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 정규 8집 [ㅅ (시옷)]

그는 먹방 유튜버가 아니다!

by Charles Walker
2021.jpg 성시경 정규 8집 [ㅅ (시옷)]

Tracklist.


01. And We Go

02. 방랑자

03. 우리 한 때 사랑한 건

04. I Love U

05. 너를 사랑했던 시간

06. 이음새

07. 마음을 담아

08. Mom and Dad

09. 널 잊는 기적은 없었다

10. WHAT A FEELING

11. 나의 밤 나의 너

12. 영원히

13. 자장가

14. 첫 겨울이니까 (with 아이유)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대체 성시경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 앨범을 발표할 당시 데뷔 20년차 중견 가수 반열에 이미 올랐으며, 발라드 가수의 계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던 그였기에 타이틀곡 'I Love U'의 선택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난데없이 미디움 템포의 곡에 맞춰 핑크색 옷을 입고 '안무'를 추고 있는 성시경의 모습은 낯설었다. 2집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에서 이미 빠른 템포의 곡을 타이틀곡으로 선택한 바가 있고, 공연에서는 1집 수록곡 '미소천사'에도 가끔 춤을 추기도 하는 그였기에(이 시대 최고의 댄스곡은 모다?) 성시경이 춤을 춘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그런 생경함을 느낀 건 아닐 것이다. 그럼 내가 8집에서의 변화를 이토록 당혹스럽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7집 [처음 (2011)]과 8집 사이의 10년이라는 공백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10년을 기다린 정규 앨범이다. 그 공백기 동안 성시경은 '잊히지 않기' 위해서 각종 예능에 얼굴을 비추었고, 심지어 유튜버까지 되었다. 요리와 먹방(을 가장한 술방)을 주요 콘텐츠로 하는 유튜버. 아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성시경을 발라드 가수로 알기보다는 맛집 잘 아는 후덕한 유튜버 아저씨로 아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팬들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갈 지경이다. 저 사람이 얼마나 엄청난 가수인데!


10년을 기다려 나온 정규 8집이 베일을 벗고, 그 타이틀곡이라고 하는 것이 '안무'를 곁들인 미디움 템포 곡이다. 물론 아티스트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더 중요하고, 팬들이 원하는 걸 아티스트가 반드시 전부 맞춰줘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조금은 전략적일 필요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이를테면 본인에게 부여된 발라드 가수라는 정체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정통 발라드인 '우리 한 때 사랑한 건'이나 '너를 사랑했던 시간' 같은 곡을 타이틀곡으로 하고, 'I Love U'는 조금 특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더블 타이틀이나 후속곡으로 밀었다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I Love U'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팬들은 당혹스러움을 느꼈겠지만, 성시경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은 '저 먹방 유튜버가 갑자기 가수 데뷔를 하는 걸까?'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즘 앨범 전곡을 찾아 듣는 대중은 전무후무할 것이고, 성시경은 'I Love U' 한 곡으로 요즘 대중들에게 평가받게 될 것이다. 그가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며 데뷔 20년차에 이런 과감한 시도를 하게 된 것일까?


어쩌면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발라드 가수'로 자신이 규정되어야 하는 현실에 지쳐버린 건 아니었을까? 20년이면 한 아이가 커서 대학교에 입학하는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발라드의 황태자, 발라드 계의 직계 장손' 등의 별명으로 불리우면서 마냥 좋기만 했을 리 만무하다. 그 칭호가 때로는 자신을 옥죄는 굴레같이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성시경 입장에서는 족쇄를 벗어던질 수 있는 좋은 명분이 생긴 것이다. 바로 '데뷔 20년차'라는 사실 말이다. '이제는 좀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새로운 것 좀 해도 괜찮지 않을까?' 성시경의 생각을 추론해보면 아마 저렇지 않았을까, 감히 미루어 짐작해 본다.


해도 된다. 자기 것 자기가 마음대로 한다는데 우리가 뭐라고 하겠는가? 다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죄(?)로 이 앨범에 수록된 수많은 명곡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반드시 이 앨범의 전곡을 다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정통 발라드도 있지만, 브리티쉬 팝이나 모던 록, R&B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는 20년차 뮤지션 성시경의 위엄을 볼 수 있다.



Credits & Comments


01. And We Go

작사 안신애

작곡 안신애

편곡 안신애


그룹 바버렛츠(Barberletts)의 멤버이자 싱어송라이터로 각광받고 있는 안신애의 작품으로 앨범의 문을 연다. 기타 선율 중심의 미니멀한 편곡으로 성시경의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돋보이게 한다.


02. 방랑자

작사 조규찬

작곡 조규찬

편곡 조규찬, 강화성


작곡가의 색깔이 강하면, 어떤 가수가 부르더라도 멜로디 자체가 주는 특유의 느낌 때문에 작곡가를 알아차리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내게는 조규찬이 그 중 하나이다. 이 곡의 경우 음의 밴딩이나 첫음, 끝음 처리 등에 조규찬의 터치가 아주 세게 묻어 있다. 성시경도 보컬리스트로서 공력이 밀리는 편은 아닌데, 이 곡은 조규찬의 곡을 성시경이 커버한 듯한 느낌이 많이 든다(그렇다고 그게 잘못됐다거나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다.).


03. 우리 한때 사랑한 건

작사 심현보

작곡 성시경

편곡 강화성


멜로디가 선명한 정통 발라드로, 성시경이 가장 잘하는 장르의 곡이다. 개인적으로 이 곡을 타이틀로 밀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랬다면 상대적으로 가수 성시경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 있지 않았을까?


04. I Love U

작사 ButterFly

작곡 ButterFly

편곡 ButterFly


문제의(?) 타이틀곡이자, 이 앨범에서 가장 분위기가 밝고 흥겨운 곡이다. 곡 자체로만 놓고 보자면 준수한 편이지만, 10년만의 컴백이자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의 타이틀곡이라는 무게감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05. 너를 사랑했던 시간

작사 심현보

작곡 심현보

편곡 박민서, 강화성


이 곡 또한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멜로디가 분명한 정통 발라드이다. 성시경의 아주 초창기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 온 심현보의 작품인데, 심현보 특유의 여린 감성을 성시경이 잘 표현해내는 듯하다.


06. 이음새

작사 김이나

작곡 성시경, Jay&Rudy, 아론 킴, Issac Han, 이상훈

편곡 강화성


2003년, 성시경의 3집 수록곡인 '10월에 눈이 내리면'의 작사를 맡으며 작사가로 데뷔한 김이나가 이번 8집에도 기운을 보탰다. 자신을 데뷔시켜 준(?) 가수이기에 의미가 남다를 터.


07. 마음을 담아

작사 심현보

작곡 성시경

편곡 강화성


브리티쉬 록 분위기의 곡으로, 물 흐르듯 유려하게 흘러가면서도 리듬감을 놓치지 않는 성시경의 높은 내공을 볼 수 있는 곡.


08. Mom and Dad

작사 안신애

작곡 안신애

편곡 강화성


안신애는 1번 트랙 'And we go'와 더불어 이 곡, 'Mom and Dad'를 성시경에게 선사했다. 이 곡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는 감회가 남달랐다. 노랫말 중에 '비록 엄마 아빠는 헤어졌지만/그들의 마음 나에게 남아/못다 한 사랑 이야기/너와 내게서 이어지네'라는 구절이 있는데, 실제로 이혼 가정에서 자란 나에게는 이 가사가 은유적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다가왔다. (그것이 이들이 의도한 바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09. 널 잊는 기적은 없었다

작사 김지향

작곡 나원주

편곡 나원주


개인적으로 나원주의 곡 스타일도 참 좋아한다. 고급스럽고 세련되며 과하지 않은 절제미가 나원주 곡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곡에도 유감 없이 그 매력이 발현되었다. 가사는 박효신의 '야생화'를 쓴 김지향의 작품.


10. WHAT A FEELING

작사 SCORE, Megatone

작곡 SCORE, Megatone

편곡 SCORE, Megatone


이 앨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R&B의 그루브감과 성시경의 감각적인 보컬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곡이다. 발라드 가수의 프레임에만 성시경을 가두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곡으로 그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11. 나의 밤 나의 너

작사 심현보

작곡 Albi Albertsson

편곡 Albi Albertsson


브리티쉬 팝 스타일의 곡으로, 이 또한 성시경이 그간 선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스타일이다. 앨범의 후반부에 이런 도전적인 곡들을 깔아놓는 것도 영민한 전략인 듯.


12. 영원히

작사 권순관

작곡 권순관

편곡 권영찬


피아노 반주에 담백하게 부른 조용한 발라드 곡이다. 눈을 감고 목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릴지도.


13. 자장가

작사 강승원

작곡 강승원

편곡 강승원


'서른 즈음에'의 작곡가로 유명한 강승원의 작품으로, 인트로의 허밍 파트가 다소 으스스하게 느껴진다. 그 부분을 애써 참고(?) 넘어가면 제목과 같이 달콤한 '자장가'가 흘러나오는데, 테마 간의 대비가 지나치게 극명하여 이질적으로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인트로 허밍을 굳이 넣은 이유가 무엇일까 의구심이 드는 곡이다.


14. 첫 겨울이니까 (with 아이유)

작사 이규호

작곡 이규호

편곡 강화성


'그대네요' 이후 아이유와의 듀엣으로 부른 두 번째 곡이다. 제목처럼 겨울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곡으로, 두 사람의 하모니가 듣기 좋은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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