두르자 한다.


다시 정신을 차려 힘을 내어 걷고 산 정상을 밟고 내려가는 사람들의 의지를 보고 또다시 기운을 차리며 걷고 그렇게 험난한 여정을 계속 이어 나간다.

평지도 걷기 힘든 수 시간을 험준한 산을 오르며 걷다 보니 아름다운 궤적에 대한 의지도 약해지고 눕고만 싶은 곤혹스러운 심정이 되어 바위에 또다시 걸터앉아 보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쪼아대니 편히 쉬어 갈 수도 없는 지경이 되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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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르면 대청봉이냐'라고 정상을 밟고 활기차게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정상 도착 거리 측정을 물어보면 한결같은 대답에 희망을 걸고 또다시 온몸에 있는 힘을 긁어모으며 걷는다.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입니다' '머지않아요. 코 앞이 정상입니다. 힘내세요' '파이팅!'


세상에 그 말들이 얼마나 고맙고 위로가 되는지 조금만 더 가면 목표지점이라는 희망이, 버겁고 묵직한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 다시 정상을 향해 오르고, 걷고 또 걸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에 있는 절이라는 봉정암이 보인다. 봉정암이라는 절을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가 있었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불자는 아니지만 그 많은 사람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새벽에 시작된 산행이 끝도 없을 것 같이 이어지며 사투의 10여 시간이 되어 가고 거의 다 왔다는 산 사람들의 말이 응원의 말이었다는 것을 깨달음 즈음이 되니 드디어 애타게 바라던 대청봉의 정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중청에 들어서게 되고 그와 동시에 징징대던 감정은 어디로 갔나 싶게 나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만을 하게 한다. 더불어 중청의 경사도가 완만하여 대청봉까지의 길이 수월할 것이라는 안도감도 함께 들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중청에 핀 소담스러운 풀꽃들을 보면 대부분 키가 작고 아기자기함을 지닌 작은 꽃들이다. 고지대라 바람도 많이 불고 환경적 영향으로 기후에 적합한 꽃이 피어나겠지만, 그들의 강인한 모습은 가히 찬사를 받아도 될 만큼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어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또한 중청의 모질고 거친 강풍은 때론 사람도 날릴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파워를 지녔는데 그 위엄과 그에 견디는 중청 풀꽃들의 강인함이 합치되어 내 보이는 그들의 숨결은 중청을 더 빛나게 하는 기운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그와 더불어 중청에서 바라보이는 대청봉이 30분에서 40분의 근거리로 한 발을 내딛기 어려운 지경으로 지쳤다 하더라도 거뜬히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침에 더 희망이 생겨 중청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느꼈던 것 같다.


중청에서 무서운 된바람과 맞서면서도 그나마 잔잔하게 오를 수 있다는 희망에 위로를 받으며 무거워진 발걸음을 한 발 한발 딛다 보니 드디어 그리도 오르고 싶었던 설악의 최고봉 대청봉 정상에 도착!


말로만 듣고 그림으로만 감상하였던 '1708m'의 아름다운 설악산 정상 대청봉, 드디어 정상의 고지를 정복한 것이다.


표지석에 새겨진 '대청봉'이라는 그 빛나는 이름을 보니 힘들었던 여정이 싹 가시고 감격의 물결이 거센 파도일 듯 세차게 밀려오는데 형언할 수 없는 그 마음을 붙잡고 주위를 둘러보니 표현 불가의 감동이 나를 정지된 시간으로 끌어가 순간 움직임을 멈추게 한다.


파랗고 청정한 하늘빛과 장엄하고 수려한 산세, 높낮이의 조화를 이루며 웅장하게 우뚝 솟아오른 산봉우리와 대청봉 둘레를 품어 안은 운무, 마치 신선이 머무는 비밀스러운 공간인 듯 신비롭고 경이로워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극치의 아름다움이 이곳에 발을 들여 논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았다.


지상도 아니고 천상도 아닌 그 합 점이 존재하는 중간세계의 고요한 침묵에서 전해지는 신묘함으로 인한 위압감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이리라 생각하며 신비로운 이곳에 들도록 허락한 존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묵언으로 전한다.


오늘 하루의 시간이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목표를 향한 결연한 의지로 달성한 성과에 대한 보상은 당연한 처사이기에 몸은 힘들어도 설악산 정상에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은 다 마음에 담고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청봉이라고 쓴 표지석을 끼고 돌아서 산아래 세상을 내려다본다.


설악 나무숲 가득히 이곳을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사연이 총천연색으로 이야기 숲을 이루고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른 그야말로 천상에서 지상세계를 내려보는 듯 설악 전체의 초록 물결이 한눈에 들어오며 동해의 푸른 바다 빛이 선명하게 그 위상을 드러내는데 그 아름다운 풍광은 표현불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을 흔들고 있어 햇살에 기대어 한동안 그 세상을 바라본다.


잠시의 시간은 또 그렇게 흐르고 대청봉의 바위에 잠시 고단한 몸을 뉘어 휴식을 취하고 있자니 대청봉 등정을 함께 한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의 소리가 웃음을 머금게 하며 하고자 하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니 힘을 내자는 내 마음의 토닥임이 나의 투지와 투쟁의 근성을 건드린다.


'여기 올라온 아가씨들은 건강 검진이 필요 없어요. 여기까지 올라온 게 건강하다는 증거지 다른 게 뭐 필요해' 그 응원의 소리를 백번 인정하며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켜 어둠이 산을 뒤덮기 전 하산을 해야 하기에 서둘러 하산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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