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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t Oct 04. 2024

고양이라서 미안합니다



나는 고양이다 표범 사자 호랑이 삵 등이 나의 형제들이다. 그런데 형제들은 모두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등을 갖추고 몸집들도 다 크다. 걔들이 나를 야생에서 만나면 알아보기나 할까? 그저 작고 형편없는  가벼운 먹이 정도로나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비슷한 처지라면 삵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애는  다르다. 애는 무엇으로 쓸려고 하는지 사람들이 마구 잡아 없앴다가는 최근엔 우리나라에서도 멸종위기 2급에 해당하는 동물로 보호하는 별도 타이틀을 가졌다. 그럼 덩지 큰 형제들은 자신을 지키는 데 별 지장이 없어 그냥 호랑이, 사자 따위로만 부르고 자연에 그냥 두었을까? 그들도 멸종 위기 형제들이라 각별한 대접을 받는다. 물론 이들에게도 삶은 힘들다. 인간종은 보라는 듯이 그 덩지 큰 형제들을 붙잡아 가죽을 벗기고 박제를 해서 인간이 더 우월하다는 과시를 해댔다. 심지어는 자비를 베푸는 정도가 동물원 우리에 가두어 구경거리로 삼는 것이다. 최근엔 이 마저도 먹이를 댈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갈비 사자 같은 흉측한 짓을 저질렀다. 이런 형제들의 수난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처지가 남다른 것이 아니다.
나 같은 고양이는 그나마 인간과 가깝게 지내도록 적응해  그들의 그늘에 묻혀 산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물을 우리에게 나눠줬지만, 요즘에는 우리도 사료라는 것을 즐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게 그렇다. 갖은 애교와  앙증맞음으로 사랑받으려 애쓰지만, 싫증을 내거나 그 먹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을 때는 인근 산이고 길바닥에 내버려진다. 내 주변에도 밤길을 어슬렁거리며 동정심을 일으키기 위해 인간종의 어린 개체 소리를 흉내 내며 하소연하는 것들이 많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무사히도  주인들에게 쫓겨나지 않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하는 일이라곤 가끔씩 집사에게 몸을 비비거나 발라당 뒤집기를 시전 하면 된다.
만족한 듯이 그루밍을 발산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가끔씩은 집사가 내 무뚝뚝함과 충성도를 의심하는 말을 하곤 한다.
"친구네에서는 강아지를 키우는 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꼬리를 흔들면서 어찌나 살갑게 애교를 피우는지.."
개에게서 내 존재는 마구 밀려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루 16시간 자는 시늉을 해도 실은 다 합쳐야 두 시간도 채 수면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개는 늑대 형제들처럼 차라리 사람을 지켜주는 것이고,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것처럼 군다. 하지만 나는 어쩌겠는가? 사자나 호랑이같이 맹수가 아니고 어쩌다 보니 작은 몸집으로 태어난 마당에 경계심만 그들 덩지처럼 클 뿐, 스스로의 방어능력이 부족해 항상 긴장해 살뿐이다. 그러다 보니 함부로 마음을 열 수가 없다.
자연 인간에 대한 충성도, 친근도는 개들에 비해서는 약하다. 하지만 우린 그 대신에 집사들에게 깔끔한 모습을 보이려 애쓴다. 대소변쯤은 티 나지 않게 일을 치르고 나서는 모래로 덮어 버린다. 이런 작은 노럭들이 빛을 발하는 것일까?
요즘은 동물복지라는 게 떠올라 그나마 집사들에게 버림을 받아도, 캣 맘이라는 고마운 사림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충성을 다한 개들이 유기되었을 때
겪는 고충에 비하면 한결 혜택을 받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개체가 늘어나는 것을 인간들이 반기지는 않는 모양이다. 어느 한 시기가 되면 인간들은 우리 길냥이 친구들을 포획해 중성화 수술이란 걸 시행한 후 도로 놓아준다. 물론 집에서 돌봄을 받는 동족들도 이런 일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암튼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 울타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먹이며  물이며 놀이 기구, 숨는 걸 좋아하는 습성을 존중한
각종 설비들을 설치해 준다. 혹 아픈 데가 없는지,
닥칠 병은 없을지 정기검진도 시켜준다. 이런 보살핌이면, 아프리카나 기타 빈곤국 사람들이 겪는 고통보다는 훨씬 인간 이상의 대우를 받지 않는가!
그럴 때면 사실 불편하기는 하다.
"우리가 개나 고양이보다 못하단 말인가?" 하는 인종주의가 작동하면 괜히 털이 쭈삣서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대부분 남의 이야기에는 잠시 고개
만 끄덕일 뿐  금세 무관심해진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지만 나는 햇살 좋은 날은 창가에 앉아 밖을 쳐다본다. 가끔씩 우리 형제들이 뛰어다니는 풀숲이 그립다. 친구들과 메뚜기를 잡으려고 풀짝 거리던 시절이 그립다. 창살을 쳐다보노라면 바깥 풍경이 나에게 구경거리 인지 내가 지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지 헷갈린다.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친구는 몇 다른 동료와 함께 사는 애도 있다. 하지만 나는 혼자  견뎌야 한다. 이게 얼마나 배부른 소리인지는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연이 그리운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오늘 뉴스에서는 우리 길냥이 형제들에게 화살을 쏜 나쁜 사람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괜히 우울해진다. 고양이는 집 주변 쥐를 잡는 바람에 과거에는 징그럽고 경악스러운 유해 동물을 박멸하는 데 기여한다는 등의 변명 안으로 우리 생존권이 계산되고 있다. 그것마저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고통당하는 인간종에겐 미안하고도 우울한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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