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의 두 얼굴을 음악에 담아내다
공일오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내가 무척 존경하는 배순탁 작가님의 표현을 빌어와야 한다. 공일오비는 90년대라는 시대의 두 얼굴을 음악으로 나타낸 팀인데, 배순탁 작가님은 그것을 두고 각각 '뜨거움'과 '쿨함'이라고 명명하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 팀의 음악이 그처럼 야누스적 양극단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례는 공일오비 이후에는 자우림 정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귀납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이런 거다. 가수 윤종신의 데뷔곡이자 공일오비 1집의 타이틀곡인 '텅 빈 거리에서'의 후렴구 가사를 보자.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 뜨겁다. 절절하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이 남자가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이별하는 중인지 그 서사가 절로 그려진다. 펀치라인은 '야윈 두 손'에 놓인 '외로운 동전 두 개'다. 이별로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기에 손까지 야윈 걸까. 그리고 전화를 걸 때 사용되었어야 마땅할 동전 두 개는 아직 주인공의 손에 놓여 있으니 쓰임새를 잃어 '외롭다'. 심지어 이 구절은 세월이 35년이나 흐른 지금에 와서 들으면 당시 시대상까지도 짐작 가능하다. 공중전화 한 통에 20원이었다는 소소한 사실 같은 것 말이다.
반면 2집의 '이젠 안녕' 같은 곡은 어떤가. 아직까지도 노래방 엔딩곡으로 이 곡이 쓰인다고 하니 거의 황희 정승 격의 긴 수명을 자랑한다. 이 곡이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건 질척거리지 않기 때문이다. 떠날 때는 쿨하게 안녕 하고 인사하고 가면 된다. 눈물 질질 짜면서 이제 가면 언제 또 보냐고, 안 가면 안 되냐고 징하게 들러붙는 지긋지긋함이 이 곡에는 없다. 노랫말을 잠깐 보자.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함께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 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살다가 인연이 닿으면 또 볼 테니, 아쉬워 말고 오늘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각자 갈 길 잘 가자는 소리다. 얼마나 쿨한가? 한 팀에게서 이렇게 이질적인 정서가 나올 수 있는 건가?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이 팀이 객원 보컬 시스템으로 운용되었기 때문에 표현의 다양성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90년대 청년들의 모습이 실제로 이처럼 양극적 정서를 보였기에 이들은 그저 있는 그대로를 재현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90년대 이전에는 '쿨'의 정서가 부재했다. 항상 서로를 갈구했고, 연결되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통신 매체가 다양해지고, 개인 간의 연결이 느슨해진다. 이로써 '너 아니면 안 돼' 식의 신파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3집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나 4집의 '신인류의 사랑' 같은 곡에서 공일오비 식의 '쿨워터향'은 더욱 농후해진다. 하지만 타이틀곡을 제외한 숨은 수록곡들 중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노래하는 곡들도 간간이 발견할 수 있다. 사람에 빗대자면 애써 쿨한 척하지만 뒤돌아서 혼자 있을 때 폭풍 오열하는 스타일이랄까.
솔직히 말하자면 공일오비 음악이 내 취향과는 거리가 좀 멀다. 내가 듣기엔 사운드도 촌스럽고, 참여한 객원 보컬들의 가창력도 다소 아쉽다. 하지만 이런 인간미 있는 모습에 끌렸던, 내 바로 윗세대 선배들은 아직까지도 공일오비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모양이다. 미묘하게 세대 차이를 겪고 있는 셈인데, 끝까지 못 받아들이겠으면 어쩌겠는가. 좋아하는 것만 듣기에도 모자라는 시간인데.
그래도 말이다. '텅 빈 거리에서'만큼은 진짜 인정이다. 가사, 멜로디, 정서, 시대상, 무엇보다도 가창자인 윤종신의 다듬어지지 않은 고운 미성. 여러모로 귀하디 귀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