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고 편하게 전해지는 음악
Tracklist.
01. 너를 두고
02. 그대의 세계
03. 여행
04. 걸어갈게
05. 각인
06. 나이
07. 머그잔
08. 꿈일까
09. 너는 궁금하지 않을 것 같지만
10. 혼잣말
11. Journey [여행 English Version]
디지털 음원 시대에 앨범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수 김범수는 11곡으로 꽉 채운 새로운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다. 앨범명은 [여행]이며, 타이틀곡 또한 앨범명과 동명인 3번 트랙 '여행'이다.
예약 발매 소식이 떴을 때부터 이미 주문을 끝내 놨고, 발매일에 따끈따끈한 앨범을 받았다. 그러니까 이것은 언박싱 리뷰이기도 한 것이다. 얼마만일까. 기다리던 가수의 앨범을 마침내 손에 넣고 앨범의 만듦새(음악과는 별개의 physical 측면 등을 일컫는다)를 느끼며 CD 플레이어에 음반을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의 그 설렘을 느껴본 지가. 어린 시절의 나로 잠깐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며 11곡의 음악을 며칠에 걸쳐 아주 여러 번 돌려 들었다.
어떤 댄스곡의 노랫말 한 줄이 떠오른다. '전에 알던 내가 아냐'. 김범수의 이 앨범이 그러하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가수 김범수의 모습이 아니다. 이 앨범 이전의 김범수를 떠올려 보자. 그는 R&B 감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마이너 발라드를 표현하는 데에 특화된 보컬리스트였다. 노련한 기술과 폭발하는 듯한 감성으로 하여금 듣는 이들에게 감탄을 자아내는 가수였다.
2014년에 8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그가 했던 인터뷰도 기억난다. '보고싶다'나 '끝사랑' 같은 히트곡들은 있지만, 자신의 명함 같은 앨범은 아직까지 만들지 못했다고 하며 야심차게 8집을 작업했고, 대중들의 기호에 맞춰서 만들었던 자신의 다른 앨범에 비해 8집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R&B 색깔을 많이 입혀서 만들 것이라는 포부도 밝힌 바 있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솔직히 결과물은 실망스러웠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흥행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김나박이 사천왕에 등극한 그도 어쨌든 사람인지라, 야심차게 내놓은 8집의 실패는 분명 큰 충격이었으리라. 그렇게 그는 'make' 시리즈로 싱글을 발표하는 행보를 이어간다. 때로는 're.make'로 흘러간 옛 명곡을 재해석하기도 하고, 때로는 'we.make'로 뛰어난 선후배 가수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new.make'라는 이름으로 신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잘 모르긴 해도, 'make' 시리즈는 가수 김범수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한 '여행'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기에 아홉 번째로 발표하는 이번 정규 앨범의 제목이 [여행]인 것은 석연치 않다. 8집을 발표한 지 10년 만에, 그리고 데뷔한 지 25년 만에 발표하는 9집 앨범이다. 'make' 시리즈로 다양한 시도를 해본 끝에 내린 결론을 '여행'이라 받아들여도 괜찮은 걸까. 김범수는 음악이란 거대한 세계를 여기저기 자유롭게 누비고 즐기는 가수이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에서의 김범수는 기술을 최대한 절제하고 차분한 정서로 노래한다.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한숨 돌리며 몸과 마음을 정리하는 것처럼.
앨범 발매와 동시에 김범수는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인 '만날텐데'에 출연하여, 현재 자신의 속도가 '매우 느리다'라고 표현하며 앨범 수록곡 중 bpm 60이 넘어가는 곡이 없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성시경은 옆에서 농담조로 '해서는 안 될 건 골라서 다 했구나'라고 거들기는 했지만, 김범수도 데뷔 25년차 경력이 되고 나니 화려한 기술은 사람들에게 그저 감탄에 그치지만 진정성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진정성 있는 노래는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생김대로' 노래하면 된다. 김범수는 이번 앨범의 모든 곡을 그렇게 노래했고, 그 이전 앨범들과는 달리 듣는 이의 마음에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김범수의 이번 여행은 홀로 떠난 여행이 아니다. 음악계에서 내로라하는 수많은 조력자들이 함께한 초호화판(?) 여행이다. 이런 여행이라면 얼마나 즐거웠을까. 음악에 자신의 영혼을 오롯이 담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겪으며 가수 김범수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섣불리 답을 내리려 하지 않고 '나는 여행자로 남겠다'라며 흘러가는 삶을 선택한 김범수의 선택은 그렇기에 현명하지 않은가. 답을 내리는 순간 그걸로 끝일까봐. 음악은 그렇게 끝나기엔 너무 아름다우니까. 세상사에 지치고 만성피로에 찌든 여러분. 김범수의 느리지만 행복한 여행에 함께하고 싶다면, 이 앨범을 사서 직접 들어보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새삼 음악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한껏 느끼며 영혼을 풍요롭게 만드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
credits.
Executive Producer. 김영도
Producer. Phenomenotes
Co producer. 김범수
01. 너를 두고
Lyrics by 나태주
Composed by 김범수, 유은재
Arranged by 유은재, Phenomenotes
나태주 시인의 '너를 두고'라는 시에 음률을 붙여 완성한 곡이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환기하며 듣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도입부의 오르골 태엽 감는 소리가 아련함을 자아낸다.
02. 그대의 세계
Lyrics by 김지향
Composed by Phenomenotes
Arranged by HYUNKI
김범수의 유튜브 '범수의 세계'가 떠오르는 제목이라 곡을 듣기 전에는 살짝 실소가 터질 뻔했지만, 곡을 듣고 나서는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우선 노랫말이 정말 감동적이다. '꽃잎 한 장 속에 사계가 있고 / 그대 숨결 속엔 세계가 있다', '그댈 사랑하는 건 내겐 무의식의 영역 / 겨울 봄 여름 가을 지나온 숲처럼 당연한 기적'... 이런 가사를 쓴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다름아닌 박효신의 '야생화'를 공동작사했던 김지향 작사가이다. 타이틀곡 '여행'도 물론 좋았지만, 나에게는 이 곡이 이 앨범의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김범수'를 가장 오롯이 잘 담아낸 곡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가사는 무려 '그대의 세계 속에 산다 / 영원한 여행자로'이다. 여기의 '그대'를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들어보라. 데뷔 25년차 가수가 음악에게 넌지시 고백하는 진심이 느껴지면서 잔잔한 감동이 파동처럼 일렁인다.
03. 여행 (title)
Lyrics by 최유리
Composed by 최유리
Arranged by 최유리, 홍예진
김범수는 대표곡 '숲'으로 이름을 알린 싱어송라이터 최유리의 곡을 타이틀로 선정하였다. 타이틀곡으로도, 앨범명으로도 '여행'이다. 역시 앞의 두 곡의 기조와 결을 같이 하는 발라드이며, 정서 또한 차분하고 아늑하다. 성시경의 '만날텐데'에서 김범수가 밝힌 바에 따르면 최유리의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진지하다고 한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굵직한 경력의 보컬리스트에게 '간택'당한 최유리의 마음도 내심 뿌듯하리라 믿는다.
04. 걸어갈게
Lyrics by 한밤(midnight)
Composed by 한밤(midnight), TM
Arranged by 한밤(midnight), TM
어쿠스틱한 분위기의 3박자 곡이다. 1~3번 트랙의 분위기가 다소 유사하기 때문에 분위기 전환 측면에서 배치한 듯하다. 드럼에 신석철이 참여했다.
05. 각인
Lyrics by 선우정아
Composed by 선우정아, 조성태
Arranged by 선우정아, 조성태
Chorus by 선우정아, 김범수
이 곡을 만든 사람을 확인하고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무려 선우정아라니. 게다가 선우정아와 늘 함께 합을 맞추는 피아니스트 조성태와 공동 작곡, 편곡이라니. 그걸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 김범수가 부르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주접을 안 떨래야 안 떨 수가 없다. 선우정아가 만든 곡이 으레 그렇듯이 선우정아 특유의 개성과 색채가 뚜렷하게 느껴지며, 그게 의외로 김범수의 목소리와 무척 잘 어울린다. (중간쯤 나오는 'you are the one' 파트의 코러스가 정말 압권이다) 김범수가 선우정아를 뮤지션으로서 동경한다는 뜻을 자주 밝혔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 '범수의 세계' 커버 프로젝트에서 선우정아의 곡 '도망가자'를 커버하기도 했으니 그에 대한 답례 차원이 아닐까. 음악을 매개로 활발하게 소통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흐뭇해진다.
06. 나이
Lyrics by 최유리
Composed by 최유리
Arranged by 전진희
타이틀곡 '여행'을 선사해 준 최유리의 또 다른 곡이다. '내 아침과 밤은 이렇게 / 하염없이 도망치려다 나에게 붙잡히는 나이야'라는 노랫말이 가슴에 와서 콕 박힌다. 어느덧 이런 노랫말에 공감하는 나이가 된 건가. 아직 멀었다고 애써 거짓말하며 버텨 왔는데, 이런 노랫말을 들으면 속절없이 나의 저물어가는 생애를 인정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런데 그게 점점 싫지 않다는 게 신기하다. 이제야 나도 드디어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건가?
07. 머그잔
Lyrics by 김지향
Composed by 송영주
Arranged by 송영주
Piano 송영주
2번 트랙 '그대의 세계'로 만나본 김지향 작사가가 노랫말을 붙인 또 하나의 곡이다. 곡을 만든 송영주 작곡가가 피아노 연주도 도맡았다. 간주의 피아노 솔로가 압권이다.
08. 꿈일까
Lyrics by 양재선
Composed by 임헌일
Arranged by 임헌일
앨범 발표 전 선공개했던 곡이다. 밴드 메이트(Mate)의 멤버이자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로 명망이 높은 임헌일의 곡으로, 앨범에서 가장 R&B 색채가 짙게 묻어난다. 하지만 예전에 김범수가 구사해 오던 화려한 기교 중심의 R&B는 아니다. 3박자 리듬과 빈티지한 느낌의 드럼, 몽환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기타와 일렉트릭 피아노 등 전체적인 사운드 어레인지가 90년대 R&B와 흡사하다. 김범수 입장에서는 본인이 그간 혼자 힘겹게 만들어 세우려던 R&B의 금자탑을 임헌일이 대신 세워주고 입구에 레드카펫을 깔아준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다.
09. 너는 궁금하지 않을 것 같지만
Lyrics by 박창학
Composed by 이상순
Arranged by 이상순
롤러코스터의 기타리스트이자 이효리 남편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이상순의 작품이다. 빈티지 소울 느낌이 짙게 묻어나는 곡이며, 멜로망스의 정동환이 키보드에 참여했다.
10. 혼잣말
Lyrics by 김제형
Composed by 김제형
Arranged by 양영호
쓸쓸한 라틴 분위기가 감도는 곡이다. 4집의 '거짓말'이나 'Be Mine' 같은 곡에서도 그렇고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여 커버한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 등을 들어보면 김범수의 라틴 음악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곡은 후주에 나오는 기타 솔로가 마치 산타나(Santana)의 톤을 연상케 하는데, 쓸쓸한 도입부에서 폭발적이고 화려한 기타 솔로로 능숙하게 빌드업하는 편곡자의 노련한 솜씨가 느껴진다.
11. Journey [여행 English Version]
English Lyrics by Isabelle Runaverse, 하태경
타이틀곡 '여행'의 영어 가사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