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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n 03. 2024

대기업 D사의 ㅇ부회장

회자정리의 이유

대기업 D사의 핵심계열사 ㅇ부회장은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대기업 임원, 해외 핵심지사 지사장, 국내 진출 글로벌 기업의 대표 등을 거쳐 겸임 교수로 지내다가 교수 시절 출간한 몇 권의 책을 인연으로 현재의 위치로 영전했다.

많은 인맥과 매너 있는 말투, 넉넉한 재산 등으로 보면 ㅇ부회장은 흔히 말하는 상류층 인사임에 분명하다.


내가 ㅇ부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 그 분은 나를 치켜 세우며 ‘나의 사업가 정신, 아이디어, 끈기 등’에 대해 격려하며 많은 조언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ㅇ부회장의 네트워크가 창립한 사단법인에 나를 초기 멤버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사업 초기라 아직 걸음마 단계였지만, ‘사업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그리고 ‘나도 이렇게 컸구나’하는 어설픈 자부심에 열심히 조찬강연을 쫓아다녔다.


1.

아직 영전하기 전, ㅇ부회장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찾았다. 대화를 마치고, 볼 일이 있다는 ㅇ부회장과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급하게 가야할 일이 있다는 ㅇ부회장은 차를 빼다가 돌아 나오는 음료 트럭을 보지 못하고 부딪혀 버렸다. 100% 그의 과실이었다. 음료 트럭에 실린 음료 상자가 조금 출렁거렸지만 큰 손실은 없었고 트럭이 조금 상하고, ㅇ부회장의 차량 앞부분이 조금 상했을 뿐이었다. 사과하고 명함을 주고 빨리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금 의아한 일은 잠시 후 일어났다.

차량에서 내린 ㅇ부회장이 ‘아, 진짜. 아, 진짜. 이거 빨리 가야하는데’하며 자신의 차만 쳐다보는 것이었다. 트럭에서 내린 기사가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이거 *발 너무 하시네. 누가 잘못했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고’. 그 와중에도 ㅇ부회장은 별 말이 없었다. 

나는 재빨리 트럭 기사에게 ‘이 분은 여기 몇 층에 계신 분이고, 지금 황급한 일이 생겨 좀 정신이 없으시다. 내가 대신 사과 드리겠다. 지금 좀 많이 경황이 없으신 상태다’하고 대신 사과했다. 나는 내 명함을 대신 드리고 트럭 기사를 보낸 후 ㅇ부회장이 나가는 것까지 보고 돌아왔다.


2.

ㅇ부회장과 마지막으로 본 건 그 분의 모친 장례식장이었다. 그때 ㅇ부회장은 이미 대기업 부회장으로 영전한 상태였다. 나는 사업이 많이 안좋아진 상태였고 많은 고민을 하며 지내던 시기였던 터라, ㅇ부회장 모친의 부고 문자를 받았지만 갈까 말까 생각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 ㅇ부회장을 함께 알고 지내던 분이 본인이 해외에 있다면서 나라도 가 달라는 부탁을 해왔고, 그 분의 모친과 관련된 얘기는 ㅇ부회장을 만나는 동안 수 차례 들었어서 결국 장례식장에 가게 됐다.

장례식장은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손님들이 전부 ㅇ부회장 모친 장례식장에 온 건가 하고 혹시나 했는데, 혹시나 한 것이 사실로 이어지는 몇 번의 경험 중 하나를 그때 했다. 빈소에서 절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빈소에서 절을 하고 ㅇ부회장과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악수를 하기 위해 내 손을 잡은 ㅇ부회장이 내 손을 잡고 얘기했다. ‘*대표, 잘 지내지? 사업은 잘 하고 있나? 건강 잘 챙기고’ 그리고, 나를 천천히 밖으로 이끌었다. ㅇ부회장은 국밥 한 그릇 먹고 가라고, 음료 한잔이라도 하고 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날 저녁 나는 장례식장을 나와서 집으로 바로 가지 못했다. 




장례식장을 가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사업적 고민이 생길 때마다 그리고 ㅇ부회장의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그 분에게 연락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장례식장에서의 만남은 내게 불쾌한 경험이었지만 꼭 필요한 회자정리 과정이었던 셈이다. ('물론, 나는 세상에 반드시, 무조건 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ㅇ부회장은 나의 초라한 상황 때문에 나를 홀대했을 것이다. 아마 그 이유가 맞을 것이다. 어떻게든 사업을 다시 일으켜보려고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제휴와 협력 방안을 두드리고 있었으니 그 얘기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잘 되면 사람이 꼬이고, 안되면 사람들이 떠나듯이, 그건 어쩌면 인간이 가진 본성이다. 내게 도움될 것이 있으면 잘해주고, 그게 아니라면 홀대하거나 아무 것도 아니거나. 


그럼에도 나는 ‘내가 만약 그때 그 분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잘 되기도, 어려워 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죽을 고비까지 넘기며 고생하다가 한순간의 성공으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최고의 자리에 있다가 잘못된 몇 번의 판단과 선택으로 인해 나락에 빠지기도 한다. 


잘 됐을 때 혹은 어려워졌을 때 그가 하는 행동과 말을 보면
 진짜 그를 알 수 있다는 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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