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stit Oct 05. 2024

로고스와 아이스테시스


나, 아이스테시스와  로고스는 이란성쌍둥이다. 그와 나는 불과 몇 분 차이로 형과 동생으로 갈렸다. 이런 우연한 사건에 나,  아이스테시스는 불만이다. 사실 그는 나보다 늦게 착상되었지만 로고스 형이 연속으로 수정되는 바람에 엄마 뱃속에서 나는 뒷 공간으로 밀렸다. 그래서 세상의 빛은 형 로고스에게 먼저 비쳤다. 그런데 사람들은 소위 전부노출설에 의해 출생의 선후를 따지는 게 관행이고 법으로도 그렇게 되어 있다. 그래서 먼저 울음을 터뜨린  로고스는 형이 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자연적 선순위이지만 형, 로고스는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맏이가 된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서로 비슷하게 생긴 탓에 그 행동거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비교 대상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슬프고 기쁘고 화가 나고 기다려야 하는 일 등에 자제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데 형 로고스는 형답다는 말 같잖게 침착하다. 얼굴에 있는 근육이란 근육은 다 동원해 입을 쩍 벌리고 경악할 경우가 생겨도 형은 얼음장처럼 차분하다. 이런 모습에 사람들은 때로는 '어쩌면
이렇게 침착하냐고? 과연 형답다"는 감탄을 뱉어낸다. 또 다른 편에서는 "어린 나이 답지 않게 얼음장같이 차갑다. 가끔씩 소름이 끼친다"라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가 마냥 로고스에게
떨어지는 호평만을 쳐다보고 있는 건 아니다. 이웃에게 슬픈 일이 생기면 필요 이상으로 연민을 표현한다든지, 기쁜 일에는 누구보다도 내 일처럼 즐거워 껑충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애로 칭찬한다. 이런 격려에는 나도 흐뭇하다. 형 로고스는 차분한 성격으로 공부를 잘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라면 대략 잘 수행해 나가는 편이다. 그는 수학뿐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쓰는 작문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다. 이에 대해 나는 글자로 짓이겨진 것이나 무엇을 낑낑 거리며 생각하는 일에는 별로 적성이 안 맞다. 하지만 그림이나 음악은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주변 친구들과 무리 져 어울리는 일은 참 좋다. 나는 무엇을 차분하게 생각해 말하기보다는, 바로 느껴지는 것을 말하기 좋아한다. 그래서 형에 비해 실수가 잦아 부모님께 꾸지람을 많이 듣는 편이다.

이제 나 아이스테시스와 형 로고스는 사회에 나가 사회인으로 살아갈 시간이다. 형은 주변의 기대와 같이 좋은 학교를 나와 이름 있는 직장에 다닌다. 그가 하는 일은 복잡한 수식을 동원해 미래를 예측하고 투자를 담당하는 일이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한껏 발휘하는 것 같다. 가끔씩 TV에도 나와 경제 전망이니 하는 걸 읊조린다. 뭔 차트를 짚어가면서 앞날을 설명한다. 멋있어 보인다.
나는 뭘 하느냐고?
어쩌다 보니 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은 글쟁이가 되었다. 하루 종일 무얼 중얼거리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낙엽 구르는 소리, 곁에서 깔깔거리는
애들의 뛰노는 모습이 좋다. 그러다 보니 먹이 구하는 일은 부실하다. 그래도 비좁고 중력이 내려앉는
갇힌 공간에 갇혀 사는 것보다는 낫다.
로고스 형은 이런 나를 딱하다는 듯 쳐다본다. 하지만 쌍둥이라도 모든 면에서 다르듯, 각자의 삶도 스스로에게 맡겨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꾸역꾸역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형 로고스에 대한 이야기가 영상을 타고 흐르는 것이 아닌가?
수 백명의 투자자들이 하루아침에 휴지로 변한 증서를 들고 형의 회사 앞으로 몰려들어 거친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나운서의 멘트에는 수십 년간 시장 난전판에서 코 묻은 돈을 몽땅 날렸다는 할머니, 다음 달이면 결혼을 앞둔 젊은 한쌍이 결혼자금을 홀라당 날렸다는 등 그들의 뼈이픈 사연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영민한 형은 차가운 머리로 사람들 수익을 관리했건만!
사람들은 웅성거린다. 남이야 어찌 되든 제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한낱  희망이라는 조각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 주머니를 터느냐고?
니는 믿기지 않는다. 그토록 냉철하던 형이 남을 희생시키면서 이런 일에? 연루되다니!
나는 가진 게 별로 없다. 그래서 남을 대할 때에도 별
계산식을 적용하지는 않는다. 그럴 머리도 없음이 오히려 다행 아닌가?
그나저나 형이 걱정이다. 한순간에 부모님의 긍지가
무너져 내리다니?
이제 몸져누운 부모님은 오롯이 내가 돌봐야 할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 병은 머리로 낫게
하는 게 아니라, 아직도 철없어 보이지만 나의 위로와 공감으로만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