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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히 마주친 May 17. 2024

나 이거 왜 쓰지?

인생 혼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산예대 안에는 '텔동'이라는 곳이 있다. 텔레토비 동산의 준말로서, 굴곡이 심하지만 짧은 언덕 위에 잔디를 깔았다. 필자 키(165cm) 두 배가 넘는 거울이나 바위돌 같은 것도 몇 개 비치되어 있다. 무슨 목적으로 지었는지 미지수지만, 강의동 뒤편과 광덕산자락 사이에 숨어 있어서 외부인이 알 수 없는 장소다. 돈 아끼려고 거기서 술 마신 적도 있었다. (화장실로 가는 통로도 옆에 있어서 가능함)

처음 만났던 남자와 텔동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한 시간 정도 대화한 적이 있었다. 오해 말라. 소개팅 목적이 아니었다. 건너 건너 알게 된 사이였는데, 우연히 만나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신 게 전부였다. 내 첫인상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필자는 진짜 안 좋게 봤다. 남자는 자기 얘기만 했다. 궁금한 것도 없어 보였고, 이야기는 듣지도 않았고, 호응도 없었다. 필자는 한 모금도 남아 있지 않은 커피를 모기새끼처럼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시는 척했다. 다신 만난 적이 없었다.

이 글은 "내가 이미지가 그 정도로 좋다!"를 자랑하려는 글이 아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하루에 스무 번 이상 드나들고 있다. 마치 장염 환자가 화장실 들락거리듯이 불쾌한 쾌락을 누리면서 말이다. 복통이 바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변기에 앉아 있는 것과 아닌 것은 완전히 다르다. 부여잡고 아래위로 다 쏟아내듯이 "라이킷... 조회 수..."를 작게 중얼거렸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쓰는 사람도 없다. 생각해 보면 필자도 남의 글 잘 안 읽는다. 문예창작과(이하 줄여서 문창과) 시스템에 대해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글쓰기를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니다. 돈을 내고 글을 쓰고 발표하며 독자를 고용하는 곳이다. 문장력이 완성 안 되어 있고, 80매짜리 단편 열 개도 안 써본 이십 대 초중반 애들의 글을 '돈 내고' 읽어줄 사람을 구하기는 어렵다.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보여주는 것도 한두 번이다.

이십 대 내내 수업 발표가 있든 없든 혼자 글을 써왔다. 그땐 아무도 안 읽어줘도 상관없다고 착각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써서 클라이언트가 시키는 건 웬만한 건 거의 다 써줄 수 있는 만능 글쟁이가 되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경장편이 하나 있다. 제본을 떠 와서 빨간펜을 찾아들고 교정교열했다. 그 뒤로 입력도 하지 못했고, 퇴고하지도 못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아무도 보러 오지 않는 결혼식은 솔직히 말해 의미가 없을 것이다. 투자 비용이 아깝다는 말이 아니다. '세레머니'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드라마에서는 간혹 둘만의 결혼식을 하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그건 허구다. 실제로 사진 한 장 찍어줄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는가. 부산에 사는 친구들에게 서울에서 하는 내 결혼식의 버스 대절을 해줬는데, 고속도로에서 삼중추돌 사고가 발생해서 전원이 참석 못하는 상황.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라이킷과 조회 수를 '주식 그래프' 보듯이 들여다보는 필자의 모습. 마치 팔 년 전에 죽은 강아지 같았다. 간식 하나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꼬리치고 춤을 춰댔다. 이게 과연 맞나 싶었다. 라이킷을 눌러주는 사람들이 과연 내 글을 읽긴 읽은 걸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남의 칭찬과 관심에 이렇게 목숨 거는 사람인 줄 몰랐다.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중이다. 토실토실하던 열여덟의 여자애는 글을 왜 쓰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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