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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n 10. 2024

매력적인 사람 2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오후 시간이었다. 그 천사 선생님은 보통 톡이나 문자로 연락을 주시는데 그날따라 전화를 하셔서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  OO샘, 내일 점심 같이 먹을래요?

- 저 내일 남편이랑 아침에 운동하고 오면 시간도 안되고 피곤할 것 같아요. 선생님!

- 아, 그래요? 그럼 담에 점심 먹어요.

- 네, 담에 연락드릴게요. 


 1년에 몇 번 나가지 않는 골프라운딩을 끝내고 온 바로 그날 저녁, 또 그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왠지 뭔가 조급한 느낌이었다. 원래 이런 분이었나? 


- OO샘, 내일 혹시 시간 있어요? 같이 점심 먹게요.

- 네, 그러세요. 내일은 시간 돼요.


 우리는 바로 다음 날 약속을 잡고 만났다. 항상 약속 시간에 늦는 그 선생님은 그날도 어김없이 15분 늦으셨다. 나보다 선배였고 그분의 지각을 미리 알았기에 개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너무나 매번 미안해하시며 들어오셔서 괜찮다고 말을 했었다. 맛있게 삼겹살을 구워 먹고 우리는 근처 무료 미술관을 한 바퀴 돈 후, 전통 한옥 찻집에 갔다. 메뉴는 뭘 시켰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 둘 다 커피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래 저래 일상의 대화를 이어가다 갑자기 뭔가 알 수 없는 질문을 선생님이 해댔다.


 - OO샘은 이 그림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어요? OO샘은 천국을 믿어요?


 이런 유의 질문이었나? 정확하진 않지만 그때부터 예전에 느꼈던 찝찝한 기분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평소에는 말수가 없는 분이지만 그날따라 말이 굉장히 많았고 결국에 자신을 커밍아웃하셨다. 전 후 이야기는 충격 때문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그분이 속해있는 사이비종교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난다.


 - OO샘, 같이 성경공부할래요? 모임에서 같이 해도 좋고 내가 1대 1로 공부 가르쳐 줄 수도 있어요.

 - (심하게 당황) 네?

 - 세상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진짜 내가 공부해 보고 너무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OO샘 알려주고 싶어서 그래요. 진짜 세상을 만날 수 있어요.

 - (이때부터 설마 하는 생각이 듦) 아... 저 공부 싫어해요.

- 사실은 저 OOO이에요. 선생님이 편견 가지고 바라볼까 봐 일부러 그동안 말 안했어요. 내가 이런 말 하면 열에 아홉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데 OO샘은 안 그럴 거죠?

 - (당황하여 아무 생각도 안 듦) 아... 네! 그럼요.

 - 이번주 토요일에 대대적으로 선교하고 초대하는 자리가 있는데 OO샘이 꼭 오면 좋겠어요.

 - 저 그날은 시간이 안될 것 같아요.  


 아, 나를 급하게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그 뒤로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리는 웃으면서 헤어졌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점점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왠지 그분이 데리고 갔던 플리마켓, 라탄공방, 소개해주셨던 한의원, 글쓰기 모임 등 다 사이비 종교 신자들인 것 같았다. 그분의 조용한 성격에 비해 마당발이었던 것도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 트루먼 쇼 찍은 건가?

 정말 기분이 더럽고 찝찝했는데  이 말들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분과 헤어지고 이런 일이 있었다며 당장에 남편에게 전화를 해 나쁜 감정을 털어버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정말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 없다는 게 맞다. 그 선생님은 코로나 시절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 대해 사람들이 안좋은 프레임을 씌운 것에 대해 억울해하셨고 현재 박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한 후 그분에게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장문의 문자를 정중하게 보냈고 바로 전화가 왔지만 큰 고민 없이 차단을 눌려버렸다. 나를 몇 년 동안 기만하고 사기를 쳤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이 사이비에는 포섭단계가 있다고 들었다. 1,2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접근을 해도 넘어오질 않으면 다음 단계에서는 직접 모 아니면 도로 밝힌다고 하는데 내가 당한 게 이건가? 평소 혼자서도 매우 바쁘고, 다른 사람 일에 별로 신경을 안쓰는 나여서 더 진행이 안된 게 다행이었다. 만약 내가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였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얼마 후, 종교를 떠나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 그분에게 건강하시라는 답을 드리고 카톡도 차단을 하였다. 그 선생님은 현재 명예퇴직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이후로는 소식을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모든 게 이상하였다. 정말 나란 여자, 사람 보는 눈이 아직 부족하구나. 아니, 어느 누가 넘어가질 않겠나 생각을 하니 이건 조심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덕분에 우리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 뒤로 초대를 꺼리게 되었고 이제 사람을 잘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진정성을 갖고 대했는데 그분은 나를 포섭 대상으로만 생각한 것이다. 중간중간 나에 대한 정보를 굳이 흘리는 모습을 생각하면 소름이 쫙 돋는다. 정말 옛말 그른 거 없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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