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발칸반도 여행기(18)
약 한달동안 다녀온 터키-발칸반도 그리고 독일 여행을 정리하는 마지막 글이다. 여행 내용이 전부다 그렇지만 여행을 결심하는것 부터 여정 및 마무리까지 많은것들이 즉흥적이었다. 스물한살때부터 꿈꿔왔던 이 여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정리해본다.
첫 번째로 편도 여행을 해봤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첫 번째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종료시간에 쫓기지 않고 내가 원하는대로 모든것을 설계할 수 있다는 면에서 돌아오는 비행기표 없이 출발편만 구매해서 떠나는 여행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그 소원을 풀었다.
사실 편도항공권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실제로 출발지를 고른 이상 많은 여행자들이 다녀온 경로가 있고 그 경로는 나름의 효율과 의미를 담고있다. 마치 한붓그리기를 하는 것 처럼 어떤 점을 지나게 되면 다음 점은 어느정도 예측이 된다. 자연스럽게 다른 여행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고 내 여정 역시 진정 무작위로 선정된 그날그날의 내 느낌만을 쫓았느냐고 물으면 그렇지는 않다. 날씨 문제가 있어서 혹은 내 컨디션에 문제가 생겨서 등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나름 최적의 여행경로를 찾았고 이번에는 마치 오스만투르크가 북진해온 경로와 비슷하게 다녀왔다. 최적이라고 말하긴 어려울지라도 나름 마음에 드는 경로였다.
모든 여행자에게 편도여행이 최고라고 추천하고싶은 마음은 없다. 나도 이번에 편도여행을 경험해봤으니 앞으로 여기에 그리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어릴적 소원을 풀었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다.
둘째로 나의 여행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낯선 이들과의 만남이 만족스러웠다. 스무살 첫 여행을 호주 Backpackers 를 이용해 다니다보니 자연스레 호스텔, 게스트하우스 여행이 체화 되었고 그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 없이 직장생활만 10년 하다보니 그에대한 갈증이 많았었다. 이번 여행도 모든 숙박을 호스텔에서 묵지 않았지만 운좋게도 재미난 사람들과 영감이 되는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아테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라예보 가이드 아저씨, 세르비아 니슈에서 만난 일본 할아버지와 핀란드 친구가 특히 기억이 남는다. 여행경력 40년의 일본 할아버지는 앞으로 내 여행을 어떻게 설계해야할지 영감이 되었다. P의여행 특성상 다음에 어디로갈지 고민하는시간이 마냥 좋기만 하진 않았는데 처음 가는 도시는 일단 그냥 발길닿는 대로 가보는거라고, 아는게 있어야 가고싶고 궁금한 마음이 드는 거라는 그의 이야기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앞으로 당장 가고싶은도시가 없더라도 일단은 빈 공간 없이 색칠공부하듯 여기저기 많이 다녀보겠다.
마지막으로 자주 출장을 다니며 생긴 습관인데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독일에 오래 체류하며 프랑크왕국 그리고 기독교 역사를 많이 공부했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오스만제국, 그리스 그리고 슬리브족의 근현대사를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아는만큼 그 여행지가 재미있었다. 살아있는 역사도시 이스탄불로 시작해 처음부터 공부할 거리가 많았는데 여행이 끝나고 돌이켜보니 참 배운게 많은 여행이라 이부분도 기분이 좋다.
누구나 여행을 하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파묵칼레에서 만난 어떤 친구는 폴란드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혼자다닌다고도 했고, 고프로 배터리를 잃어버린 어떤 친구는 빡세게 한번 돌아보고 싶어서 세계여행을 한다고도 했다. 내 경우에는 다음은 어디로갈지 몰라 불확실함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여기서 느끼는 자유로운 느낌이 좋아 P의 여행을 한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 지 모르겠으나 이 느낌을 잊지 않고 다시 찾으려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여행자들을 다섯 단계로 구분했다.
1. 여행지와 함께 관찰의 대상이 되는 자.
2. 관찰 하는 자.
3. 관찰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자
4. 발견한 것을 몸에 체화 하는 자
5. 돌아와서 그것을 삶속에 적용하는 자.
이제 여행이 끝났고 여행속에서 배운 것들을 적용할 시간이다. 그저 관광객 무리속 한명이 되어 여행지와 함께 관찰이 대상이 되는것만으로 끝나는 여행자가 되고 싶지 않다. 일상 생활속에서도 여행하듯 많은것들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가르침을 찾아 내 삶에 적용하고 살겠다.
이 여행기를 끝으로, 원래 계획하던 기획자들을 위한 개발자 이해하기 글을 시작한다. 여행기를 끝까지 써냈던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싶고, 다음 글도 꼭 매듭지을수 있는 꾸준함이 함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