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억에 남는 고독사
다큐 시선 빈곤의 그림자
오늘 글에서 정치적인 색깔은 빼고 읽어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린다. 확실하게 지지하는 정당이 있긴 하지만, 우리 편이든, 반대편이든, 추모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다큐멘터리를 본 것은 오 년 전 가을이었다. 당시 이 주에서 삼 주 정도 일하던 회사 알바를 그만둔 상태였다. 나이가 이삼십 대라고 해서 죽음이 비켜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 고인도 미취학 아동을 키우던 삼십 대 탈북자였다. 다시 본 것도 아닌데 아직도 이름 석자가 기억난다.
"사람이 아사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 다큐에서 또 다른 탈북자가 했던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었다. 전국에서 하루 평균 열 명 정도가 고독사한다는데, 대부분 아사인 것으로 추정된다. 꼭 탈북자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고독사'라고 검색을 해서 나온 이미지를 보면 대부분 검붉은 색으로 물든 장판이 보인다. 피가 나서 응고된 것처럼 굳어져 있는데, 오래된 껌딱지처럼 딱딱해 보인다. 얼마나 처참했을지가 상상된다.
고인의 아들은 장애인이었다고 한다. 미취학 아동 돌보미나 초등학생 픽업 알바도 있다. 필자도 이십 년도 더 전에, 한 집안에 위탁되었고, 유치원이 파하면 하루 평균 네 시간 정도를 머물다가 왔다. 고인의 돈벌이가 어려워진 것은 그런 데다가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동사무소에 가서 이야기를 해봐도 절차상으로 줄 수 있는 긴급 도움이 없다고 했다고.
아마 집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무료급식소가 없던 모양이었다. 설령 있더라도 아이를 업고 가야 할 판이었을 것이다. 교회에서는 신도들에게 쌀을 무료 나눔 하기도 한다는데, 다닐 여건이 아니었나 보다. 쓰다가 보니 생각난 건데, 수도랑 전기도 끊겼을 테니 밥을 해 먹을 수는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는 내내 나란히 있을 시신이 떠올랐다. 아니, 사실은 우는 아들의 모습이 더 선명히 상상되었다. 어른도 참기 힘든 몇 주 이상의 배고픔을 참아내기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아이에게 "이제 돈이 다 떨어져서 밥을 줄 수가 없어"라고 말해야 했을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미안함뿐만 아니라, 부모로서의 체면 같은 것도 다 땅에 떨어졌을 텐데. 공영장례식장은 텐트처럼 쳐진 천막 아래서 열렸다. 향을 피우는 사람들은 영정사진에서 자신의 얼굴이 흐릿하게 겹쳐 보였으리라. "나는 고독사 할 가능성이 0%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죽음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한상옥씨와 아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