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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인플루엔자가 유행했을 때, 어린 동생이 걸리게 되었다.
열이 40도 이상 올라 체온계로는 이제 측정도 안 되는 고열이 났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정신을 잃는 동생을 붙잡고 엄마는 동네에서 가장 큰 병원을 찾았다.
동생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말도 없이 누워있는 동생을 보며 숨을 쉬고 있는지 엄마는 수백 번씩 확인을 했다.
당시 9살이었던 나를 혼자 두고 동생을 입원시킬 수가 없었다.
병원 문을 여는 아침이면 아픈 자식을 업고 뛰어갔고,
새벽에 고열이 심해지면 자는 나를 두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을 다녀온 후, 우리 집엔 규칙이 생겼다.
방문 앞에 스티커 판을 만든 후 내가 혼자 자는 날마다 엄마가 스티커를 붙여 주기로.
스티커 판에 스티커를 다 모으면 내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준다고 약속을 했다.
혼자 자는 밤이 고요해 무서웠지만 스티커 판을 보며 눈을 꼭 감고 잠이 오길 바랐다.
결국 엄마는 입원을 결심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을 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동생을 말없이 껴안았다.
혼자 남은 나를 친척집에 맡기려 입원 전날 엄마는 여러 곳 전화를 했다.
“우리 애들까지 걸리면 어떡해! 절대 안 된다.”
이게 엄마가 돌려받은 답변이었다.
그날, 소리도 못 내고 다른 방에서 우는 엄마를 봤다.
외할머니가 걱정할 까봐 말 못 하고 있던 엄마는 결국 친정집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 달간 엄마랑 떨어져 지냈다.
나는 엄마한테 전화를 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던 엄마의 뒷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 차마 때 쓰지 못했다.
말도 못 하도록 아픈 동생이 빨리 괜찮아 지길 속으로 삼켰다.
그때 동생은 고열로 인해 뇌 손상이 올 수도 있고 어쩌면,
가망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는 그때부터 병실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엄마의 나이 고작
서른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