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의 어색한 마주침

by 렉스

숨 막히는 방 안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 영원히 감금되어 있을 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냉혹한 현실이 일깨워주었다. 우편함에 수북이 쌓여가는 수많은 고지서들과 휴대전화 화면에 띄워진 텅 비어버린 통장 잔고는, 내가 아무리 눈을 감고 외면하려 발버둥 쳐도 내 목을 있는 힘껏 꽉 조이는 차가운 현실이었다. 결국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떠밀려 아주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나서야 했다. 익숙한 고독과 고립된 생활공간에서 밖으로 한걸음 내딛는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내게는 감당하기 버겁고 엄청난 부담과 불안을 주었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을 하게 된 곳은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말소리와 접시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여 늘 소란스러운 작은 식당이었다. 좁은 홀을 정신없이 오가며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일은 타인과 끊임없이 부대껴야 하는 그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내가 평소 가장 피하고 싶어 하던 종류의 공간이었다. 아르바이트 첫날부터 모든 것이 삐걱거리고 어색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마치 물 흐르듯 능숙하게 손님들을 응대했고, 쉬는 시간에는 서로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며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편안하고 활기찬 모습은 마치 이곳에 나를 제외한 청춘 만화 속 한 장면과도 같았다. 그에 반해 나는 주문 실수를 할까 봐 목청이 떨렸고, 음식을 나르다 넘어뜨릴까 봐 온몸에 불필요한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 저기요, 그거 음식 테이블 3번이 아니라 5번으로 가야 해요! 착각하신 것 같아요!" "그 손님 주문은 제가 받을게요, 괜히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


아르바이트생들이 친절하게 건네는 말들 속에서도 나는 오롯이 나 자신의 형편없는 무능함만을 머릿속에 각인시켰고 되뇌기 바빴다. 심지어 나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앳된 얼굴의 아르바이트생들조차 나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척척 해냈다. '나는 왜 이렇게 기본적인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걸까?' 이 질문은 마치 송곳이 되어, 머릿속에서 박혀 자존감을 긁어버렸다. 그들의 당연한 배려와 도움조차 나에게는 '넌 이것도 못하냐'라고 능력 없음을 가차 없이 지적하는 날카로운 비난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입은 더욱 굳게 다물어졌고, 애써지으려 했던 표정은 어색하게 굳어져 가면 갈수록 어두워졌다.


짧은 점심시간이 찾아오면,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테이블에 모여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이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들이 모여 앉은 무리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구석에 혼자 앉아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밥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다는 아주 작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정확히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 대화에 참여할 용기 자체가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연애, 학교, 취미 등 내가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주제 또한, 없었던 것이 한번 더 스스로 고립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유쾌한 웃음소리는 나에게 닿지 않는, 마치 웹드라마 세상에서 들려오는 멀고 관여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철저하게 '그들'이라는 주인공들인 미디어 안과, '나'라는 외로운 시청자로 나뉘는 다른 차원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실질적으로는 같은 공간에 앉아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전혀 출연하지 못했다.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비어버린 듯한 깊은 소외감. 그 단어만이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 같았고, 그것은 심장을 후벼 파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온몸이 무겁고 피로했다. 하루 종일 마주했던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지독한 열등감과, 아르바이트생 무리 속에 섞이지 못한 데서 오는 깊은 소외감이 보이지 않는 손이 절벽 끝으로 나를 내몰며 밀어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행위라기보다는, 차가운 세상 속으로 나를 내던져 나 자신의 한심하고 부족한 모습을 여실히 확인시켜 주는 고통스럽고 잔인한 시간일 뿐이었다. 차라리 아무런 비교 대상도 없는 방 안에 혼자 틀어박혀 있을 때가 훨씬 나았고 편안했다. 적어도 나를 깎아내리고 비난할 존재조차 없으니까.


마침내 나를 갉아먹었던 길게 느껴지던 짧은 아르바이트 기간이 끝났을 때, 나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이전보다 더 깊고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잠깐이나마 용기를 내어 세상과 마주쳤던 그 경험은 나에게 긍정적인 변화나 희망을 가져다주기는커녕, '나는 역시 뭘 해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구나'라는 절망적인 생각만 더욱 단단하고 확고하게 굳혔을 뿐이었다. 다시 나의 은신처인 방 안으로 도망가 문을 굳게 닫았다. 익숙한 어둠과 눅눅하고 퀴퀴한 공기가 나를 반갑게 감싸 안아줬다. 그래, 여기가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야. 게임 화면 속 가상세계로 도망치듯, 나는 잔혹한 현실에서 도망쳐 다시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통해 어렵게 번 돈은 통장 잔고에 숫자로 찍혔지만, 그 대가로 내 자존감은 이미 바닥을 뚫고 지하 저 깊은 곳으로 꺼져버린 후였다.



이미지 출처 https://www.pexels.co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