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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협 May 23. 2024

비둘기와의 전쟁 후 오케스트라

DAY 9 베네치아 시내 관광

날씨는 여전히 꾸물거린다. 9일간의 쉴 틈 여정 끝에 다리의 피로가 몰려오면서 관광의욕이 쑥 떨어졌다. 어디 좀 앉아서 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밥값이든 차값이든 자릿세를 상납하지 않고는 엉덩이 붙일 자리를 한 뼘도 내주지 않는 베네치아의 장사치 인정 덕분에 계속 돌아다녔다. 춥고 배도 고프고 하니 식당에 가서 점심이라도 먹으면 좋으련만, 막상 메뉴를 정하자니 딱히 입맛 당기는 것이 없다. 피렌체와도 달리 커피세트도 무지 비싸서 8유로씩이나 한다. 배는 좀 고프겠지만 일단은 추위라도 피하자라는 심정으로 페니체 극장에 가서 뭉개려고 해 보았지만 매정한 개표 직원은 이탈리아어로 딱 한마디 "5시(cinque)!"라고 외친 채 영어든 이탈리아어든 더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Only five o'clock?" 너무나 당황한 나는 의미도 없고 필요도 없는 외마디 비명 같은 질문을 내지르고는 뒷걸음질 쳐서 극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직원의 기세에 밀려 도망친 것이라 할 만하다. 정처 없이 계속 걷자니 발도 아프고 시나브로 젖어드는 옷에 슬슬 짜증도 난다. 문득, 어제 지나가면서 얼핏 본 산마르코 광장의 간이 벤치, 엄밀히 말하면 철봉 위에 깔아놓은 합판이 생각나길래 괜히 또 들떠서 가봤다.




두칼레 궁전 처마 밑 한편에 합판벤치 딱 한 개가 차려져 있었고, 자리도 딱 한 자리 남아 있었다. 마치 불쌍한 빈민을 위해 긍휼한 성모마리아께서 마련해 주신 것 같았다. 비도 질퍽질퍽거리고, 바닷바람도 싸늘했다. 앉아 있다 보니 졸음이 밀려왔다. 두리번거리니 회랑 안쪽 벽면에 붙어 있는 돌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옳다쿠나 하고 이동했다. 안쪽이니 덜 춥겠지 하는 예상이 무색하게 싸늘한 바닷바람은 계속 스며들어왔다. 그나마 등을 기댈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잠시 후 옆 자리에 웬 커플이 왔다. 말투를 들어보니 동유럽 출신인 것 같다. 가방에서 빵 쪼가리와 사과를 꺼내 나누어 먹는다. 젊은이들의 소꿉놀이 연애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데가 있다. 커플은 간단히 요기를 하자마자 기세 좋게 일어났다. 젊다는 건 좋다. 그새 기력이 다 회복되었나 보다. 남자와 여자는 바지에 붙은 빵 부스러기를 바닥에 탁탁 털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진격의 거인 떼들처럼 비둘기 수십 마리가 몰려왔다. 광장에 있던 놈들은 건물 턱을 점프해서 올라오고, 먼 데 앉아있던 놈들은 쌩 하고 이 쪽으로 돌진해 왔다. 분연한 비둘기의 폭동을 목격한 나는 질겁했다. 비둘기들이 내 발을 밟을 것 같았다. <나 홀로 집에>의 비둘기 아줌마처럼 나까지 둘러쌀 것 같았다. '저리 가! 저리 가! 이 망할 비둘기 놈들! 빌어먹을 커플 놈들!' 비명을 지르며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인간에 비하면 비둘기 따위는 하찮은 미물인데! 비둘기는 나에게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을 텐데! 하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아무리 강력한 무기라도 인간의 청결욕구에는 무너지는 법이다. 오늘 인간 대 비둘기의 전투는 참패이다. 도망가는 와중에 별안간 떠올랐다. '두칼레 궁전 통합티켓으로 다른 박물관도 갈 수 있다!' 여태 왜 그걸 잊고 있었지. 재빨리 코레르 박물관(Museo Correr)으로 입장했다. 




3시간 동안 산마르코광장에서 떨고 도망 다닌 헛짓거리를 위로하고 망각시키려는 듯 환영의 빛이 나를 감쌌다. <플란다스의 개>의 네로가 눈발을 헤치고 추위에 떨다가 아늑한 성당 <성모승천> 앞에 엎드렸을 때처럼, 사방이 반질반질한 대리석과 휘황찬란한 장식으로 가득 찬 공간에 나를 맡겼다. 따뜻한 온기에 몸을 묻었다. 코레르 박물관은 베네치아 토박이 귀족이던 테오도로 코레르가 수집했던 보물을 사후 기증한 것이다. 건물 자체부터 위용이 대단하다.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점령했을 때 점령본부로 차지했었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도 한 때 자리를 잡아서 엘리자베스 '시시' 황후도 이용했었다. 이런 위대한 건물을 왜 지역 박물관이라 무시했었을까. 조각의 대가 안토니오 카노바의 작품들, 피사노 가문의 문고 등 볼만한 전시품도 많고 무엇보다 궁전이라 그런지 천장과 벽등 인테리어가 입이 떡 벌어진다. 예정에 없이 얼떨결에 찾아온 박물관이지만 모르고 지나쳤더라면 너무나 아쉽고 후회했을 곳이다. 지금까지 내가 다녀간 도시와 장소들에서도 그렇게 후회로 남을만한 명소들이 많이 있었겠지. 다음에 꼭 다시 오자, 다짐은 하지만 인생은 장담할 수 없어 슬프다. 보석 같은 곳들은 그저 기억 속에 간직하며 살아가야 하겠지.

이제는 체력이 정말 다 떨어져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이제 식욕도 좀 돌고 마침 박물관 카페가 보여 흥분하며 라테마키아토를 주문했다. 옆쪽 진열대에 보니 프로슈토 샌드위치가 있어 같이 시켰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아뿔싸. 이탈리아 햄은 내 입맛에 영 안 맞는다는 것을 깜빡했다. 잘 숙성된 프로슈토는 원산지의 풍미를 한껏 풍기며 누린내와 쉰내를 여과 없이 분출하고 있었다. 발효가 잘 되었다는 것은 이방인에게 그만큼 쉽게 허락해주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애초에 홍어를 먹지 못하는 내가 유럽 원산지의 햄을 탐냈던 것이 모순이고 역설이다. 입에 들어가는 순간의 역함은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을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엊그제 라스페치아 맥도널드에서 이탈리아 햄의 구린 맛을 충분히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그새 또 잊어버리고 외양에 혹해 햄을 탐내고 말았다. 눈물을 훔치며 햄이 묻지 않은 빵 쪼가리만 조금씩 떼어먹고 말았다. 피 같은 돈 10유로가 아까웠다.




오후 4시 40분쯤 되어 드디어 페니체 극장에 입성했다. 페니체 극장은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 비해 규모나, 실력면에서 한수 아래라고 한다. 그렇다 해도 비교적일 뿐이지, 몇백 년을 이어온 음악예술에 대한 전통과 연륜이 어디 가랴. 세계적으로 보면 어디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란다. 

극장 입구에서 표를 제시하고 신나는 마음으로 서둘러 입장했다. 나는 바로크 귀족의 느낌을 느껴보고 싶어 특별히 박스석으로 주문했다. 3층 박스석은 1인당 165유로. 예매는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했다. 층마다 안내해 주는 가이드도 있고, 비용을 내야 가능한 건지 옷을 받아주는 사람도 있다. 박스석은 보통 관람객이 도착하기 전에는 폐쇄해 놓았다가 안내원에게 표를 보여주면 문을 열어준다. 박스석은 4인 1실이며, 앞열에 의자 둘, 뒷열에 둘씩 총 4 좌석이 있다. 앞열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뒷열 사람들이 관람하기 힘드니까, 앞열 사람들이 배려심에서 벽에 붙어준다. 가족이나 일행끼리 왔을 때는 오붓하고 다정다감하게 관람하기 좋겠지만 그 외에는 딱히 메리트가 없는 박스석이었다.  물론 다들 공연 관람이 목적이라 옆사람이 무얼 하든지 크게 개의치는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끼리는 수다 떨기도 그렇고 좁은 공간에 2시간 여를 붙어있으니 어색한 공기에 숨이 막혔다. 

새해의 기운이 느껴지도록 베토벤 <교향곡 7번>으로 시작하고, 루이지 덴차의 <푸니쿨리, 푸니쿨라>, 푸치니의 <토스카>와 베르디 <라트라비아타> 등을 연주했다. 송년음악회라 그런지 흥겨운 곡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자리가 멀었는지 테너 성량이 약했는지, 소프라노는 안 그랬는데 테너 소리는 악기소리에 파묻혔다. 경직되지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소프라노, 테너가 관람객들이랑 농담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소프라노가 입은 빨간 드레스가 예쁘다고 사람들이 칭찬했는지, 장난으로 뽐내면서 가슴을 추켜올리면서 애교를 부렸다. 그리고 지휘자가 키가 굉장히 작았는데, 키가 큰 소프라노를 데리고 나오고 들어갈 때 종종거리면서 쫓아갔다. 한 번은 그렇게 쫓아가다가 소프라노의 치마를 밟아서 다 같이 웃어제꼈다. 연출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연말에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웃게 해주는 음악회가 긴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부러웠다.

인터미션 때 로비에 나가보니 다들 샴페인 잔을 들고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다. 송년음악회라 그런지 역시 부부가 같이 온 경우가 많다. 나이가 지긋한 중년 또는 노년의 커플이 우아한 복장으로 와서 다른 커플과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이제는 부럽다 하기도 모자란, 그저 남의 이야기 같다. 캐주얼한 음악회라서 그런지 드레스까지 입은 여성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평소에는 절대 입지 않을 듯한 과감한 원피스 등을 입은 사람이 많았다. 

원래 오늘 일정을 세우기로는 오전에 아웃렛에 갔다가 오후 3시경 복귀해서 오후 5시에 음악회를 보려고 했는데, 하루 일정을 완전히 바꾸도록 아침의 삽질을 거하게 해 준 과거의 나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비둘기와 전투도 하고, 코레르 박물관도 관람해 보고, 어쨌든 하루의 마지막은 흥겨운 음악회로 잘 끝냈으니 인생이라는 게 이렇게 우여곡절, 다사다난 해도 말년이 행복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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