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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우는 여자

(6) 사무실 아웃사이더, 왕따의 경계에서

by 박지아

출근하는 길에, 가끔 그녀를 봅니다.


맞은편 오피스텔 주차장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가 하나 있습니다. 옷차림을 보면, 집에서 쉬다가 막 나온 것 같지요. 대충 손으로 빗어 넘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치타 무늬가 들어간 주황색 모자를 눌러썼지요.


이 여자가 매일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건 아니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봅니다.


제가 6시 30분에 출근하니까, 이 여자도 부지런히 새벽부터 나와 담배 한 대를 태우는 거죠. 나올 때는 늘 똑같은 주황색 모자 하나 눌러쓰고, 오피스텔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허공을 보면서요.


대관절, 새벽부터 담배를 태울 일이 뭐가 있나 싶지만, 또 나름의 사연이 있으려니 합니다.


담배에 불을 붙여야만 굴러가는 하루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밤늦게 퇴근하는 여자인지도 몰라요.


오피스텔 엘리베이터를 보면, 출근하는 저와 꼭 마주치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는 퇴근을 하는 길이고, 나는 출근을 하는 길이죠. 몸집이 자그마하고 얼굴이 말갛게 흰 남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질 때도 있지만, 안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오늘 출근길에는 담배 피우는 여자가 없었어요.


요 근래 좀 보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담배를 끊기로 한 건가, 다른 담배 자리를 찾은 건가. 일이 생겼나. 이사를 갔나.


서둘러 걸음을 옮깁니다.


골목을 나서면 큰길이 나오고, 쿠팡 광고 LED를 단 빨간 버스가 한 대 지나가고. 소리내강변에는 달맞이꽃이 한창이라 무성하게 노란 꽃을 피우고, 러닝 하는 남자, 산책하는 어르신.


아, 그리고, 다리를 건너기 전 무렵 꼭 마주치는 닥스훈트 한 마리와 그 견주님도 있지요. 강아지의 포동포동한 몸을 보니, 올해 내도록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얼레벌레 주위를 살펴보며, 경의중앙선 팔당행 급행을 타고 갑니다.


엄지손가락으로 유튜브 쇼츠를 넘기면서 시간을 죽이다가, 문득, 아. 그 여자는 영영 담배를 안 피우러 나오려나.


담배 시간을 바꿨으려나.


불행배틀에서
내가 질 리가 있겠어요?


불행배틀이라는 게 있지요.


누가 더 불행한지 승부를 내듯이, 자신의 서러운 사연을 털어놓는 겁니다. 더 많고 무거운 불행을 쏟아낸 사람이 승부의 승리자가 되죠. 그런데 이 배틀에서 이기는 게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고, 돌아서면 꿉꿉합니다. 괜히 소주나 당기고.


어제 지인과 이 불행배틀을 했습니다.


니 회사생활이 더 힘든가, 내 회사생활이 더 힘든가를 놓고. 서로 이렇게 고생한다고 한풀이를 해 본 거지요.

저는 이 배틀에서 확실하게 이길 증거자료를 첨부하기 위해, 회사 메신저를 켰습니다. 다른 직원들과 주고받은 1년간의 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더군요.


제가 쓴 채팅의 내역을 보니,


<죄송합니다>가 30%.

<감사합니다>가 30%

그 외 잡소리들이 40%


헛웃음이 나더군요.


진작 녹음기를 샀었어야 했죠.


이 사무실에서는 주로 사람을 '진실의 방'으로 불러내서 푸닥거리를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입사 초기 3개월간 회전문을 돌듯이 '진실의 방'에 호출됐죠. "잠시 ㅇㅇ실로 오세요"라는 메시지를 받을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그 방에 가면 싸늘한 테이블과 함께 취조실 같은 조명이 켜지고, 제 앞에 상사가 앉습니다. 이어지는 일은 잘들 아시겠지요.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겪고, 상사가 먼저 나가면, 저 홀로 방에서 서러워서 울다가 나오는 겁니다. 제 울음소리는 '진실의 방' 밖으로 다 새어나가 모든 직원이 듣지요. 그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방문을 열고 나와 자리에 앉으면, 다른 직원들이 흘끔흘끔 보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자존심은 무너지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지어야 할 것 같아서 회사 메신저를 켜고, 오늘 굿판의 물주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넵니다.


<오늘 말씀해 주신 것 잊지 않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채팅기록을 읽으니, 이런 기억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더군요.


입사초기에 내가 뭘 그렇게 잘못을 했나, 곰곰이 돌아봅니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때에는 큰 실수를 한 줄 알고 주눅 들어서 벌벌 떨었는데, 1년 다녀 본 지금, 돌이켜보면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사람을 쥐 잡듯 잡았더군요.


다른 회사에서 굴러먹다 온 제가 미워 보였던 건지, 버르장머리를 잡으려고 한 건지, 너 싫어하는 거 알면 자진해서 나가라는 뜻인지.


좌우간, 이날 지인과의 불행배틀에선 제가 승리했습니다.


당연하죠.


제가 불행배틀에서 왜 지겠어요.


매일매일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근 한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셨습니다.


퇴근하면 한 잔.


주말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잔.


그렇게 한 잔이 반 병이 되고, 반 병이 한 병이 되고.


테라스에 와인 병이 어수선하게 쌓여 있어요.


죄다 '모스카토 다스티'입니다.


원래 저는 여름에 '샤르도네'를 마십니다. '쇼비뇽블랑'은 3~4일 묵으면, 아무리 보관을 잘해도 짠맛이 날 때가 있어서 싫고.


그런데, 샤르도네는 2~3만 원대에서는 괜찮은 퍼포먼스의 와인을 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눈을 낮추다 보니, 모스카토 다스티에 꽂힌 거죠.


여름이라 적당한 탄산감에 달달한 맛에 배나 아카시아 향기까지 참 좋아요. 마침 야당역에는 괜찮은 술가게가 있어서, 거기서 종류별로 모스카토 다스티를 한 병씩 사 오곤 합니다. 7월 들어서 마신 것만 해도 12병은 되지요.


근데 와인만 마시는 건 아니고.


좋아하는 '파이어볼'이라는 위스키. 가끔 '말리부' 리큐르.


물론 양주만 마시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애사비(애플사이다비네거)'에 꽂혀서, 이걸 잔뜩 사다가 과일 소주에 섞어 먹습니다. 탄산감도 있으면서 향이 좋고, 새콤달콤하니 술이 술술 들어가지요.


제가 좋아하는 라로쉐 고블렛잔(손잡이가 짧은 와인 잔)에 얼음을 넣고, 애사비와 섞은 '새로' 다래맛을 쫙 부으면, 에어컨도 필요 없죠.


술에 대한 말이 길었지요. 나중에 이걸로도 한참 떠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좌우간 핵심은, 그렇지요.


매일매일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요.


습한 밀림에 던져진 낡은 전차,
나의 몸뚱이


회사에서 서러운 일이야 누가 없겠어요?


지나간 일은 묻어버릴 수 있습니다. 회사 메신저에 까마득하게 적혀 있는 '죄송합니다' 따위는 모두 과거의 일로 묻어야 하지요.


그게 '회복탄력성'이 좋은 거라거나.


'바람직한 인재상'이라거나.


'좋은 직원', '착한 직원', '우수한 직원'이라면 '진실의 방'에서 3박 5일 잡도리를 당해도, '아, 부족한 내 잘못이구나' 정직하게 깨닫고 행동도 눈빛도 바뀌어야 하겠지요.


전 늘 좋은 사람이고 싶으니까.


근데 나이가 38개나 먹었더니, 게을러졌나 봅니다. 오만한 곰팡이가 영혼 곳곳에 슬었나 봐요. 바뀌기는 싫고, 그렇다고 더 욕을 먹기는 싫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제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냈습니다.


지금은 회사에 적응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아웃사이더와 사내 왕따의 어느 경계선에 있지요.


점심도 혼자 먹고, 업무상 이야기만 나눕니다.


저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없어요.


아, 어제 있었군요.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회사 얼음에 손을 댔습니다. 얼음을 빼서 보관함에 채우고, 트레이에 새로운 채웠지요. 그런데 이게, 매일매일 얼음을 먹는 직원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요. 대뜸 메신저로 얼음 트레이에 물을 꽉 차게 부으라고 질책하더군요. 그렇게 안 하면, 자기가 얼음을 뺄 때 잘 안 빠진답니다.


<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보내고, 잠시 옥상으로 올라갔죠.


뛰어내릴까.


한 3초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도마뱀이 35마리나 되니까, 얘들과 살아야 하니까 얌전히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얼음에 대해 메시지를 보낸 직원에게 활짝 웃으며, "어머, 불편하셨나 봐요. 미안해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습니다.


이런 일 정도는 훅 잊어도 괜찮겠지만, 그녀가 그냥 해본 말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겠지만, 계속 생각나고 잊히지 않더군요.


결국 퇴근해서는, 또 술에 손을 댔습니다.


그런데, 앞서 썼다시피 저는 그냥 마시는 건 싫어하니까.


타트체리향 애사비에 과일소주를 부었죠.


얼마 전에는 또 애플민트 화분 하나를 샀거든요.


이파리 몇 개 뜯아다가, 주방가위 거꾸로 들고 방방 찧어서 그 위에 잔뜩 뿌립니다. 젓가락으로 휘적휘적 저어서 한 입 마시면, 큰돈 들여 홈바 차릴 필요가 없어요.


정말 맛있거든요.


연거푸 몇 잔, 취할 정도로 마시고 침대에 몸을 던졌습니다.


이상해요.


내 책은 곧 출간될 거고. 글 쓰는 건 여전히 재밌고. 술도 맛있고, 내 도마뱀들은 귀여운데.


왜 모든 것들이 엉망일까.


왜 가솔린처럼, 몸에 술을 부어 넣지 않으면, 하루가 더 굴러가지 않는 것인가.


왜 이리 하루가 무거운가.


낡은 전차 같다. 습한 밀림에, 그 늪에 바퀴가 빠져 녹슬어버린 무거운 철바퀴 같구나. 그 위에 머무는 건 작은 새들과 잡초들 뿐.


아, 재미없어라. 아아.


먹고사는 일은 너무 고달프고,


나도 누군가에겐 새벽부터 담배 피우는 여자로 보이겠지.


그렇겠지.


누구에게나 인생은 가혹하다지만


이렇게까지 가혹하구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곁을 스쳐 지나가며

오늘도 출근을 했습니다.


담배 피우는 여자가 없었어요.


아쉬운 마음에 그쪽을 살피다가,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골목을 나서면 큰길이 나오고, 쿠팡 광고 LED를 단 빨간 버스가 한 대 지나가고. 소리내강변에는 달맞이꽃이 한창이라 무성하게 노란 꽃을 피우고, 러닝 하는 남자, 산책하는 어르신.


맞은편에서 닥스훈트 한 마리와 그 견주님이 오시더군요.


나는 이들을 아는데 이들은 나를 알아볼까.


그런데, 그렇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는가.


내가 그 담배 피우는 여자를 안다고 한들, 그 여자의 하루가 담배로 시작된다고 한들, 그저, 담배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날도 있다고 이해하며 조용히 눈을 깔고 지나가 주는 것 외에는 어떤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가.


낯선 타인들 안에서, 낯선 타인들과 함께.


저는 오늘도 그 골목을 지나고, 사람들 틈을 걸으며, 이름도 사연도 모르는 타인들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살아 있다는 건, 이런 일의 반복일지도 모르겠어요.


출근하고, 견디고, 먹고살고, 다시 취해서 자고.


담배 피우는 여자도, 아마 그렇겠지요.


그녀 나름의 몫이 있을 테니까. 내가 술을 마시듯, 그녀는 새벽부터 담배를 태우며 하루를 시작하는 거겠지요.


연기를 빨아들이며, 멍하니 새벽 너머의 어딘가를 바라보며. 그녀의 눈길 끝에 닿은 것이, 희망인지, 고통인지, 외로움인지, 투쟁인지, 막연함인지. 그건 그녀만이 알겠지요.


하루하루가 그저 넘기기에 버거운 사람들은, 아마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겠지요. 누군가는 담배로, 누군가는 술로, 누군가는 반려동물의 체온으로.


그렇게 하루를 조금씩 기울이며, 바닥을 긁듯 살아갑니다.


담배 연기처럼 허공에 머물다 이내 흩어지는 사람들.


그중 하나가, 나고. 또 그 여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녀가 다시 그 자리로 나와 담배를 피운다 해도 저는 여전히 모른 척 지나칠 겁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란, 어쩌면 그저 알아보지 않는 일일지도 모르니까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렇게 조용히.


투명하게 부서지는 담배 연기처럼 곁을 스쳐 지나가며.



박지아.

편집자. 에세이스트.

cak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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