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는 학급 온도계가 있다. 반 친구들이 전체적으로 잘했을 때 온도가 올라가 특정 온도에 해당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가령 ,영어 과학과 같은 교담 시간에 지적을 받지 않았을 때, 전체가 지각을 하지 않았을 때, 줄을 잘 섰을 때 등과 같이 반 친구들 전체가 학급 규칙을 잘 지키면 온도가 올라간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교실 소음 데시벨이 너무 높아 경고음이 울리면(인터네에 소음 측정기 툴킷이 너무나 잘 되어 있다) 1도씩 떨어지므로 온도가 잘 올라가기도 하지만 잘 내려가기도 한다. 온도 40도가 되면 우리 반 아이들이 그렇게 바람하지 않는 마니또를 할 수 있는데 2학기가 된 후 시간이 한참 지나도 40도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갖은 역경과 고난 끝에 40도 언저리가 되자 아이들은 교실에서 큰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서로 조심하였고(보드게임을 할 때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교담 시간에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그렇게 어려웠던 40도를 오늘 드디어 만들어 마니또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급 온도계 화살표가 40도를 찍자 마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아이들의 얼굴은 매우 상기 되어 있었다.
이번 주가 우리 학교 '친구사랑주간'이라 마니또를 시작하기에 타이밍이 정말 좋았다. 담임교사로서 럭키비키 하였다. 친구에게 칭찬의 편지를 쓴 후 마니또 행사를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열심히 편지를 쓰는 동안 나또한 열심히 초등교사 커뮤니티에서 마니또 자료를 찾아 준비하였다. 없는 게 없는 곳이다. 마니또는 모든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잘 참여해야 의미와 재미가 있으므로 이를 위해 미션 수행지를 출력하였다. 예전에 고학년에서 별다른 준비 없이 마니또를 했을 때 흐지부지하게 끝냈던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마니또 미션 수행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비밀 유지'이다. 마니또는 이탈리아어로 '비밀친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익명으로 서로에게 친절한 행동이나 미션을 수행하는 활동이다. 반 분위기를 좋게 만들고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므로 익명이라는 원칙이 위반되는 행동을 금지해야 한다. 설령 친구의 마니또를 알게 되거나 눈치를 채더라도 절대 티를 내서는 안 되는 게 절대적인 1원칙이다.
"본인 또는 친구의 마니또를 눈치채거나 알게 되더라도 절대 말을 하거나 티를 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마니또에게만 집중하고 마니또를 추측하는 말도 조심해야 합니다."
비밀 보장에 관해 엄청나게 강조를 한 후 설명을 계속 하였다.
"마니또 미션 수행지 뒷면에는 미션 리스트가 있습니다. 난이도에 따라 별의 개수가 다릅니다. 10월 2일 목요일에 공개를 할 때 별의 개수가 가장 많은 사람에게 상품을 수여하겠습니다. 정성스럽고 진지하게 잘 참여하길 바랍니다."
상품이 있다는 소리에 아이들 눈이 더 반짝인다. 마니또 활동 자체도 재밌는데 잘하면 상품까지 준다니 서로를 보며 눈웃음을 짓는다.
"마니또 미션은 10개 이상 20개 이하만 할 수 있습니다. 20개가 초과된 미션은 별이 카운팅 되지 않습니다."
5학년 2학기 수학 1단원 '수의 범위와 어림하기'에서 나온 '이상과 이하, 초과' 용어도 깨알같이 넣어서 말을 하니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 그러면 한 미션만 계속 해도 되나요?"
앗! 똑똑한 친구가 질문을 한다. 덕분에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짚고 넘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 좋은 질문이에요. 한 미션 당 2번까지만 수행할 수 있습니다. 즉, 다양한 미션을 잘 수행하라는 뜻이겠죠? 성공한 미션과 별 개수를 잘 기록하기 바랍니다."
"선생님이 마니또 활동 할 때 팁 하나 줄까요? 예를 들어 마니또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은데 너무 티가 날 것 같다 싶으면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하이파이브를 하면 됩니다. 장난스럽게 말고 정성스럽게요. 인사도 마찬가지겠죠? 친구 여러 명에게 하면 티가 나지 않아 안전하게 미션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당부를 한 후 아이들이 제일 기다리면서도 떨리는 마니또 뽑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번호가 쓰여있는 탁구공 로또 뽑기를 활용하였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애정템이다. 발표자를 랜덤으로 뽑거나 체육시간 팀을 나누거나 자리를 선정할 때도 로또뽑기를 사용한다. 순전히 운에 의한 것이고 본인들이 직접 뽑는 것이므로 불만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엇보다 손맛이 좋다. 역시 아날로그가 좋을 때도 많다.
"1번과 23번 일어나세요! 둘이 가위 바위 보 하세요! "
1번 친구가 이겨 앞번호부터 마니또 번호를 뽑았다. 이때도 주의사항이 많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번호를 두 손으로 뽑아서 본인 확인 후 선생님한테도 조심히 보여주세요. 한 명씩 선생님 자리로 와서 공을 뽑고 대기자는 저멀리 문쪽에서 기다립니다."
비밀을 철저하게 보장하기 위해 아무도 보지 못하게 번호를 뽑도록 하였다. 긴장된 표정을 한 아이들이 한 명씩 나와 번호를 뽑았는데 이때도 주의사항이 또 있다.
"번호를 확인할 때 좋거나 싫은 표정을 짓지 마세요. 누구를 뽑던지 무표정으로 표정관리해야 합니다. 절대 티 내지 마세요!"
번호를 뽑을 때 자신의 마니또가 누가 될지 궁금하고 설레는 표정이 너무나 귀여웠다. 신중하게 한 명씩 뽑은 후 자신의 마니또가 결정났다. 마니또 공개일은 열흘 후인 10월 2일 목요일이다. 마니또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성스럽게 행동하고 비밀을 유지하는지에 달려있다.
우리 반 친구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마니또를 드디어 시작했다.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이 매우 사랑스럽다. 마니또를 하면서 내가 친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친구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들꽃처럼 말이다.
올해 우리 반 23명 아이들 모두가 다 착하고 어린이 답게 순수한 면이 있어 학급 운영이 매우 즐겁고 행복하다. 장난꾸러기들도 많지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잘 놀며 무엇보다 소외되는 친구가 없다. 고학년이면 남자와 여자가 나뉘고 끼리끼리 놀 법도 한데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며 어울린다. 조용한 친구에게는 먼저 다가가는 분위기도 매우 고맙다. 또래보다 좀 어린 행동을 많이 하거나 에너지가 지나치게 넘치는 친구에게도 싫은 내색을 별로 하지 않고 잘 어울리는 편이다. 물론 자잘한 사건들이나 이르는 행위는 계속 있지만 이 정도면 5학년 치고는 매우 순조롭다.
이번 마니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평소 우리 반 분위기를 보면 정성스럽게 잘 행동할 것 같다. 평범하고 똑같은 일상에 마니또 행사가 우리 아이들에게 작은 활력을 불어넣길 바라본다.
두근두근! 마니또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