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동생이 괜찮아지고 난 후부터였다.
다행히 동생은 한 달 안에 열이 다 내렸고 그 어떤 문제없이 퇴원했다.
하지만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엄마는 서운함과 원망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마음을 먼 타지에 있는 남편이라도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빠는
“그럴 수도 있는 건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자식이 생사의 고비를 겨우 넘겼는데 이게 예민한 일이라고 치부하는 아빠에게 더 이상의 기대는 어려웠다.
허공의 메아리 같은 엄마의 외침은 마지막에 나에게 닿았다.
엄마는 모든 것을 숨기려 했지만 내 시선 끝엔 늘 엄마가 있어 몇 개는 들키고 말았다.
시댁 식구들에 대한 서운함.
모진 말을 들었을 때조차 나를 위한 절박함.
무엇보다 아빠에 대한 원망.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가 시댁 식구들에게 전화를 한 그날 밤.
다시 전화가 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았지만,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차마 입에도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들었다고 한다.
아빠가 먼 타지에서 당장이라도 달려와 주길 바랐지만 끝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학교를 올라간 나는 또래들 사이에서 학교폭력을 당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우울감과 무력감을 느낀 나는 병원에 진료를 보러 갔고,
14살에 우울증이라는 병명을 얻었다.
사춘기가 심하게 온 나는 방문을 잠그는 습관이 있었다.
엄마는 퇴근을 하고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을 못 들었다.
다시 한번 두드렸지만 사람이 있는 기척이 안 느껴졌다.
문고리를 흔들어 봤지만 굳게 닫혀 있었다.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하며 문고리를 미친 듯이 흔들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깊게 잠에 들었던 나는 그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고 눈을 떴을 때,
엄마의 손에 들려 있는 젓가락을 봤다.
엄마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 이후 엄마는 회사를 그만두고 내 옆에 있었다.
여전히 아빠는 없었다.
출장을 간 곳에서 매일 전화를 하며
“시험은 봤어?”
그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다정했던 아빠는 기억 속에만 존재했다.
그 긴 기간 동안 얼굴 한번 비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물리적 거리감을 넘어서는 느낌을 주었다.
아빠의 역할을 해낸 건 내가 아니다.
엄마가 숨도 쉬지 못하고 우리를 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