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방황할 자유
나는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것들이 많았다. 손재주가 있어 모든 조금씩 남들보다 잘하는 아이였다. 그중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건 내게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화가가 되고 싶어.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그런 꿈을 꿨었고 조금 더 머리가 자랐을 때는 디자이너라는 번지르르해 보이는 단어를 썼다.
구청 단위로 운영하는 영재반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르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을 보며 내 재능이 부질없다고 느끼고 꿈을 접었다.
어린 나는 왜 그렇게 쉽게 꿈을 접었을까, 지금 생각해 본다면.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것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나는 성취감보다 박탈감을 느꼈기 때문에.
좋아할수록 진심을 다하고 진심이 배반당할 때 받는 상처를 나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곧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걸 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건 마음껏 좋아하는 대로 남겨둬도 괜찮잖아.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 성장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글을 쓰는 것이 좋아졌을 때에도 나는 뒷걸음질 쳤다. 재능의 차이나 박탈감,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어느 분야에서나 천재는 존재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노력할 뿐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일들이었다. 더는 미래나 전망이 없는 일. 자리도 없고 사람도 없는 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명확한데 해도 되는 일을 찾는 건 어려웠다. 나는 갈 길을 잃고 방황했다. 잘못된 시대에 태어났다고 부질없는 한탄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시선에 적합하고 싶다는 나의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되는 일인 걸 안다. 하지만 내가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은 결국 나와 살을 맞대고 같은 집에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죽어도 하고 싶지가 않아서, 남들이 일생을 다 바쳐 해내는 그 쉬운 일이 내게는 소리 없이 죽어가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만약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 없었겠지. 하지만 이미 나는 이렇게 태어났고 평생 아등바등 노력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일 년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과 해도 되는 일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방황했다. 부모의 눈에는 그저 할 일 없이 방문을 닫고 칩거하는 백수처럼 보였을 것이다. 부정할 수 없다.
나뿐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은 너무나 많다. 사회가 들여다보지 않는 곳에서 청춘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청년들.
청년 실업률 문제는 중국에서도 더욱 심각하다. 중국에서는 모바일 라이브 방송에 뛰어든 인구가 무려 1억 8천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렇게 특정 산업으로 지나치게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사회 구조가 어딘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국에 MZ가 있다면 중국에는 ‘탕핑족’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러눕는다는 뜻이다. 그들은 ‘무릎 꿇기 싫고 일어설 수 없으니 드러누울 뿐’이라고 말한다.
탕핑은 가장 소극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저항의 수단이다. 한편으로는 중국이라는 국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저항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 청년들도 저마다의 저항을 하고 있다. 나의 경우는 저항이라기보다는 ‘버티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버틸 것이다. 시간이나 사람들의 시선에 쫓겨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꿈을 접거나 뒷걸음질을 치는 기억들로 훗날 후회하고 싶지 않다. 최선을 다해 끝까지 가보고, 가보지 않은 길보다는 가본 길에 대한 후회를 하고 싶다.
그 정도 선택은 해도 되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 결단코 모두의 인정을 받을 필요는 없다. 나는 딱 두 사람의 인정과 이해만이 필요하다.
그 정도 선택은 해도 괜찮을까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