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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리 Jun 02. 2024

도파민 중독이 아니라 도태 위기감 때문일지도요.

SNS와의 슬기로운 공생을 꿈꾸며

  14살. 처음으로 SNS를 가입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의 첫 SNS는 얼굴책, 페이스북이었다. 연락처를 입력하자 자동으로 뜨는 추천 친구들에게 마구잡이로 '친추(친구 신청)'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관심받기를 원하지만 나서는 건 두려워하는 사춘기 학생에게 SNS는 참으로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프로필을 들어가자마자 맨 처음 보이는 것은 사진과 친구 숫자였다. 친구의 숫자가 그 시절의 '인싸' 정도를 대표하기도 했다. '남들에게 보이는 나'를 가장 신경 쓰는 시기에 SNS 사용은, 적어도 나에게는 해로웠다. 가장 먼저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급격하게 낮아졌다. SNS가 아니었다면 느끼게 될 일이 없었을 소외감을 느끼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16살의 나는 학업을 핑계 삼아 SNS와의 이별을 택했다.


 폴더폰과 함께 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며 다시 SNS에 가입하였다. 시간이 흘러 대세는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왔다. 막연하게 대학교에서 친구를 사귈 때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학교에서 모든 통설명의 끝은 '맞팔(서로의 계정을 팔로우)할까?'였다.


 인스타그램은 대학에서 친구를 사귀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친구들과 의사소통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보다 풍부한 정서 표현이 가능해져 결과적으로 외로움과 우울이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도 했다(Chan, 2015;  Liu, Liu & Wei, 2014; Wei & Lo, 2006).


 그리고 아주 간간이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 년 내로 거의 모두 다 인스타그램에 가입했다. 비공개 계정에 게시물을 올리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들 모두 계정을 소유하고 있었다. 대학 생활에서 SNS는 모임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스토리'로 같이 놀 사람들을 구하고 서로를 '태그'하며 같이 노는 사진을 게시했다. 하지만 점차 관계로 인한 피로도가 누적되면서, 또다시 익숙한 소외감이 찾아왔다.


 나는 과하게 아는 것을 늘 경계한다. 특히 사람이나 관계에 대해서는 그렇다. 굳이 알 필요 없고 알아서 좋을 것이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다고 믿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적당한 빈 공간이 있어야 만 건강할 수 있는데, SNS는 이런 거리감을 없애고 때로는 가족도 모르는 비밀을 알게 만든다.


  나와 함께 있지 않은 순간의 그들은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지 알 수 있는 것. 그게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를 제외한 모두가 흘러가는 기분. SNS라는 떠들썩한 파티장에서 모두가 즐기는 것처럼 놀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가 외롭다.


 고된 사회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일 때마저도 사회적 관계망에 애매하게 매달린 채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니. 아무리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해도 버거운 일이다.


 그렇다면 버거울 뿐인 SNS를 왜 놓지 못하는가. 단순히 도파민 중독 때문은 아니다. SNS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SNS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정보들이 늘어났다. 시시각각으로 바뀌어 실시간으로 공유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들은 특히 그렇다.


 인스타그램으로 인해 쌓이는 사회적 관계망은 곧 인맥이고, 수많은 정보들이 그곳에서 시작되고 유통되고, SNS 계정이 곧 나의 사회성을 증명해 주는 수단이다. 취업을 위한 다양한 대외활동이나 채용 공고에서 본인의 SNS 계정을 요구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SNS는 내가 좋아하는 맛들로만 가득 찬 초콜릿 상자다. 어느 것을 먹어도 달고 맛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초콜릿이 얼마나 단 건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그리고 점차 더 단 걸 찾아 덜 단 건 입도 대지 않게 된다.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며 성취감을 얻는 수고스러움 없이, 침대에 누워 손가락만 까딱이고도 우리의 뇌는 달콤함을 학습한다.


 이렇게 익숙한 소외감과 박탈감을 인지하면서도 20대는 SNS에서 멀어질 수가 없다.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은 곧 도태이기 때문이다. 반면 도태되는 것에서 멀어지는 대가는 심지어 달콤하다. 헤어 나올 이유가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게 다 변명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보여주기식 자랑을 좋아하고 사치스러운 세대의 특성을 그럴듯한 말들로 변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도파민 중독자들 같으니라고.


 하지만 나는 내가 무슨 맛의 초콜릿을 먹고 있는지는 알고 싶다. 그리고 애초에 이 초콜릿 상자를 내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은 누구인지도. 단맛의 즐거움을 잃어버리면서까지 나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생각해보려 한다. 도태되기보다 중독되기를 선택하고 있지만, 아직 정신줄은 붙잡고 있답니다.



그래도 해로운 건 해로운 것이죠

스마트폰 과의존위험군 비율은 청소년(40.1%)으로 가장 높았으며, 숏폼, 그중에서도 SNS 사용량은 성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출처 2023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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