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결심 중 하나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올해도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싶어 다독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내가 주로 책을 읽는 시간과 장소는 자기 전 침대였고, 그것도 책을 읽는 시간보다 휴대폰으로 의미 없는 영상을 보는 시간이 월등히 많았다. 영상을 보는 한두 시간은 왜 이리 짧게 느껴지는지 사람의 뇌는 정말 신비롭다.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한번 시작된 나의 알고리즘은 오늘도 착실히 일을 한다.
하루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휴대폰을 멀리 둔 채 책을 폈다. 베개를 등에 대고 앉아 목을 숙여 책을 보는데 점점 자세가 안 좋아졌다. 결국 누워서 책을 보는데 책을 계속 들고 있자니 팔이 아파왔다. 책을 쉽게 펼 수 있는 독서링을 사야 하나 고민했다. 엄지손가락에 링을 끼우면 한 손으로 책을 펼칠 수 있다. 언제 내 손에 쥐어졌는지 모를 휴대폰으로 내 눈과 손은 독서링을 고르고 있었다. 가격도 저렴하여 부담 없이 하나 살 수 있었지만 누워서 책을 볼 때 책 무게에 링까지 더해지면 더 불편할 것 같아 독서링은 빨리 단념했다. 대신 '눕서대'를 검색창에 쳐보았다. 몇 년 전, 누워서 책을 편하게 볼 수 있는 독서대인 눕서대의 존재를 안 이후 많은 검색을 했었고 언젠가 꼭 갖고야 말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만 가격이 좀 나갔고 무엇보다 우리 집에 이렇게 부피가 큰 물건이 들어온다는 것에 부담이 있어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저번주 '나 혼자 산다' 프로그램에서 한 배우가 눕서대를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매우 반가워 바로 캡처를 하고 남편에게 사진을 보냈다. 눕서대만 사면 책을 편하게 많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부터 내가 눕서대 구매를 고민한 것을 남편은 알고 있었고 이번에는 캡처까지 해서 갖고 싶다고 말하니 오늘 당장 사주겠다고 한다.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쿠팡에 들어가 그동안 눈여겨보았던 눕서대를 당장에 결제했다. 그 사이 남편도 몇 개 검색을 하여 나에게 사진을 보내준다. 고마운 마음이 컸으나 막상 우리 집에 들인다고 생각하니 다시 생각이 바뀌어 구매취소를 눌렀다. 눕서대를 사용하면 침대에서 책을 더 많이 읽을 수는 있겠지만 침대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 것이다.
책을 다른 곳에서 읽기로 하였다. 내 나름대로 발상의 큰 전환이다. 그래서 찾은 곳은 바로 식탁이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해서 평소 식탁에는 휴지와 전자시계 이외에는 올려두지 않는다. 과감하게 아이 책상에서 그 존재가 잊히고 있었던 '나비 독서대(뒷모양이 나비모양)'를 꺼내 식탁에 올려두었다. 독서대에 책을 놓고 고정을 시키니 손이 자유로워졌다. 책 읽는 것이 훨씬 집중이 잘 되었다. 작년 가을에 사서 자기 전 조금씩 읽었던 책을 이틀 만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황보름 작가의 '단순 생활자'를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작가님의 생각을 더 집중해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맞아! 나도 단순하게 생활하는 거 좋아했었지!'
책과 더불어 3년 동안 짧은 일기를 쓸 수 있는 3년 일기장과 영어단어 공부, 한국사 공부책도 식탁 한편에 놓아두었더니 TV 보는 시간이 확실히 줄었다. 매번 책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하기에 귀찮아 당분간 책들과 독서대를 식탁에 두기로 하였다. 새해 결심 중 영단어 날마다 쓰기가 있었는데 단어장을 식탁에 올려두니 밀리지 않고 꽤 공부가 잘 되었다. 재작년부터 책장에 있었던 필사 책도 꺼내어 다시 적으니 새로운 기분도 들고 좋았다. 새하얀 식탁에 뭔가를 놓는 게 완전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오며 가며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 좋았다. 일단 식탁에서 독서와 공부를 해보고 보기가 정 좋지 않으면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하면 되므로 당분간 해보기로 한다. 순간적으로 나만의 책상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살짝 한 나 자신이 꽤나 웃겼다.
눕서대를 이용하여 편히 책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신중하게 생각 해봐야겠다. 눕서대를 사지 않는 대신 방치되었던 독서대를 사용하고, 그동안 책장에만 있었던 책들을 꺼내 눈에 보이는 곳에 두니 좋았다. 식탁을 책상으로 이용하는 시간은 주로 식탁이 하루의 의무를 끝내는 저녁 시간대지만 그 사이에도 침대와 소파에서 뒹굴거리는 시간이 줄어든 것 같아 좋다.
이러다가 식탁에 있는 책과 독서대가 눈에 거슬리는 날이 오면 또 눕서대를 검색해 보겠지만 당분간은 식탁을 잘 이용해 봐야겠다. 식탁이 혼자만의 공간은 아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순간이 오니 생각보다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다 단순하고 작은 삶을 지향하지만 여전히 많은 물건들이 있고, 그 물건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 물건의 에너지를 느끼며 왠지 모를 부담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았다. 이렇게 몇 년 만에 독서대를 사용하니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독서대에 놓여있는 책과 그 옆에는 방금 끓인 따끈한 차가 나를 소소한 행복으로 이끌어준다. 독서대 덕분에 두 손이 자유로워 찻잔의 따뜻한 온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침대에서 책을 보았다면 몇 장 못 읽었을 텐데 오늘은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하였다. 더욱이 따뜻한 차까지 마실 수 있어서 금상첨화였다. 얼마 전 친한 동생에게 선물 받았던 또 다른 책을 독서대에 놓으니 내가 왠지 모르게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책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이 순간이 너무 좋다.
독서대도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다.
사용해 줘서 고마워요!
[대문사진 출처: 유튜브 앰뚜루마뚜루 MBC 공식 종합 채널 <나 혼자 산다>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