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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n 06. 2024

1세대 창업가 ㅇ회장과 ㅈ회장

창업자의 성공 논리는 아랫 세대에도 유효한가

1.

늦은 나이에 창업해 수천 억대 기업을 일구어 증권시장에 상장시킨 ㅇ회장은 내가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분이다. 

나는 ㅇ회장의 창업 당시 이야기와 대학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 수 십년간 고생하며 전문 경영인자리까지 오른 이야기들을 직접 혹은 창업자의 2세로부터 들었다. 그리고 ㅇ회장이 직접 쓴 책을 대부분 읽었고, 내가 ㅇ회장을 모시고 일할때 자필 도서를 편집 작업하며 그 분의 생각을 간접 경험했던 터라 기업가로서 진심으로 존경했다. 내가 부친 장례식을 마치고 찾아뵈었을 때 ㅇ회장은 아버지의 연세를 물어보며 가만히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내 업무 특성상 ㅇ회장께서 강의나 미팅을 다닐 때 자주 따라 다녔는데 그 때문인지 ㅇ회장과 둘이 식사도 자주 했었다. 그 분을 모시고 점심을 할 때는 서초동의 유명한 식당에서 불고기 정식을 먹거나, 신사동의 유명한 복집에서 밀복국을 먹곤 했다. 


ㅇ회장님과 어딜 다닐 때면 앞자리 조수석이 아니라 뒷자리 옆 좌석에 앉아서 이동했는데, ㅇ회장은 대부분 신문을 보셨고 신문을 다 보고 나면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묻곤 했다.

-저기 저 버스의 광고는 무슨 얘기냐?

-요새는 어떤 제품을 주력으로 하고 있냐?

-***팀은 어떻게 일하고 있냐?

-이번에 나온 신제품은 반응이 어떠냐? 같은 것들이었다.


ㅇ회장에 대해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 다른 이야기를 들은 건, 같이 일하던 동료가 퇴사한 직원과 가진 술자리에 얼떨결에 합류한 때였다. 

'무슨 소리야, 우리 회사 상장할 때 직원들 우리 사주 한 주도 안줬어. 나는 오를 거 같아서 우리 회사 상장하는 날 주식시장에서 사서 며칠 있다가 팔았어.'

그래도, 회사가 상장하면서 돈 좀 벌지 않았냐는 얘기에 직원이 한 말이었다. 다음 말은 좀더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했다.

'아직 잘 모르나보네. 회장님은, 직원들은 먹고 살만큼만 주면 된다고 얘기하는 분이야. 전에 임원회의에서 비슷한 얘기가 나왔었다고 하는데, 회장님이 그때 얘기했대. 야, 돈을 벌고 싶으면 회사 다니지 말고, 사업을 해. 라고.'

'회장님은 머슴은 딱 굶어죽지 않을만큼만 가져가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분이야'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ㅇ회장이 진짜 그런 말을 했었는지. 

그래도, 아마 사실이었겠지. 없는 말을 저렇게 생생하게 만들 수는 없을테니.



2.

ㅈ회장은 대학 졸업 후 회사를 다니다가 5년도 안되어 회사를 창업해 칠십이 다된 지금까지 현업에서 뛰고 있는 창업 1세대 경영자이다. ㅈ회장의 사업은 창업한 이듬해 흑자를 내고 지금까지 오는 동안 흑자와 적자를 반복해왔지만 매출은 지속적으로 올라 10년쯤 전부터는 1,000억을 넘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ㅈ회장의 창업과 성장 스토리를 처음 들었을 때 '어마어마한 분이네. 대단한다. 말그대로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하면서 놀라며 감탄했는데, 나와 친한 동생이 그 회사에 들어간 이후 들려준 얘기를 듣고 '경영자들은 정말 다 이런 건가?, 이래야 돈을 벌고 부를 쌓는건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ㅈ회장은 현재의 법인 사업 말고, 개인 재산에 가까운 호텔과 레스토랑을 갖고 있다. 회사의 매출이 1000억에 가까워진 지금, 경력직으로 입사한 20년차 영업팀장의 연봉은 5천만원을 겨우 넘고, 직원들의 재직기간은 3년을 넘지 못한다. 

ㅈ회장은 전형적으로 직원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 그가 임원회의에서 했다는 말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야, 너희들이 나보다 똑똑하면 여기 있겠냐? 김이사 한번 말해봐. 너 나보다 똑똑하냐? 너가 나보다 똑똑하면 여기 앉아서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겠어?'

'나는 나보다 똑똑한 놈 안뽑아. 뽑아봐야 자기 잘난 줄 알고 까불고, 멋대로 하려고 하다가 나가버리거든'

'적당히 똑똑한 놈, 회사에 충성할 수 있는 놈을 찾아서 뽑아야 돼'


입사한 지 1년도 안된 내 친한 동생은 살이 쏙 빠졌다. ㅈ회장과 임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갈 때 몇 번 따라간 적이 있는데, 말로는 '먹어, 먹어'하면서 자리에 앉을 때부터 식당에서 나올 때까지 혼자 얘기하는 ㅈ회장때문에 식사는 거의 못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두 달 전부터는 아예 점심시간에 식사를 건너뛰고 사무실 근처를 배회한다고 한다.






ㅇ회장이나 ㅈ회장은 모두 창업 1세대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직원은 회사의 성쇠를 함께 이끌어갈 동료이자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은 많지 않다. 돈을 줬으니 일을 해야하고, 나보다 똑똑한 사람은 굳이 필요없고, 내가 하라는 것만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이 강해 보인다. 


ㅇ회장의 회사는 ㅇ회장이 현업에 있던 당시 4천억을 넘던 매출이 10년새 1000억도 안되게 줄어들었고, ㅈ회장의 회사는 10년째 1,000억의 턱을 넘지 못하고 900억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 ㅈ회장이 현업에서 떠나고 ㅈ회장의 2세가 회사를 이끌면 매출은 더 떨어질 거라는 게 내부 직원들의 생각이다. ㅇ회장과 ㅈ회장의 자제들은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창업자에게서 구성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사의 성장 방식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뛰어난 창업자가 회사를 일구어도 2세, 3세를 넘어가며 그 회사를 유지하고 키우기는 힘든데, 창업자가 인재와 시스템에 대해 건전하고 튼튼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아 배울게 없었던 2세나 3세가 등장할 때쯤에 회사가 얼마나 잘 유지될 지는 미지수이다. 

ㅇ회장의 회사는 2세가 실권을 잡은 몇 년전부터 이미 매각 관련한 협의가 여러 회사 및 사모펀드들과 있었다고 했고, ㅈ회장의 아들은 회사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음을 친한 임원에게 계속 얘기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개인기로 회사를 일구어 부와 명예를 쌓은 ㅇ회장과 ㅈ회장은 사업현장에선 역시 독하고 이기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잘 알려준다. 그러나, 그것이 2세대, 3세대로 넘어가도 사업에 있어 똑같은 성공의 도구가 될 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세대를 넘어가며 변신과 성장에 성공한 기업들은 창업자가 잘 가르치고, 다음 세대가 시대에 맞는 방법론(모델과 아이템)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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