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도덕 5단원의 제목은 '갈등을 해결하는 지혜'이다. '타인과의 관계'영역의 '서로 생각이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공감, 존중)'라는 주제를 다룬다. 첫 번째 차시명은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해요'로서 갈등이란 무엇이고 갈등을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 중 평화롭게 해결하는 방법이 바람직함을 여러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갈등이란 칡을 의미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뜻하는 등(藤)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칡은 왼쪽으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성질이 있어 이 둘이 감기면 풀기 어렵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 사이의 풀기 어렵고 힘든 상황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또는 그런 상태를 의미한다. 심리학적으로는 갈등을 '두 가지 이상의 상반되는 요구나 욕구, 기회 또는 목표에 직면했을 때 선택하지 못하고 괴로워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정의한다. [도덕 5 교사용 지도서, 교육부 314쪽]
갈등을 겪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가족, 친구, 선생님을 비롯하여 나 자신과의 갈등도 생길 수 있다.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생각해 보기 위해 먼저 학생들 본인의 생활을 돌아보고, 그동안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갈등의 대상, 어떤 갈등이 있었나요?, 어떻게 해결했나요?, 평화로운 방법인가요? (O, X)를 표에 작성해보게 하였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갈등 상황이 많이 있었다.
"선생님은 밤에 야식이 먹고 싶었던 적이 있어서 나 자신과 엄청난 갈등이 있었습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치킨을 시켜 맛있게 먹고 다음날 후회를 했습니다. 이건 평화로운 방법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간식을 나 혼자 다 먹어서 동생과 싸웠습니다. 앞으로 간식을 나눠먹겠다고 엄마 앞에서 동생과 약속했습니다.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친구가 놀려서 저도 친구를 똑같이 놀리고 때려 싸움으로 번졌습니다. 이건 평화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숙제를 하지 않아 엄마에게 혼이 났습니다. 다음부터 숙제를 하고 놀기로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속이 상했습니다. 사용시간을 정했습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이 중요함을 모두 다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교과서에는 '층간 소음을 해결한 지혜'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있어 이를 읽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층간 소음으로 이웃 간에 갈등이 생겼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웃끼리 마음을 나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반 대부분 학생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뛰지 마라'는 소리는 한 번쯤 다 들은 경험이 있어 층간소음에 대한 공감이 충분히 이루어졌다. 아랫집 이웃으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도 있고, 윗집에서 너무 시끄럽게 쿵쿵거려 집에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층간소음 때문에 범죄까지 일어나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경우를 통해 층간소음으로 생기는 갈등이 우리 일상과 매우 맞닿아 있음을 한번 더 상기시켰다.
마침 어제 저녁에 나에게 있었던 경험을 아이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 줄 수 있었다.
"선생님도 어제 층간소음에 관한 일이 있었어요. 위층에 중년부부만 살고 있어 평소에 매우 조용한데 요 며칠간 갑자기 들리는 쿵쿵 소리가 엄청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쿵쿵 소리도 있고 뭔가 끌고 가는 소리도 들렸는데 평소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여서 좀 당황했어요."
나에게 직접 일어난 일을 들려주니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 해진다.
"한 이틀 정도 참았다가 걱정도 되고 해서 위층에 문자를 보냈어요. 그런데 상대방이 기분이 나쁘지 않게 정중하게 보내고 싶기도 하고, 선생님의 생각도 전해야 해서 챗GPT에 조언을 구했어요."
갑자기 웬 챗 GPT? 아이들 반응이 "오잉?" 하면서 호기심이 더 생기는 눈치이다.
"그랬더니 챗GPT가 친절하게도 예시 문자 3개를 알려주었고 선생님은 그것을 잘 섞어서 위층에 보냈어요. 1시간 후쯤 전화가 왔어요."
전화가 왔다는 말에 아이들 몸이 앞으로 더 쏠린다. 어떤 이야기가 뒤에 나올지 정말 궁금해하는 표정이 매우 귀엽다.
"위층에 손자가 왔데요. 13개월짜리 아이가 이제 막 걸음마를 배워서 걸음마 연습하는 기기를 끌고 다니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소리였다는 거예요. 안 그래도 아래층인 선생님 집에 미안해하고 있던 차에 선생님한테 문자를 받은 거래요. 그래서 선생님이 평소에 들리지 않는 소리가 걱정이 되어서 연락드렸다고 했더니 더 미안해하시더라고요."
일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해준다.
"그런데 어제저녁에 위층 아주머니께서 롤케이크와 샤인머스켓을 사 오신 거예요. 안 주셔도 된다고, 다 이해한다고 했는데 선물까지 주셔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요. 선생님도 귀여운 아기가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더 뛰어도 된다고 했어요. 하하!"
선물을 받았다는 말에 약간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교과서 급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된 층간소음에 대한 갈등 해결 에피소드를 아이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층간소음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 조심하고 배려를 한다면 가끔 뉴스에 나오는 무서운 사건은 좀 줄어들 수 있을 텐데 안타까운 점이 많은 세상이다.
층간소음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하니 돌아오는 반응이 신선하여 놀라웠다.
"역시 위층에 손자가 온 게 맞았어. 선물 주고 가시면서 매우 미안해하시더라. 이 에피소드를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말해주니 엄청 귀 기울여서 듣더라고."
"나는 위에서 아기가 소리를 낸다고 하면 전혀 짜증이 나지 않더라고. 오히려 아이가 기어가는 모습, 걸음마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층간소음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
"와, 자기 생각하는 게 남다르다. 멋진데? 그런데 1년 365일 계속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들까?"
대답 대신 호탕한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남편에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층간소음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어떤 시인이 '위층 아이와 친해지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떠올랐다. 근원적인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위층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고 여유가 있어보여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갈등은 없을 수 없다. 사회적인 동물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등이 없으면 좋겠지만 이를 평화롭게 해결하면 전보다 마음이 편해지거나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갈등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지혜를 우리 반 아이들이 경험을 통해 쌓아 가길 바란다.
모두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