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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n 17. 2024

내가 만난 ㅈ회장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로 남다

ㅈ회장이 별세했다는 뉴스를 봤다.

ㅈ회장은 현장에 있을 때도 존경받았지만, 현장을 떠난 후에는 더 큰 존경을 받았다. ㅈ회장은 공무원 출신이었고, 강제 해직된 후에 퇴직금을 긁어모아 사업을 했지만, 시도한 아이템들이 번갈아 망해 산에 올라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시도한 사업이 성공하며, 그때까지의 고생을 만회했다.




내가 ㅈ회장을 만난 건, 늦은 나이에 인터넷 사업에 도전한다며 글로벌 기업과 제휴해 한국에 서비스를 런칭하게 된 ㅈ회장의 인터넷 사업 관련 마케팅 업무를 맡게 되면서이다. 나는 ㅈ회장을 모시고 몇몇 기자들과 함께 일본 출장을 한번 갔었다. 또 ㅈ회장의 이름으로 몇 차례의 칼럼을 대신 썼고, 언론 인터뷰 때 동석을 여러 차례 했었다. ㅈ회장을 만날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내가 ㅈ회장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내가 만나본 여타의 기업 오너들과 많이 달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ㅈ회장은 상당한 부와 명예를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에게 친절했고, 소탈한 생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본사 업무를 할 때 느닷없이 나타나 칸막이 너머로 얼굴을 내밀거나, 지나가면서 직원들에게 말을 거는 ㅈ회장의 모습을 보곤 했다.


처음 업무를 시작할 때 ㅈ회장과 인터넷 사업을 맡았던 사업 본부장과 기술 본부장, 그리고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부장과 내가 함께 회의를 한 적이 있는데, 나에게 '이 분은 누구인가?'라고 물어봐, '어디어디의 ***과장입니다. 마케팅 업무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더니 '아이고,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동안 회의를 했는데, 회의를 하는 동안 별말씀은 없었고, '이런 건 나보다 잘 아는 젊은 사람들이 알아서 잘하라'고만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실제로 ㅈ회장은 사업 자체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고, 대부분 보고만 받고 드라이브를 걸며 격려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의 얼굴엔 그 사람의 인생이 묻어있다라고 하는데, ㅈ회장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과 사람을 향해 짓는 미소를 보면 그 분이 했다는 고생담이 거짓이 아니고, 그 분이 보이시는 인품,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 등이 진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20년도 전에 기자들과 함께 간 출장길 저녁자리에서 높임말과 낮춤말을 번갈아가며 썼지만, 기자들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았고-내가 봐온 기자와 경영자간의 어떤 술자리보다 편안해보이는 자리였다-, ㅈ회장은 기자들의 식견과 전문성을 존중했고, 기자들은 ㅈ회장의 넉넉한 인품에 대해 존경을 표했다. 그날 반주를 겸한 저녁 자리를 마치며 ㅈ회장이 '우리가 일하러 온거니까 자리는 이정도로 끝내자'라고 얘기하며, '이 호텔은 방 열쇠가 말그대로 열쇠인데, 카드키를 주는 호텔보다 열쇠를 주는 호텔이 고급호텔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잘 부탁합니다'라고 해 다들 웃었던 기억이 난다.




ㅈ회장은 여러차례 사업에 실패해 전재산을 날렸고, 결국 성공해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큰 명성도 쌓았다. 그리고, 그는 평생 모은 재산을 남김없이 기부하고 타계했다.


기부하고 죽겠다, 아낌없이 주고 가겠다라고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그걸 실천하기 어렵다는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재단을 만들어 그곳으로 재산을 빼돌리기도 하고, 법인 재산을 기부한걸로 명성을 취하고, 잘못에 대한 처벌을 경감시키려고 기부약속을 한 후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차일피일 미루며 잊혀지기만을 바라기도 한다.


ㅈ회장은 기부금 약정식에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소중한 기회여서 매우 기쁘다'라고 했다는데, 99억 가진 사람이 100억을 만들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대에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존경스럽고, 어떤 면에서는 저렇게까지라는 말과 함께 의아하단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ㅈ회장의 중년까지의 삶은 잘나가던 공무원에서 사업이 망해 자살을 시도한 실패자까지였다. 후에는 온 힘을 다해  부와 명예를 쌓은 성공한 기업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진정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존경받는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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