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기다. 이름 그대로를 풀어헤치면 빈 기운이다. 그런데 기운이 있으면서도 비어 있다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그래서 그런지, 온 생명 있는 것들은 우리 공기에 절대적으로 신세를 지면서도 그냥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존재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어디 물에 빠지거나 지하 깊은 곳, 불에 갇혀 질식할 때쯤이나 겨우 우리 존재를 간절히 찾아 부르짖는다. 그렇게 우린 생명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잘 듣지 못하고 지낸다. 심지어는 우리 몸을 마구 뒤집어 화석 연료 따위를 섞고는 시커멓고 매캐하게 만든다. 우린 이런 세상에서 점점 살아가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화성이나 달, 그 밖의 다른 별로 옮겨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이르렀다. 여태까지는 우릴 조금 뜨겁게 하거나 맵싸하게 만들어도 같이 지낸 정이 있어 그냥 참았다. 하지만 이젠 정도가 도를 넘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여전히 우리 몸을 뜨겁게 만들고 있을뿐더러, 온갖 공해 물질을 우리 속으로 내뿜는다. 우리가 공기라 불려 아무 공간도 차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공간은 우리 차지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공간을 인간이 앗아가 점점 빈 곳이 없어졌다. 바닷물, 강물도 따뜻해지니 우린 뜨거운 곳을 피해 하늘로 오르다가 대기권에 갇혔다. 그런데 우리는 밀리고 밀려 순환이란 걸 하다가 북극에도 남극에도 다다랐다. 생전 처음 발을 디딘 곳이다. 거긴 정말 춥다. 온몸이 꽝꽝 얼어붙는 곳인데도, 예전보다는 덜 매서운 모양이다. 우리가 지나는 곳마다 과거에는 꼼짝도 않던 빙하가 녹아내린다. 이게 붙박이 같은 빙산에게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기회를 주니 매우 고마운 일일텐 데, 인간들만이 우려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북극곰도 펭귄도 걱정하는 걸 보면 좋은 건 빙산에게만 있는 걸까?
그럼 인간이 한대 지방에 사는 생물들과 협력해서 사태를 개선시키면 될 텐데,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같은 인간끼리도 저리 티격태격 싸우며 더욱 한 조각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연구 목적 이라는 미명하에 극지방을 다투어 쪼개 가지고 있다. 우리 공기도 이젠 더 떠밀려 나갈 틈이 안 보인다. 지금은 대기권에 묶여 있지만, 언젠가는 중력이란 게 바뀌어 더 이상 우리를 붙잡아 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더 이상은 지금처럼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린 딱한 게 없다. 이 지구상 생명들이야 자기들 탓이지 우리 공기가 해꿏이해서 벌어진 일은 아니다. 우리가 떠나가면 지구는 지금의 다른 별처럼 생명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공기도 살아야 하니, 다른 일을 돌볼 여유가 없다. 그러니 제발 생물종끼리, 또 인간종끼리 깊은 반성을 동반한 타협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린 더 이상 기다려줄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