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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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서

내가 태어나기 전,

아주 오래전,

아버지의 얼굴도 기억을 못 할 때.


아빠는 아빠를 잃었다.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친할머니는 혼자서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몇 자락 없는 기억도 안나는 할아버지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많이 컸다.

평생을 아빠 없이 산 아빠는 할머니를 보며 부모의 역할을 배웠다.


공부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

살기 급해 돈을 열심히 벌어오는 부모,

자식이 자랑스러워야 부모가 자랑스러운 그런 것들.


할머니에게 희망은 아빠밖에 없었고 아빠는 그 희망을 이뤄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친구들과 간식 사 먹어라고 준 용돈을 모두 책과 연필에 썼다.

그리고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자식들 모두 대학 보낼 형편은 아니지만 아빠만큼은 무조건 대학에 보내주겠다 했다.


학력고사를 보고 온 아빠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할머니의 꿈을, 기쁨을 이뤄주지 못해 그게 자신의 평생의 한이라고 했다.


아빠에게 할머니란 애틋한 존재다.

받아야 할 아버지의 사랑까지 모두 준 할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대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할머니는 엄마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하루 종일 고생하는 아빠가 가여운데, 엄마는 한국에서 편히 지낸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할머니는 점점 더 엄마를, 나와 동생을 다른 친척들과 차별했다.

아빠가 있을 땐 아니었지만 아빠가 출장을 가곤 하면 싫어하는 모습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빠, 할머니가 나 싫어하는 거 같아.”


“그럴 리가. 할머니는 모두를 사랑해.”


아빠는 단 한 번도 내 말을 믿은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나를 싫어한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라고 했다.


명절 때, 다른 사촌들에게 용돈을 더 주시는 것을 보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빠는 할머니를 너무 사랑하니깐.


아빠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다른 것으로 증명하고 싶어 했다.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

더 좋은 회사에서 더 높은 직급을 다는 것.


아빠는 노력하여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이뤘다.

그런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빠의 출장은 더 길어졌고,

우리가 진정으로 아빠가 필요할 때는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아빠의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배울 수 있는 아버지 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크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마음 깊숙한 어떤 곳이 허전한 건 여전히 채울 수가 없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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