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글귀를 기록합니다:)
열여섯 살은 아직 어린데
by me.
역시 모든 외로운 이야기가 그렇듯, 이 이야기도 외로운 밤 시작한다.
찬란하기에는 너무 어둡고 이른 밤.
아파트 앞에 한 아이가 선다, 크고 무거운 가방이 아이를 압도한다.
폰을 꺼내든 아이는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혼자이기엔 너무 비참해서,
10시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가장 활발한 때라서,
어른들은 청소년의 고충 따윈 쉽게 넘기기 마련이라서.
전화를 받는다,
첫마디부터 살벌하다.
차가운 밤공기 사이를 가로등 불빛이 날카롭게 가른다.
"나 방금 인생에 대해 겁나 현타를 느꼈거든?"
그렇게 쏟아낸다.
밤의 어둠을 동지삼아,
차가운 공기를 친구 삼아,
메마른 나뭇가지와 메마른 사람조차 공평히 내리쬐는 가로등 밑에서.
그렇게 쏟아낸다.
성실을 빼면 시체였던 아이가 성실도로 누군가에게 졌다는 사실,
그로 인해 자신이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걸 각인시킨 사실을.
그날따라 밤은 외롭고 사람은 적다.
"근데, 너는 진짜 열심히 하는 게 맞아."
"아니, 아닌 것 같아. 이제는 진짜 아닌 것 같아."
이미 한 명은 부서졌고, 나머지 하나는 그런 친구를 너무 잘 안다.
그렇게 토로한다.
넓은 세상을 겪으며 나보다 우월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고.
또 다독인다.
세상에서 최고가 될 순 없고 넌 늘 잘하고 있었다고.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왈가왈부하는 절친을 보며 사람들은 무어라 할까.
별 하나 뜨지 않은 그 저녁은 봄이라기엔 좀 추웠다.
슬며시 주제가 옮겨간다.
새로운 주제는 강한 햇살이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포근한 3교시에 치렀던 적성검사.
"나 오늘 적성검사에서 멘탈 터졌거든."
"왜?"
"그냥. 나는 진짜 하고 싶은 게 1도 없는 아이라는 걸 알게 돼서.
그래서 나 자신이 또 한심해서."
한숨이 무겁다,
무거워서인지 숨이 여느 추운 저녁처럼 뭉근하지 않다.
"근데, 진로를 우리 나이에 찾으라는 거 자체가 솔직히 말이 안 돼.
그렇게 많은 학원과 숙제를 감당하고
선행도 하고
내신도 다 좋게 받고
생기부도 챙기고
독서록도 쓰면서
봉사활동도 하고
상장도 타고
학급임원도 하고
거기에 또 진로도 정해야 하고
진로에 맞춰서 생기부를 작성하고
또 그 진로에 맞는 검사결과를 받아야 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친구의 말투에 아이는 웃음을 터트린다.
오랜만의 웃음이 무거운 공기를 산산조각 깨트린다.
부서져버린 공기 사이로 웃음소리는 가로등에 겨우 닿는다.
"말이 안 되지. 우린 버티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칭찬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진로가 유난히 크게 다가온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한다.
긴긴밤이란 게 이런 걸까.
나란 인간은 그래.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나아갈 자신도 없고.
꿈을 꿀 용기도 꿈에 책임을 질 용기도 없고.
열심히 살면 정해질까 싶어 열심히 살아봤는데 이젠 그 열심히도 못하고.
무겁고 외로운 밤공기 사이로 더욱이 무거운 한마디가 떨어진다.
그 말은 이미 갈라져버린 공기 사이로 추락해 바닥에 부딪힌다.
둔탁하다.
"열여섯 살은 아직 어린데."
그런 줄 알았는데.
열여섯 살은 아직 어린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우정 안에서 무한히 느낀 사랑을 끝으로 통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조금은 들 비참해진 기분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비참하면 오열해야 하는데.
그것도 안되면 신나게 웃어야 하는데.
둘 다 못해서 나는 하소연한다.
... 고마워 빛아:)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