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차 정생물의 슬럼프
나는 2번째 근무하게 된 학교에서 교무기획과 학년기획을 해보고, 남학생 담임도 했기 때문에 이제 3번째 학교는 어디를 가더라도 수업도 좀 잘하고, 시험 문제도 좀 잘 출제하고, 성별에 관계없이 담임도 잘할 수 있겠다는 오만함에 또 빠져서 3번째 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가려고 생각했다. 2번째 학교는 시내의 막히는 도로를 뚫고 출퇴근을 해야 해서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거기보다 더 멀리 있던 남고에서 초빙인가 선배정으로 오라고 했지만 거절하고 3번째 학교로 집에서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학교를 선택했다. 그 학교는 민원이 많기로 유명한 학교였지만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믿었던 게 문제였을까? 나는 분명 2번째 학교에서 근무하듯이 생활하며 인풋을 했는데 그 학교 학생과 교사의 아웃풋이 너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나와서 또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전입한 첫 해에는 그 학교가 낯설기 때문에 우리 학교라는 말보다 이 학교라는 말을 종종 하게 되는데, 이 학교는 나에게 4년 내내 우리 학교였던 적이 거의 없었던 기억. 그리고 이제 남학생은 나와 맞지 않는 걸까를 고민하며 4번째 학교로 여고를 선택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곳이기도 하다.
첫 해 2학년 담임을 했는데 우린 첫 만남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느낌이었다. 그 당시 이과반이 총 5반이고 그중 2반은 생화반이고, 나머지 3반은 물화생지 선택한 학생이 섞여있었다. 그래서 생명과학을 담당하는 나는 4반 담임, 화학을 담당하는 남자 교사가 5반 담임을 하게 되었다. 그 화학선생님은 수업을 잘해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고, 나는 그해에 전입해서 아이들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기존에 있던 화학샘이 더 좋고 편했을 테니 우리 반 아이들이 5반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느낌을 뭔가 모르게 계속 초반에 받게 되어서 3월부터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없었던 기억.
2번째 남고에서 아이들이랑 잘 지냈다고 생각해서 3번째 남고에서도 그대로 했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건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어려서 그런지 아이들 탓을 했던 것 같다. 성별이 같다고 다 같은 상황이 아닌데 내가 조금 바꿔서 접근해 볼 생각은 안 하고, 내가 이렇게 하는데도 돌아오는 건 이지경이라고? 하면서 이 학교 왜 이래? 이 생각을 4년 내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시기에는 뭔가 좀 케미가 잘 맞는 애들이 많아서 나와 소통을 거부하는 애들한테까지 다가갔다가 또 상처받고, 모든 아이들이 나의 손길을 원하는 게 아닌데 그때만 해도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니까 나의 좋은 영향력을 너는 무조건 받아 가야지 이런 잘못된 생각을 통해 또 슬럼프에 빠지곤 했다.
이 학교가 위치한 지역은 부산의 강남 같은 곳으로 교사가 케어하지 않아도 이미 학부모님과 사교육의 케어를 어렸을 때부터 과하게 받는 아이들이 많은 학교였으므로 모든 아이들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몇몇 삐딱한 아이들이 교사에게 바라는 건 오직 자기 생기부를 잘 써주는 것. 잔소리도 하지 말고, 자기랑 상담도 할 필요 없고, 오로지 자기 생기부를 좋은 말로 빽빽하게 적어주는 담임교사와 교과 교사를 필요로 했다. 생기부는 학부모도 사교육도 해줄 수 없는 것이니까.
9년 차에서 12년 차까지 이 학교에서 보낸 4년은 진짜 이렇게 내 교직 생애 암흑기라고 계속 생각해 왔는데 얼마 전에 이 학교를 졸업한 제자들을 만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들 사진과 명렬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는데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첫 해부터 나는 2-4 담임을 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우리 반 아이들 중에 많은 아이들이 좀 나랑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명렬을 천천히 보는데 총 38명 중에 나와 맞지 않아 나를 힘들게 한 아이들은 3명 정도였다. 10%도 안 되는 지분 때문에 내가 그렇게 힘들어했다니. 그러면서 그 아이들의 7~80%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니... 지나고 나서 과거가 미화된 게 아니라 몇몇 내 기분을 매일매일 건드리는 아이들 때문에 나는 아침에 출근해서부터 교실에 들어가기 싫었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 반 아이들 중에 나랑 안 맞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 수학여행 단체 사진을 보면서 명렬과 비교해서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는데 귀요미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내가 그 학교에서 근무한 4년이 암흑기아 아니라 그때도 나는 귀요미들과 소통하면서 빛나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무튼 그래서 이 아이들을 얼마 전에 만났을 때 내가 너희들에게 많은 에너지를 쏟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에 비해 내가 살기 위해 많이 내려놓았던 것 같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하나 같이 자기들은 그런 느낌 받은 적이 없다고 선생님 덕분에 학교 생활 잘했다고 이야기해 주는데 참 고마웠다.
4, 5번째 학교로 여고에서 근무하다 보니 여학생 특유의 아기자기한 느낌과 나의 케미가 맞아서 잘 지내고 있지만 남고에서 근무하면서 느끼는 다이내믹한 재미가 없어서 다음 학교로 남고를 또 가볼까 하고 있다. 나의 성격을 아는 30대 남자 제자들은 남고 가면 또 슬럼프 올 테니까 다이내믹한 거 찾지 말고 편안한 여고에서 계속 근무하라고 하는데 ㅋㅋㅋ 나는 축구 잘하는 남학생을 좋아하니까 더 늙기 전에 남고로 가서 다시 근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