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날씨가 선선해졌다. 벌어질 일은 일어난다고 하듯이 계절이 바뀌기는 하는 모양이다. 태풍이 예고된 탓인지 길가에는 낙엽과 나뭇가지가 떨어져 어지럽게 뒹군다. 그중에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 열매도 떨어져 있다. 발에 밟히든 차바퀴에 깔리든 터진 열매는 짓무르고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사람들은 코를 틀어막고는 이 열매 덩어리를 피해 다닌다. 만약 저게 돈이었으면? 알다시피 은행 열매는 그 열매가 속을 드러내었을 땐 예전의 주판알을 닮아 '돈'을 상징하는 것이다. 혹은 나뭇가지 가득히 잔뜩 열매를 매달아 번영의 상징으로 새겨졌는 지도 모르겠다. 우연찮게 뜻은 다르지만, 돈의 유통 매개체, 은행(bank)과 표기가 같다. 참 희한한 우연이다. 근본주의 도덕론자 입장에서는 부를 축적하는 것은 아무리 변멍을 대더라도 정당시 하지 않는다. 어떤 태도가 개입하든 돈은 타인의 교환, 부의 축적 기회를 뺏지 않고는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회는 이 교환 수단을 없애고는 굴러가지 못한다. 문제는 그것의 과도한 보유와 거기에 따르는 인적, 물적 지배이다. 심지어는 사람이라는 존재조차 지워버릴 정도로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데 있다. 길가에 널브러진 은행 열매를 보면 참 묘한 생각이 든다. 화폐가 가상의 관계이듯이, 은행 열매도 상징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돈이라는 이 상징물은 땅바닥에 떨어져 짓뭉개지는 순간, 사람들의 외면을 당한다. 마치 돈은 본래 구린 냄새를 풍기는 상징물이라는 듯 말이다. 그것은 무슨 도덕적 설명을 붙이지 않더라도 은행 열매의 냄새가 발산하는 은유처럼 말이다. 거기에다가 은행 열매는 겉껍질을 제거한 알맹이는 식용으로도 쓰인다. 그 효능은 혈액 순환, 뇌건강, 피부 건강하면서 말이다. 외면받는 이 열매는 역겨운 냄새를 제거해 다시 돈이 되는 거래물이 된다. 우리는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자신마저 상실하는 경우를 여럿 본다. 그런데 그건 은행 열매의 비유에는 미칠 바가 아니다. 그 구린 냄새를 풍기는 열매를 잘 가공하면 사람에게는 약이 되지만, 돈의 경우에는 그 성격 전환이 약하다. 돈을 버는 과정에서의 온갖 바람직하지 않은 냄새를 지운다고 해서 건강한 투입물로 작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것이 가진 본래 기능이 그렇지 않은 경우 말고도 어떤 것이 있을까? 요즘이야 은행 열매도 그 나무를 관리하는 지자체를 통해 수매하지 않는 한 수집이 불법화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근본으로 동전 같은 열매를, 지폐 같은 은행잎을 마구 날린다. 자신의 다음 개체를 위해 양껏 유전자와 자양분을 뿌려 대는 것이다. 그것을 취득하는 데는 분별이 없다. 돈도 그러하긴 하다. 제 능력에 따라 수확하면 된다. 하지만 어째 그것을 수집하는 과정에서의 불편한 향기(?)만큼은 참 많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