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없이 한국어로만 만들어진 힙합
'MC메타'와 '나찰'의 2인조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힙합 팀이다. 데뷔 때는 3인조였는데 2005년부터 팀이 재정비되면서 한 사람이 빠진 모양새이다. 어쨌든, 가리온은 힙합과 한국어의 궁합이 상당히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핸디캡을 보란 듯이 극복해내고 들을 만한 힙합 음악을 만들어 내놓은 팀이다. 심지어 영어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심지어 내가 갖고 있는 저 세 앨범만 봐도 영어 단어 하나조차 찾을 수 없다), 오로지 한국어만으로 꽤나 그럴싸한 랩을 만들어냈다는 것만 보아도 가리온은 힙합 씬에서 존경받아 마땅하다.
사실 나는 힙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R&B를 병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달리, 흑인음악이라는 공통점 아래 한데 묶여 있던 힙합은 억지로 좋아하는 척, 했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내가 대학 때 몸담고 있던 동아리는 '흑인음악동아리'로, 주력으로 내세우던 장르가 힙합이었다. 그랬기에 R&B 보컬 포지션으로 들어갔던 나의 입지는 처음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내 존재감을 키우려면 힙합 하는 선배들과 동기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그들로부터 힙합 앨범들을 추천받아 들었다. 그 수많은 앨범들 중에 가리온의 음악들이 있었다. 지금 들으면 솔직히 좀 촌스럽지만, 갓 스무 살이 된 나에게는 꽤 매력적이었다. '힙합, 꽤 들을 만한 장르네?'라고 생각할 만했다.
워낙 인재가 없던 탓에 어쩌다가 내가 그 기수의 R&B 에이스였는데(절대 자랑 아니다), 내 동기 중에 랩을 기깔나게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도 나처럼 내성적이고 혼자만의 세계가 강한 친구였는데 나처럼 친목질 같은 걸 하지 않고도 실력으로 당당히 에이스 자리를 꿰찼다. 물론 '흑인음악동아리'라고 범위를 넓혀 놓고, 힙합을 주력으로 하는 우리 동아리의 분위기도 그 친구를 에이스로 올리는 데에 한몫 하긴 했겠지만 그 친구의 실력에는 도저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일단 그 친구가 듣는 음악부터 다른 애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다른 애들이 DJ DOC 같은 걸 들을 때 그 친구는 나스(Nas)나 칸예 웨스트(Kanye West) 같은 걸 듣고 다녔으니까.
학교 축제 시즌에 같은 인문대였던 힙합 에이스 친구와 나는 동아리 소속임을 숨기고(정확하게는 굳이 밝히지 않고) 단대 가요제 예선에 참가했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 불렀던 노래가 김조한의 'Love'였는데, 그 노래만 들으면 그 힙합 에이스 친구가 생각난다.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 그대,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