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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심장은 소리 없이 뛰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FM 91.9! 열 시의 데이트, DJ 김혁진입니다"

by 플레이런너

쿵! 열차가 다시 소리를 내다

무대는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의 모든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문화대학교 연극반 ‘씨앗’ 창립 50주년 기념식. 모처럼 연극반의 전설들이 소극장에 집합했다. 연극반 기수 3기부터 49기, 50기 재학생까지 한 세대를 뛰어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소극장 앞 잔디밭에 오십 주년 기념 전시가 펼쳐졌다. 낡은 사진들, 빛바랜 연극 포스터와 팸플릿, 그리고 여름방학 내내 동기들과 씨름하며 만들었던 액자와 판넬까지. 그 모든 것들이 무대 안팎에서 빛나던 나의 젊은 시절을 고스란히 불러냈다.

기념식의 첫 순서는 ‘씨앗’의 50주년 기념영상이었다. 스크린 위에는 씨앗의 역사와도 같은 선배 형, 동기, 후배들의 인터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영상은 그 어떤 화려한 무대 장치보다 강렬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이야기들에 씨앗인들은 웃고, 감탄하고, 때로는 뭉클해했다.

그때, 스크린 한가운데 클로즈업된 내 얼굴.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숨이 턱 막혔다. 뛰는 건 무대만이 아니었다. 객석에서도 그 이상으로 요동쳤다. 마치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풋풋하고 열정으로 가득했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잊고 지냈던 강렬한 기억들이 밀려왔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낡은 필름이 되감기듯 과거의 풍경들이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졌다. 텅 빈 무대 위로 낡은 조명이 희미하게 켜지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긴 복도를 지나,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던 문화대학교 강의실에서의 열띤 연극 연습 장면들이 행사장인 소극장을 통해서 쏟아져 내렸다.


씨앗을 틔우다

그래, 나는 다시 그 열차에 올라탄 것이었다. 출발역은 그 시절, 대학 합격 통지서를 쥐고 설렘 반, 막막함 반으로 동아리방 앞에 섰던 그날이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가장 먼저 발길이 향했던 곳은 주저 없이 연극반 ‘씨앗’이 있는 학생회관의 동아리 방이었다. 낡은 나무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 연습실 안에는 두 분의 선배가 앉아 있었다. 왠지 모르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중 창문 쪽에 발을 걸고 담배를 물고 있는 한 선배가 나를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우리 연극반에 들어오고 싶은 거야?”

나는 멋쩍게 웃으며 습관처럼 머리를 긁적였다.

“어… 삼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이 현실에서의 내 첫 번째 대사였다. 텅 빈 연습실, 낯선 선배들 앞에서, 나의 연극 인생의 막이 조용히 올라간 순간이었다.

그 문을 두드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 삼촌과의 특별한 기억 덕분이었다.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삼촌이 무대에 오르는 연극을 가족들과 함께 수도 없이 보러 다녔다. 신촌의 작은 다방이 주로 공연장이었다. 다방 한가운데에 아주 작은 동그라미 모양이 무대였다. 그 무대를 중심으로 사방에 의자가 빡빡하게 채워졌다. 그 순간의 벅찬 설렘은 나에게 잊지 못할 문화적 충격을 선사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매번 삼촌의 연기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어린 나였지만 어렴풋이 느꼈던 엄마의 시선.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엄마는 무대 뒤 삼촌의 고단한 삶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보이스카우트 할 때였다. 여름 방학 때 규모가 큰 스카우트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의 핵심은 각 학교의 장기 자랑이었다. 특기 뽐내기는 세월과 상관없이 롱런하는 프로그램임에는 틀림없다. 난 우리 학교 대표로 혼자 출전했다. 이유가 있었다. 학교에서 예선전을 실시했는데 내가 일등을 했다. 나는 삼촌의 연극에 약간의 응용을 더 해서 그대로 따라 했다. 상대방 역할까지 같이 했다. 즉, 1인 2 역이었다. 오른쪽에서 몇 마디 떠들고 바로 왼쪽으로 몇 미터 옮겨서 몇 마디 던진다. 대사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별이 저기서 떨어지는군, 우리에게 밤이 달려와' 따발총을 발사하며 무지 빠른 말로 세상에 대해 풍자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대사를 빨리 던졌다. 훗날 생각했다 혹 이 연극이 부조리극의 대표 격인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니었을까? 김혁진 주연의 1인극을 최초로 선보인 셈이다. 그런데 왠지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크게 웃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 결과 나에게 대상이라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 장기자랑은 밤에 했는데 다음날 다른 행사 때 타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나를 알아보고 눈길을 주셨다. 그때의 기분은 말도 못 하게 좋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더욱 즐겁고 열심히 하게 되었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어린 나의 눈에 비친 삼촌의 연극 모습은 세상 그 누구보다 빛나 보였다. 낡은 조명 아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 삼촌의 모습은 묘한 끌림으로 다가왔고, 언젠가 나도 연기에 궁금함과 호기심을 해결하는 때가 오리라는 막연한 확신을 품기도 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니?

그렇게 씨앗과의 첫 만남은 설렘과 어색함 속에서 시작되었다. 곧이어 나는 씨앗의 봄 정기 공연에 참여했다. 작품은 고전적인 설화나 전래동화의 형식을 빌려, 시대의 부조리와 권위주의를 풍자하는 희곡이다. 그러나 내게는 심오하다 못해 무슨 내용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던 최인훈 작가의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그 연극에서 나는 '음향'을 맡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저, 음향… 제가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용기 내어 손을 번쩍 들었을 뿐이었다. 사실 그때 나는 ‘음향’이라는 단어가 그저 좋아하는 음악과 관련된 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사춘기의 불안한 감성을 달래며 낡은 전축 위에 아끼던 최신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혼자 DJ 흉내를 내곤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FM 91.9! 열 시의 데이트, DJ 김혁진입니다!”

문을 닫고 불을 끈 내 방은 어느새 다방 DJ부스가 되었고, 나는 능청스럽고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턴테이블에 바늘을 얹었다.

"지금 흐르는 곡은… 제 마음입니다. 주파수 고정입니다." 언제나 관객은 누나 혼자였다. 음악과 마이크는 나의 사춘기를 함께 보낸 진정한 친구였고, ‘음향’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그 즐거웠던 세계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씨앗에서 내가 처음 맡았던 '음향'은 단순한 음악 재생 기술이 아니었다. 낡은 대본을 곱씹어 읽고, '김토벤 형'이라고 불리던 음향 담당 선배에게 쭈뼛거리며 '음향 플랜'이라는 낯선 용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곧 깨달았다.

"음향 플랜은 소리로 된 대본이라 할 수 있지"

"또 하나의 대본이군요"

"그렇지, 음향 플랜이란 대본 속 음향이 삽입되는 지점과 그때의 대사, 그리고 정확한 음향 시간을 세밀하게 기록한 일종의 설계도야. 배우의 침묵까지도 계산하는"

"플랜만 보면 모든 음향 동선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만들라는 뜻이군요"

김토벤 형과의 대화를 통해서 조금씩 음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김토벤 형은 음악적 조예가 깊었고, 그의 탁월한 유머 감각은 언제나 연습실에 웃음을 불어넣었다. 그는 "기차 바퀴는 뭘로 되어 있지? 하고 물어 우리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쇠? 고무?" 실컷 답이라고 생각하고 내뱉으면 "이것 봐라. 이 자식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하는 말로 허를 찔렀다. 긴장은 깨지고 끝내 답은 뭔지 알지도 못했지만 우리는 그 상황이 허탈하면서도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그의 유머는 음향 작업이 단순한 기술이 아닌, 소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즐거운 탐구 과정임을 일깨워주었다.

음향은 그저 극의 분위기를 띄우는 배경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배우들의 숨소리 하나하나에 맞춰 흐르는 극의 호흡이자 리듬이었고, 때로는 침묵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리로 구성된 또 하나의 섬세한 대사였다. 무대 위 배우들의 열연 뒤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연기, 때로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와 같았다.

음향에 대한 나의 인식은 단숨에 바뀌었다. 어린 시절 음악을 사랑했던 막연한 동경은 사라지고, 연극의 숨결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이라는 책임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곧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극 중에서 필요한 다양한 음향 효과음들을 도무지 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낡은 나무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 어린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상상 속 동물 용의 울음소리 같은 특수한 음향들이 필요했다. 수원 남문, 서울 청계천, 종로의 음악거리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큰마음을 먹고 왠지 어려울 것 같은 삼촌에게 부탁했다. 삼촌은 K방송국에서 탤런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내 예상과 달리 삼촌은 참으로 흔쾌히 도움을 주셨다. 방송국 구경에 맛난 불고기 쌈밥도 사주셨다. 식사 후 방송국 로비에서 음향실 사람을 삼촌의 소개로 만났다. 삼촌은 분명 무대에서 활동하는 탤런트였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영역 밖에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구해야 했다. 나는 그제야 연극이, 아니 모든 예술이라는 것이 홀로 빛나는 산물이 아니라, 각기 다른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 비로소 완성되는 거대한 협업의 과정임을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분과 함께 음향실로 갔다.

나의 음향 리스트 곡들이 하나씩 큰 기계음을 울리면서 릴테이프에 옮겨갔다. 음향실이라고 해도 A 릴테이프에서 B 릴테이프로 넘어가는 소리는 우리 집의 플라스틱 사출기 공장의 소음만큼이나 꽤나 큰 기계음의 소리를 내면서 착착 넘어갔다. 그것을 몇 번 반복해서 릴테이프 하나가 완성되었다. 릴테이프는 세숫대야만큼 컸고 그곳에 효과음이 전부 들어갔다.

“학생, 학교에서는 릴테이프를 쓰나요?”

나의 고개를 흔드는 대답에 방송국 음향 감독님은 다시 릴테이프를 카세트테이프로 옮기는 작업을 해주셨다.

세숫대야만 한 릴테이프가 내 주머니 속 작은 카세트테이프 하나로 압축되었다. 그것은 마치 발명품 같은 느낌이었다.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작은 테이프 하나가 가져다줄 무한한 가능성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음 날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갖고 음향실로 갔다. 매일 가는 음향실이 다른 날보다 더 기다려졌다. 나는 ‘김토벤 형’과 함께 밤새도록 그 음향 테이프를 배우들의 동선과 대사에 맞춰 꼼꼼하게 편집하고, 재생 시간을 확인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다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카세트테이프 정가운데에 위치한 구멍 난 부분을 집게손가락으로 끼워서 돌렸다. 그래야 효과음이 중간음에서 시작되지 않고 딱 처음부터 나올 수 있었다.

음향 효과음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배우들과의 신호이자 약속이었다. 아기울림소리가 너무 늦어도, 너무 빨라도 안 되는 것은 물론, 중간에 잘리거나 처음부터 나오지 않아도 안 되었다. 바로 타이밍의 예술이 음향이었다. 딱딱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음향실에서 무대의 배우 움직임과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대사를 놓치기 일쑤였다. 효과음들이 녹음테이프에 순서대로 담겨 있지 않고, 각기 다른 테이프에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K방송국에서 받은 원본 테이프의 효과음들은 길이가 길어, 연극 막의 시간에 맞추어 다시 편집해야 했다. 효과음과 시그널 음악 등을 각각의 테이프에 따로 저장한 결과, 장면이 바뀔 때마다 테이프를 일일이 갈아 끼워야 했다. 음향실의 움직임은 늘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효과음이 배우의 대사보다 늦게 흘러나오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음향, 정신 안 차려!"

연출 형의 날카로운 시선이 등 뒤를 찌르는 듯했고, 손끝이 덜덜 떨렸다. 배우와 음향과의 반복적인 훈련, 그것이 바로 실수가 줄어들게 하는 생명과도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공연 날, 극장의 조명이 커졌다. 조명의 사인에 따라 내가 무대 밖의 주인공이 되어 음향실에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해금의 애잔한 선율과 슬픈 음색이 어우러진 '아리랑'이 스피커를 통해 소극장에 퍼진다. 아리랑은 한국적인 정서와 보편적인 비극성과 희망을 동시에 갖고 있어 시그널 음악으로 선정했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해금의 목을 긁는듯한 첫소리에 내 심장도 함께 뛰었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둠 속에서 오직 소리만이 살아 움직이며, 무대와 객석에서 배우처럼 뛰어놀았다. 그것은 마치 무대의 보이지 않는 심장과도 같았다

무대 위 배우들의 떨리는 대사가 음향실 스피커를 통해서 살아 숨 쉬는 듯 느껴졌고, 장면과 장면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을 이어주는 것도 바로 그 소리들이었다. 극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부터, 암전 된 무대 위에서 다음 장면으로의 전환을 돕는 짧은 음악까지, 음향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첫 공연이 끝난 뒤, 나는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촌, 정말 고마워요. 삼촌 덕분에 무사히 해냈어요.”

수화기 너머로 삼촌이 특유의 껄껄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삼촌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니 그게 더 기쁘구나. 앞으로도 네 연극 무대, 기대할게.”

그래서였을까.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손으로 마지막 음향 효과를 마치고 숨을 고르던 순간,『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팸플릿 맨 아래,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김 XX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단지 귀한 음향 효과를 빌려준 삼촌에 대한 형식적인 고마움의 표현이 아니었다. 어쩌면 서툰 나에게 첫 무대의 기관차가 되어 열차에 태워준 삼촌에게 바치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헌사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연극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율되는 소리들의 하모니가 빚어내는 완벽한 타이밍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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