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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타

1세대 아이돌 최고 아웃풋

by Charles 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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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강타 1집(2001), 2집(2002)

그러니까...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지금처럼 '음악'이라는 분야에 깊어지기 전, 나도 뭇 친구들과 같이 아이돌 그룹의 팬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그룹은 단연코 'H.O.T.'였다. 솔직히 고백하면 최근에 그들의 노래를 다시 들어봤었는데, 대체 내가 이들을 왜 좋아했던가 싶을 정도로 음악이 별로였다... S.E.S.나 지오디(god) 같은 팀의 노래들은 지금 들어도 너무 좋은데. 왜 유독 H.O.T.의 노래들은 듣고 있으면 낯이 뜨거워지는 걸 참을 수가 없는 건지...


그래서 오늘의 이 고백은 소량의 부끄러움을 내포하고 있다. 어린 시절 나의 '노래짱'이었던 강타 형님의 1집과 2집 앨범.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H.O.T.가 아쉽게 해체를 발표하고, 가장 먼저 솔로로 나선 멤버가 바로 강타였다. 아무래도 팀 내 포지션이 메인 보컬이었고, 그룹 시절에도 다수의 자작곡을 선보였던 만큼 솔로작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1집 앨범을 듣고 나는 그만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니, 이 사람이 이 정도로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었단 말이야?'


발라드 타이틀곡 '북극성'은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기승전결이 확실한 구조와 아름다운 멜로디, 세련된 편곡까지 히트 공식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이쯤 확실히 물오른 강타의 보컬 또한 주목할 만하다. 타이틀곡이 발라드라고 해서 앨범을 발라드로만 채웠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H.O.T.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클래시컬한 무드의 미디움 템포 댄스곡 '스물셋'으로 후속곡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어쿠스틱 발라드 '그 해 여름'도 방송에서 몇 번 선보였던 기억이 난다. 한 앨범으로 세 곡이나 활동했으니 이 시절 강타는 꽤나 바쁜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세 곡만 활동하고 접기에는 이 앨범의 수록곡들이 너무 아깝다. 토크 트랙 같은 인터루드를 제외하고는 12곡 남짓의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어느 곡 하나 버릴 것 없이 훌륭하다. 특히 'Thanks God (Thanks 8)'처럼 재즈의 무드를 한껏 머금은 곡들이 인상적인데, 이러한 기조는 2집에서 조금 더 심화된다. 앨범 수록곡에서 꼭 하나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해야 한다면 단연코 'Blue Moon'이다. 이 곡은 정말 지금 들어도 여름밤 별빛이 쏟아질 듯한 해변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듣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듬해 강타는 '상록수'를 타이틀곡으로 한 2집을 발표한다. 앨범 제목도 [Pine Tree]이고 타이틀곡도 '상록수'로 알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뮤직비디오나 방송 활동은 '사랑은 기억보다'라는 곡으로 더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더블 타이틀이었나? 아니면 반응이 '사랑은 기억보다' 쪽이 더 좋아서 방향을 선회했던가? 여기에 대한 기억은 좀 흐릿한데... 아무튼.


강타 2집은 구성이 독특하다. 앨범 하나를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누어서 각 계절에 맞는 곡들을 수록한 구조인데,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사계절 감성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 강타가 이 앨범을 발표할 때만 해도 이제 음악으로 강타의 아성을 압도할 만한 뮤지션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까지 생각했었다. 이 앨범이 나온 2002년,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두 앨범이 박효신 3집 [Time-honored Voice]와 이 강타 2집 [Pine Tree]였으니.


하지만 향후 행보는 애매했다. 갑자기 방향을 선회해서 R&B 풍의 음악을 선보이더니 그것이 표절 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 주인공은 3집의 '가면'이라는 곡인데, 베이비페이스(Babyface)의 'The Loneliness'라는 곡과 유사성이 매우 짙다. 판단은 비교해서 들어보고 각자의 몫으로 남기기로...


아무튼 나의 강타는 2집까지이다. 그 이후부터는 다른 좋은 뮤지션들이 너무도 많이 쏟아져나왔고 팝까지 들어야 하는 바람에 내 마음에 들지 않는 3집을 내놓은 강타를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대중이 이만큼 냉정한 것이다. 백 번 잘해도 한 번 못하면 끝. 그게 대중의 마음이다.


어휴, 아티스트들은 얼마나 힘들까. 게다가 그토록 변덕스러운 대중의 마음을 끝까지 붙들고 '믿고 듣는 아티스트'가 된 몇몇 아티스트들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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