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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n 20. 2024

돈도, 사람도 다 잃은 ㅇ대표

꿈을 퍼뜨리는 것과 꿈을 함께 하는 것은 다르다

ㅇ대표는 S대를 졸업하고,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연봉 쎄고 복지 좋은 공기업에 취업을 했었다. 그리고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만둔 후 언론사에 취업을 했다. 좋다는 공기업을 그만둔 이유는 복사만 하다가 직장생활이 끝날 거 같았고 설령 본격적으로 일을 배운다 해도 이 무료한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는 것이다. 언론 쪽으로는 선배와 동기들이 많이 있었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더 많이, 빠르게 볼테니 앞으로 뭘하든 도움이 될 거 같았다고 했다. 그 후 몇년 간 취재와 편집을 거친 후 ㅇ대표는 여의도에 작은 사무실을 열면서 언론사를 그만뒀다. 


ㅇ대표가 처음 시작한 일은 국내에 진출하고 싶은 외국계 회사들을 위한 지원 업무였다. 광범위하게 시작한 업무가 차츰 세분화된 전문 분야로 구체화되면서 일과 직원이 늘기 시작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걸쳐 IT와 벤처 붐이 일면서 외국계 기업과 외국계 자본의 국내 진출이 봇물 터지듯 늘었다. 삼성동에서 강남역에 걸친 테헤란로를 테헤란밸리라 부르며 IT기업들이 강남으로 확장을 시작하자, ㅇ대표는 사업 시작 5년 만에 19명의 직원과 함께 강남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강남으로 사무실을 옮긴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회사가 커지기 시작했는데, 불과 2년만에 직원이 30명이 넘었고, 작은 사무실을 추가로 얻었다. 그리고 강남으로 이전한 지 3년 째 되던 해에는 처음 강남으로 올 때보다 세배가량 커진 사무실에 직원도 40명을 넘어섰다. 


ㅇ대표는 트렌드를 잘 파악하고, 본인이 가진 학맥에 기반한 인맥을 잘 활용해 사업을 키웠다. 벤처 버블이니 IT버블이니 하는 말들이 세상을 뒤덮을 때도 ㅇ대표의 사업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버블에 흔들리는 곳은 IT와 벤처 기업 그 자체였고, IT와 벤처 기업들 중 튼튼하고 돈이 있는 기업들은 오히려 ㅇ대표에게 비용을 지불하며 더 많은 일을 맡겼다. 그래서 ㅇ대표가 다른 생각만 하지 않았다면, ㅇ대표의 회사가 수년 내로 동 분야에서 가장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ㅇ대표가 유학을 결심한 건 자신의 사업을 키운 IT붐 때문이었다. ㅇ대표는 해외 글로벌 기업의 국내 진출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임원들과 해외 진출을 꾀하는 국내 기업들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언어와 경영관련 학문적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많이 절감했다고 유학의 이유를 설명했다. 내 생각엔 남의 회사 지원 업무만 하면서 사업을 키워야겠다라고 생각하기엔 ㅇ대표의 야심이 더 커진 것이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ㅇ대표의 유학은 떠나기 직전에야 회사에 알려졌다. ㅇ대표는 본인의 유학과 회사와 관련한 사항을 창업 동료였던 임원과 상의해왔는데, 본인의 회사 지분 및 대표자리를 창업 동지가 아닌 외부 사람에게 넘기고 갔다는 것에 다수의 회사 구성원들은 당황스러워했다. ㅇ대표가 회사의 팀장들을 모아 저녁을 먹던 자리에 신임 대표가 함께 했는데, 그는 현재 회사가 하고 있는 일에는 전혀 경력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ㅇ대표가 유학을 떠나고, 신임 대표가 출근한 후에 여러 명의 직원이 그만두었다. 그만둔 직원들은 팀장급들로, ㅇ대표가 미래 비전을 함께 만들자며 다른 회사로 옮기려던 사람들을 주저앉힌 경우였다. 더 좋은 대우와 유망한 분야로 이직하려 했던 사람들을 비전을 내세우며 함께 해보자고 했던 ㅇ대표가 언질 한번 없이 유학을 떠났으니 배신감을 느낀 건 당연했을 것이다. 신임 대표는 회사의 업무와 상관없는 자기 사람들을 앉히기 시작했고, 기존 직원들의 연봉을 깎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쩌면 회사가 잘되지 않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신임 대표는 어쩌면 처음부터 회사에 쌓여있는 유보금과 회사를 통해 가지게 될 네트워크가 필요했는지 모를 일이다. 신임 대표는 3년이 채 안되어 회사를 망가뜨리고 떠나면서, 자신의 친척을 대표로 앉혔다. 




ㅇ대표가 유학에서 돌아온 건 2년 6개월 후였다. ㅇ대표는 귀국 후 S그룹에 취업했다가 1년도 못되어 그만두고, 유학 전에 몸담았던 분야로 돌아왔다. ㅇ대표의 유학으로 ㅇ대표의 회사가 흔들리는 사이에 업계의 1위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회사의 대표로 들어갔으나 역시 해당 회사의 창업자와 의견이 갈리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ㅇ대표가 여러 명의 옛 직원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아무도 ㅇ대표의 회사로 들어가진 않았다. ㅇ대표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부터 함께 회사를 일구었던 직원들과 모임을 재개했지만, 이후 함께 회사를 만드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ㅇ대표가 언제 또 우리 뒤통수를 치고 다른 생각을 할지 모르지'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ㅇ대표와 함께 일했던, ㅇ대표의 유학 후 회사를 그만둔 직원들은, ㅇ대표가 떠날 때 '내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테니, 그동안 당신들이 **이사와 함께 회사를 잘 지켜달라'라고 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직원들은 ㅇ대표가 상의 한마디 없이 내 회사니까 지분은 누구에게 넘기고, 대표도 그 사람이 할거다. 당신들은 잘 할거다 라는 식으로 통보했으니 더이상 ㅇ대표를 볼 일은 없었다라고 했다. 


ㅇ대표는 회사 지분을 넘긴 대가로 얼마의 돈을 받았을까? 

받은게 별로 없다고 한다. 계약 당시에 몇천만원을 받은 것 외에 수십억짜리 알짜 회사를 넘기며 돈 받은게 없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될까 싶지만, 그렇다는 걸 알고서 모두가 황당해 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ㅇ대표는 회사의 지분 40% 이상을 갖고 있었다. 외부 투자기관이 나머지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창업 동지 **이사의 지분은 5%도 되지 않았다. 신임 대표는 외부 투자기관의 동의하에 ㅇ대표의 지분 40%를 인수했다. 그리고 인수자금은 계약금 즉시 지급외에 나머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나눠 갚는 것으로 했다고 한다. 

아마도 ㅇ대표와 신임대표는 서로 다른 생각을 했던 거같다. ㅇ대표는 이익이 나고 있는 회사고, 외부 투자기관도 있으니 계약 후 돈을 지불받는 것은 문제가 없겠다 싶었을 것이고, 신임대표는 돈을 잘 버는 회사니, 40%의 지분으로 배당과 급여, 회사내 유보금을 활용한 가지급금 등으로 ㅇ대표에게 돈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ㅇ대표는 돈을 받지 못했고, 신임 대표도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내막은 자세히 듣지 못했기에 그저 '그렇게 진행되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후에 어느 술자리에서 ㅇ대표가 '난 결국 이걸로 돈도 벌지 못했고, 회사만 잃은 셈'이라고 하소연 했지만, 아무도 그걸 안타까워 하지는 않았다.


ㅇ대표는 탁월한 능력으로 짧은 시간에 자기 회사를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회사로 키웠다. ㅇ대표가 회사를 키우던 얘기를 들어보면 나는 과연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정과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ㅇ대표는 한때 ㅇ대표의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최대 규모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런 비전은 ㅇ대표에게서도 함께 일했던 구성원들에게서도 사라졌다. 


"ㅇ대표에게 MBA 학위와 탁월한 영어실력은 남았지만, 구성원들과 함께 꾸었던 비전과 그것을 통한 경제적 자유의 꿈은 사라졌다. 그리고 매일 함께 저녁을 먹고 야근을 하며 밤을 새기도 했던 직원들은 그의 곁을 모두 떠났다. ㅇ대표는 직원들을 리드는 했지만 소통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꿈을 설파해 퍼뜨리긴 했지만 그들과 꿈을 함께 꾸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돈도, 사람도 모두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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