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눈을 떴을 때, 세상은 하얬다.
공기에는 먼지가 없었고,
소리엔 그림자가 없었다.
여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땅은 부드러운 빛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발끝이 닿을 때마다 물결처럼 파문이 번졌다.
하늘은 유리처럼 맑았다.
도시 전체가 빛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건물엔 문이 없었고,
사람들은 걸으면서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엔 아무 감정이 없었다.
“……여긴 어디죠?”
대답은 없었다.
대신 공기 속에서 울리는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 빛의 도시.
— 완전한 곳.
여자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멀리, 언덕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흰 빛 속에서, 그의 형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단번에 알아봤다.
“당신…” 남자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곳에서… 살아남았군요.”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어딘가 흔들렸다.
“살아남은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이곳은 너무 고요해요.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아요.”
남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이곳엔 죽음도, 고통도 없지만
웃음도, 눈물도 없다는 것을.
“여긴… 평화로운 곳이에요.”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어딘가 낯선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봤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모두 빛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발밑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그 순간,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여기 사람들은… 어디를 보고 사는 거죠?”
“보지 않아요.”
남자가 대답했다.
“이곳에서는 볼 필요가 없으니까요.
모든 것이 이미 완전하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여긴 살아 있는 곳이 아니에요.”
남자의 시선이 흔들렸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멀리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렸다.
도시 전체가 그 소리에 따라 흔들리듯 반짝였다.
공기 속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에 아무 감정이 없었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때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긴 어둠이 닿지 않는 곳이니까.”
그러나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쳤다.
어둠이 닿지 않는 곳엔, 따뜻함도 닿지 않는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 위, 눈부신 빛의 중심에서
또 한 번의 ‘정화의 빛’이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이번엔, 위에서가 아니라 아래로 향하는 빛이 아니었다.
빛은 그녀가 서 있는 곳 바로 위로 천천히 모여들고 있었다.
남자의 눈이 커졌다.
“안 돼!” 그러나 이미 늦었다.
빛이 터지듯 퍼지며, 두 사람을 완전히 감쌌다.
그리고 순간 세상이 정지했다.
빛의 도시가 숨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