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내가 갑자기 죽게 되면 혼자 남을 우리 장애아 아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할 줄 몰랐다. 주원이에게 장애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나를 자꾸 깨우쳤다. 주원이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또래 아이들의 따돌림, 미숙한 학교생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 그리고 부족한 인지능력까지.
11살이 된 지금도 주원이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대변을 처리하지 못하고 지시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기다려야 할 순간에도 앞뒤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한다. 옷을 혼자 입고 벗지도 못하고, 양말도 제대로 신지 못하며, 스스로 씻지도 못한다. 위험을 잘 모르고,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며, 친구들이 다가와도 어떻게 어울려야 할지 몰라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주원이. 그런 주원이를 볼 때마다, 엄마로서 이 세상에서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어른이고 엄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다. 그런 내가 봐도 주원이가 앞으로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걱정뿐이다. 세상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고, 마음이 무너져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특히 약자에게 가혹하고, 장애인에게 불리한 우리나라 현실은 내게 더 큰 두려움을 안긴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 홀로 남을 주원이를 상상하면 머릿속에 영상처럼 그려진다. 이 나라의 시스템은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해도 온전히 지원하지 않는다. 결국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나처럼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그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래서 장애인 부모들은 늘 외친다. "누구도 밀쳐내거나 외면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 국가가 함께 책임져 달라." 하지만 현실은 그 목소리가 닿기 어려운 벽 앞에 서 있다.
나는 늘 생각한다.
“주원이보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 내가 없으면 주원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요즘 이정희 활동보조 선생님께서 주원이를 돌봐주셔도, 주원이가 유난히 힘들게 하는 날들이 있으면 나도 지쳐 아이 앞에서 엉엉 울고 만다. 그럴 때마다 기도하게 된다.
"주원이를 고쳐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남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그것도 어렵다면 그냥 지금이라도 주원이를 데려가 주세요. 너무 잔인한 세상에 남겨질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다면 저를 먼저 데려가 주세요. 그래도 가능하다면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살게 해 주세요. 제발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갈 기적을 주세요."
어느 날, 이 기도를 이정희 선생님께 말씀드리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아이를 데려가 달라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하시며, 좋아질 거라고, 어른인 우리가 노력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나도 안다. 주원이는 이렇게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이를 건강하게만 낳았어도, 아니면 애초에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 탓을 한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 범죄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이용해 착취하거나 괴롭히는 일들을 보며, 지금도 어디선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란 생각에 혼란스럽고 무섭다.
장애인을 둔 부모는 신체적으로는 건강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장애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일상에서의 차별과 괴리감이 우리의 삶을 갉아먹는다.
얼마 전, 자폐성 장애인의 평균 수명이 23.8세에 불과하다는 기사를 봤다.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아이를 낳고 점쟁이에게 들었던 "아이가 단명할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땐 주원이가 장애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또 엄마로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만다.
나는 특별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다. 부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오래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 내가 주원이를 품에 안고 하늘나라로 보내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해 달라는 게 내 유일한 바람이다. 아마 이게 장애아를 키우는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단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