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지상에 떨어진, 내 이름 석자여
술을 못 끊은 지 한 달이 넘어갑니다.
브런치에 글을 뜸하게 올린 게,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맑고 깨끗하고, 보기만 해도 정화되는 글을 쓰고 싶은데, 요즘 브런치에 쓸 글이라곤, 죽을 것 같다는 내용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불운의 폭풍 속입니다.
며칠 전엔 책의 ISBN(가격표 위에 붙은 번호)이 틀려서 양장 커버를 다시 인쇄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5개월 전에 끝낸 책이 망령처럼 솟아나서 제 발목을 붙잡네요.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얼음 위를 내딛는 것 같아요.
내 이름이 불릴 때면,
나쁜 일만 일어나.
책 만드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오탈자 없는 완벽한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죠.
저자는 완벽한 책을 원하는데, 책을 만드는 데 주어진 시간은 짧고, 항상 내 능력은 여기에 미치지 못하죠.
인쇄실에 OK(인쇄에 들어가도 좋다는 마지막 사인)를 보낼 때면 공황이 옵니다. 인쇄 완료된 따끈따끈한 책이 나와도 기쁘지 않습니다. 또 뭐가 틀렸나 소름이 끼치죠.
제 정신병의 8할은 편집자라는 직업 때문에 생겼습니다.
양극성장애
강박증
범불안장애
편집증
컨디션이 나빠지면 ADHD 증상도 올라옵니다.
저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정신병동이에요.
어쨌든, 오자가 난 표지 커버는 다시 인쇄해야 하고.
저에 대한 상사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일개 사원인 제가 질 수 있는 책임이라고 해 봐야, 인쇄비를 댈 수 있을 리도 없고, 냅다 사표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수리는 안 됐습니다.
그저, 어떻게 죽어야 하나.
우리 집 복층 난간에 끈을 맬까. 17층이니까 뛰어내릴까.
온갖 궁리를 하다가, 메모장을 켰습니다.
저는 제 이름이 참 싫어요.
박지아.
박 대리.
박 주임.
지아 씨.
이름이 불릴 때면, 늘 나쁜 일이 일어났죠.
예고처럼.
마치 곧 밤이 쏟아질 듯한, 주홍빛 하늘의 예고처럼.
꼬질꼬질,
지저분해진 이름에 대해
주말 아침에 눈을 뜨면, 냉장고를 열고 요즘 꽂힌 '새로' 다래맛 한 병을 꺼냅니다. 여기다가 탄산수를 붓고 빈속에 쭈욱 마십니다. 안주도 안 먹습니다. 술이 맛있는데 안주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아침 7시부터 마시니까, 11시쯤 되면 딱 노곤노곤해집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또 냉장고를 열어 술을 꺼냅니다. 배가 고프니까, 안줏거리도 배달시키고, 심심하니까 도마뱀들한테 가서 시비도 겁니다. 주저앉아 다시 마시다가, 소파에 누워 있다가, 또 잡니다.
소파에 누워 높은 집 천장을 보면, 괜스레 위장이 헛헛해서 술이 더 당깁니다.
창밖 테라스 너머에는 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지나가고. 성냥갑 같이 빼곡하게 들어선 작은 아파트단지들. 저 한 집당 6억 남짓하려나. 나는 평생 살아도 못 사겠군, 싶고. 저 칸칸이 들어앉아 있을 머리가 새카만 사람들. 그 사람들이 안고 있을 고민과 번뇌와 우울과 불안과......
저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사랑할까.
좋은 뜻으로 많이 불리어 봤을까.
자신의 이름이 그들을 행복하게 할까.
내 이름은 왜 이리 지저분한가.
증발해 버린 사람들
『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프랑스의 언론인인 레나 모제와 그녀의 남편인 스테판 르멜이 쓴 책입니다. 일본 사회에서 스스로 사라지는 일본인들에 대한 책이죠. 평생에 걸쳐 쌓아 온 경력, 가족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증발하듯 사라진 사람을, 일본에서는 ‘죠-하츠(蒸発)'라고 부릅니다.
삶을 버려두고 달아나는 거지요.
우리나라 말로는, '야반도주'가 적절할까요?
어떤 사람은 수치심을 견디다 못해 사라집니다.
사회에서 승승장구하다가, 갑자기 해고가 되거나 실적이 떨어지면,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지는 거지요.
어떤 사람은 삶의 무게 때문에 증발한다고 하는군요.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는 사람, 무거운 빚을 진 사람. 이런 사람들이 삶의 모든 것을 안고 사라져 버린다고 합니다.
가출한 청소년들도 증발해 버리죠.
일본에는 이렇게 증발하는 사람들을 위해, 흔적을 지워주는 직업도 있다는군요. 고객의 삶의 규모에 따라 받는 금액이 다르다고 합니다. 혼자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은 좀 더 저렴하고, 사회생활을 많이 한 사람은 좀 더 비싸지요.
이렇게 증발한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요?
거리로 갑니다.
슬럼가에서 새로 자리를 잡는 거지요. 이곳에서 빈민으로 살아갑니다. 그래도 그게 자유롭다고 해요. 많은 것을 가지고, 이걸 유지하기 위한 압박과 책임감 속에서 살아가느니,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택하는 겁니다.
다, 지워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그게 어떤 삶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마도,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삶이겠지요.
이름을 빨아 쓰고 싶은 날,
도마뱀에 발목 잡힌 삶
저도 새 이름을 갖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름 석 자를 빨아 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완전히 새 이름으로, 좋은 칭찬만 잔뜩 듣는 이름으로. 어디에 가나 반짝이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요.
그러면 내 하루하루도 좀 더 가벼워질까.
한숨을 쉴 날도 줄어들까.
먹고사는 일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제가 동경하는 친구들 중에는 이름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내가 쟤 이름을 쓰면 행복할 것 같아요.
쟤 인생을 그대로 살고 싶죠. 좋은 직장, 든든한 남편, 예쁜 아기. 상냥한 시댁. 건강한 부모. 남 부러울 것 없는 삶.
그에 반해, 저는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없게 발목을 붙잡는 35마리 도마뱀과 살고 있지요. 물론 집은 좋지만, 여기서 하는 일이라곤 퇴근 후에 술 마시는 것 밖에 없는.
그리고 가끔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삶.
내 이름 석자를 다시 파면, 달라질 것인가.
내 이름이 다정하게 불린다면, 내 삶도 달라질 것인가.
사고를 치고,
박 대리. 박 주임. 지아 씨. 그만 불리고.
학창 시절에 그랬듯이, 언제나 상을 받기 위해 조회시간에 불리었듯이. 내 이름 '박지아' 세 글자가 행복해질 날이 올 것인가.
증발해 버릴
내 이름을 쓰다
브런치 작가님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저처럼 새롭게 시작하고 싶으신 적이 있는지.
자기 이름이 밑도 끝도 없이 혐오스러운 적이 있는지.
아니면, 정말로 기존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 성공하신 분이 있는지.
저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제 이름을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뜻 지(志).
예쁠 아(娥).
무슨 뜻인지는 영 모르겠고.
친가에서 태어난 첫 아이라 할머니께서 절에 가서 소중히 받아온 이름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이리 휘청거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께, 영 효도는 못하겠어요.
그저 죽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며.
이 이름이 40세가 되기 전에 사망신고서에 쓰이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박지아.
이 세상에 떨어진, 내 이름 석 자여.
증발할 듯 투명한 세 글자여.
박지아.
편집자. 에세이스트.
caki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