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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학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by 느긋

개학 바로 다음 날, 방학 전 신청한 1박 2일 연수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부터 괜히 마음이 바빴다. 대부분의 학교가 아직 방학 중인 까닭에 오전부터 진행되는 연수였다. 오전 연수 내용은 포기하는 아픔을 머금고 1~4교시는 내가 수업을 하고, 5~6교시에는 보결 선생님이 우리 반을 맡아주시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보결 선생님에게 드릴 수업 내용을 적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출장 이유와 여러 당부를 한 후에 연수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수 제목은 '디지털 시대, 깊이 있는 학습이 살아있는 개념 기반 탐구학습을 위한 교육과정-수업-평가 설계'이다. 금요일과 토요일 1박 2일 동안 숙식을 하며 연수를 받는 만큼 몰입이 강조되고 어려운 내용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9시가 다 된 시간까지 진행된 다소 빡빡한 일정이어서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지만 평소 용어만 알고 있었던 '개념 기반 탐구학습'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터라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첫 번째 날 전반부에는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한 개념 기반 탐구학습에 대한 교수님들의 전반적인 설명이 있었고, 첫 번째 날 저녁 이후부터 다음 날 오후 4시까지는 개념 기반 탐구학습의 현장 전문가들에 의한 실습이 있어 처음 접한 나도 바로 교실 상황에 접근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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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개정교육과정은 내년이면 5, 6학년에도 적용이 되어 이제 초등학교 전 학년이 개정된 교육과정 하에 학습을 하게 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 역량은 의사소통, 창의적 사고, 자기 관리, 공동체 역량 등이다. 2022 개정교육과정은 기존 역량을 확장하여 디지털 리터러시, 생태 환경 감수성, 인공지능 시대의 적응력 등 미래 사회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제공한 학교 교육과정 설계와 운영을 보면 '학교는 학생들이 깊이 있는 학습을 통해 핵심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교수학습을 설계하여 운영한다'라고 나와있다.


그렇다면 '깊이 있는 학습'은 무엇인가? 깊이 있는 학습은 단순히 지식을 외우거나 표면적으로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개념을 이해하고 응용하며 새로운 상황에 전이시킬 수 있는 학습이다. 사실과 기능을 가르치는 방식을 넘어서 이에 기반하여 개념을 깊게 탐구하여 학생들의 삶에 열결 하는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깊이 있는 학습에서 깊이는 문제의 어려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다. 여기에서 깊이는 학습자에게 유의미한 패턴화 능력 즉, 의미 있게 연결 및 나름대로 패턴화 하여 스스로 이해의 틀을 만드는 것이라는 교수님의 설명을 들었지만 처음부터 잘 이해는 되지 않았다. 깊이 있는 학습은 삶과 연결된다는 강의 내용에 그때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2022 개정교육과정에서는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한 여러 가지 도구나 방법 중 하나로 '개념 기반 탐구학습'이 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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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 중 일부

본격적인 실습에 앞서 강사님이 관계 맺기 전략인 '네 모퉁이 토론'을 진행하였다. 말 그대로 네 모퉁이에 '매우 동의한다, 동의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매우 동의하지 않는다'가 써진 종이가 붙어 있었다. 질문을 보고 자신의 입장대로 선택해서 네 모퉁이에 서면 된다. 질문은 '성취기준이 곧 커리큘럼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은 '동의하지 않는다'였다. '매우'라는 극단적인 단어에서 주는 부담감 때문에 차마 그것들을 선택하기 어려웠다. 나 같은 선생님들이 많았는지 양극의 내용에는 각 한 명씩만 서 있었다. 그들의 용기 있는 주관이 아주 멋져 보였다. 그룹 안에서 의견을 교환하였는데 나의 입장은 '성취기준은 교수 학습이 끝났을 때 학생들이 성취하기를 기대하는 내용으로 교육과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이것이 곧 교육과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였다. 성취기준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다양한 교육과정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 나의 입장을 밝혔다. 여러 입장을 가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참 잠이 올 시간에 주위가 환기가 되어 좋았다. 학생들이 입장을 취하고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는 '네 모퉁이 토론'을 토의와 토론이 많이 나오는 5학년 2학기 국어과에 적용시키기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어서 개념기반 교육과정이 등장하게 된 배경도 살펴보았다. 20세기 후반부터 지식의 양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모든 사실을 다 가르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지식 그 자체보다 개념과 원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미국에서는 주(state)마다 성취기준을 만들고 단순한 내용 암기보다 핵심 개념 이해와 고차적 사고력을 성취기준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하지만 성취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과도한 내용 나열 중심 수업과 맥락 없는 활동 중심 수업에 대한 반성적 입장도 나오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이후 미국 교육학자 Lynn Ericson이 개념기반 교육과정을 제시하였는데 학생들이 단편 지식을 배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원리를 추론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강조하였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과정은 탐구 개념 중심으로 유명한데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게 하는 방식이다. IB의 영향으로 개념기반 학습이 확산되었고 우리나라의 2022 개정교육과정에도 뿌리가 되는 내용이 되었다.


개념기반 탐구학습은 전이 가능한 이해에 초점을 맞춘 학습 내용의 조직인 개념기반 학습과 학습을 촉진하는 질문에 초점을 맞춘 탐구기반 학습을 합한 것으로 개념과 원리 탐구로 확장이 된다. 지식 습득이 끝이 아니라 학생들의 일상생활에 융합적으로 전이가 일어나는 살아있는 지식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필요성은 충분히 알았으나 어떻게 나의 교실에서 적용을 시킬 수 있을지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전통적인 교수방법이 틀린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교과와 내용의 상황에 따라 우리 반에 한 번쯤 시도를 하여 학생들이 사실이 아닌 개념을 이해하여 2022 개정교육과정에 맞는 인간상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개념이란 여러 사실이나 사례를 묶어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추상적 아이디어이다. 단순한 정보나 사건이 아니라 공통된 특징이나 원리를 포괄하는 큰 틀이라 생각하면 된다. 강사님의 설명으로는 '개념이란 새로운 상황과 맥락으로 전이(transfer)되는 소재 또는 과정으로부터 도출되는 인지적 구성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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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렌즈'라는 개념기반 탐구학습에 자주 쓰이는 용어도 나오는데 '개념렌즈란 어떤 내용에서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정보를 보는 사고의 도구'로 나름대로 이해하려 애썼다. 예를 들면 기후위기라는 토픽에서도 지속가능성, 책임, 선택, 변화, 생태 등 여러 개념 중 한 두 개를 선택하여 들여다보면 학습의 방향과 내용이 전혀 달라진다. 교과 내 교과 간에 존재하는 넓은 범위가 개념인 매크로 개념, 특정한 교과에서의 개념적 지식인 마이크로 개념도 알아보았다.


단원그물을 만들어 스트랜드(strand)를 짜보는 실습을 하였다. 지식기반 구조 단원그물인지 과정기반 구조 단원그물인지는 교과의 성격과 단원 유형의 차이로 결정이 난다. 우리 실습 모둠에서는 교과 간의 낮은 융합과 낮은 협력인 단학문을 선택하였고 5학년 2학기 국어의 토론하기 단원으로 스트랜드 4개(텍스트 이해하기, 텍스트에 반응하기, 텍스트 생산하기, 텍스트 비평하기)를 짰다. 학생들이 개념을 알기 위해 일반화 문장을 본인의 언어대로 작성해야 하는데 일반화 문장에 제대로 된 것인지 판단하는 게 교사로서 매우 어려웠다. 일반화 문장은 한 개의 단원에서 5~9개의 일반화 문장, 각 스트랜드 별로 1~2개의 일반화 문장, 개념 렌즈 포함한 일반화 문장은 1개 정도가 적당하다고 하였다. 대명사나 고유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현재 시제 동사를 사용해야 하며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지 않으면 한정사(~할 수 있다. ~일 때도 있다) 문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학생들이 일반화 문장을 잘 만들어 낼 수 있게 하기 위해 교사는 안내질문을 만들어야 한다. 가이딩 질문도 4가지 유형이 있다. 개념의 사전적 정의 및 특성을 확인하는 개념 형성 질문, 구체적 사례 연구나 예시에 생각이 집중되는 사실적 질문, 개념 간의 관계를 묻는 질문인 개념적 질문, 정답과 오답이 없는 논쟁적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 질문들을 아까 짠 스트랜드에 맞게 가이딩 질문을 만들어 보았는데 굉장히 어려웠다. 소크라테스처럼 질문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과 사고력을 끌어내기 위해 질 좋은 질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처음이라 머리가 많이 아팠다.


마지막으로 개념기반 교수학습에서의 탐구 설계와 전이 가능한 이해를 이끄는 평가 설계도 다루었는데 뒤로 갈수록 집중력이 많이 약해짐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준비한 강사님들의 열정에 따라가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다음에 또 이런 내용의 연수를 듣는다면 좀 더 이해가 쉽게 될 것 같았다. 역시 일단 이해가 안되면 반복해서 문제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깊이 있는 학습, 생각하는 교실, 탐구하는 학생들, 전이가 일어나는 학습을 위해 그동안 교사로서 우리 반 교실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돌아본 계기가 되었다. 단편적인 활동에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질문을 하고도 시간에 쫓겨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는지, 그 질문 자체가 사고를 유도하는 질문인지 등 앞으로의 수업 방향에 고민 한 스푼이 첨가되었다. 학생들 수준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반 상황에 맞지 않게 무조건 개념기반 탐구학습을 적용한다면 소화도 되지 않고 교사인 나부터 체할 수 있으므로 조금씩 알아가며 적용을 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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