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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정영희의시네리뷰]72번 죄수의 약속-그을린 사랑

문득 붓다의 가르침이 사무치게 그리운 가을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의 기습공격(2023.10.7)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1년을 넘기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편을 들어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해 온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 단체 헤즈볼라와도 전쟁을 시작했다. 레바논 국민에게 헤즈볼라는 악몽이다.

  헤즈볼라(1980년대 초 설립)는 레바논의 시아파 이슬람교의 정치적 정당이자 테러 무장조직이다. 헤즈볼라는 ‘하나님의 당’이란 뜻이다. 그들은 이란의 배후조정을 받는다. 전 중동을 통일하기 위해 시아파 이데올로기(무함마드의 혈통만 후계자로 인정)와 상반되는 개인, 국가, 민족들을 모두 테러한다.

  그들은 왜 싸울까. 그들의 싸움은 4천년이나 되었다. 거칠게 정리하면 노아의 방주로 살아난 노아의 수많은 후손 중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 사라는 자신의 이집트 계집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들여보낸다. 하갈은 아들 이스마엘(하나님께서 들의심이라는 뜻)을 낳는다. 이스마엘이 열 살 쯤 되었을 때 사라가 이삭(웃음이라는 뜻)을 낳는다. 사라는 이삭이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며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쫒아내게 한다. 사막으로 쫓겨난 이스마엘의 후손이 아랍민족이고 이삭의 후손이 유대인들이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가졌을 때 천사가 나타나 ‘네 아들은 들나귀 같은 사람이라, 닥치는 대로 치고 받아 모든 골육의 형제와 등지고 살리라.’ 라고 전언한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 사후(632년), 수니파(90%)와 시아파(10%)로 분열된다. 수니파의 종주국은 사우디아라비아며, 시아파의 종주국은 이란이다. 수니파는 ‘이슬람 경전’을 따르는 자들이고,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후손’을 따르는 자들이다. 

  우연히 보게 된 영화 ‘그을린 사랑’ 때문에 난데없이 구약성경을 찾아 읽었다. 

  ‘약속을 어긴 자는 비문이 필요 없다. 침묵이 깨지고 약속이 지켜지면 비석을 세우고 내 이름을 새겨도 된다. 햇빛 아래에.’

  이야기의 시작은 ‘약속’이다. 한 여인이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유언을 남긴다. ‘그을린 사랑’은 ‘듄' 시리즈로 유명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2010년 작품이다. 원작자는 레바논 출신의 캐나다인 와이디 무아와드의 ’화염‘이라는 희곡이다.

  이 영화는 유대인과 이슬람과의 불화가 아니라, 기독교인과 이슬람과의 불화로 인해 한 여인의 삶이 왜 평생 봉인된 채로 살아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죄로 유대인은 전 유럽인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 오랜 시간 디아스포라의 삶을 산다.

  레바논은 기독교와 수니파 시아파로 나뉜 이슬람교와 여러 종교 간의 내전이 끊이지 않는 나라다. ‘그을린 사랑’의 배경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격렬하게 대립하던 1970~1980년대의 레바논이다.

  조국 레바논을 떠나 캐나다에서 쌍둥이 남매를 키운 나왈은 유언장을 남긴다. 쌍둥이 남매인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 나왈의 유언장를 보며 혼란과 충격에 빠진다. 전쟁 중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와 형을 찾아, 자신의 편지를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편지를 전하기 전까지는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한다. 

  - 여러분이 이제까지 알던 수학은 명확하고 한정적인 답을 얻는 것이 목적으로 명확하고 한정적인 문제에서 출발하죠. 이제부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이 또 다른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불러오게 되죠. 사람들이 여러분이 파고드는 일이 시간낭비라고 하겠죠. 여러분은 그들을 설득할 수도 없어요. 그것은 엄청나게 복잡한 일이 될 거니까요. 그것이 바로 이론수학입니다. 고독의 나라인 것이죠.

  이론수학을 전공하는 잔느의 지도교수가 첫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 하는 말이다. 마치 종교분쟁을 은유한 말인 것 같다. 해결 불가능한 문제는 또 다른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불러온다.  

  이미 죽은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레바논으로 떠난 남매 앞에 충격적인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피드백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십대였을 것 같은 기독교인 나왈은 이슬람인과 사랑에 빠진다. 둘은 도망하려다 나왈의 오빠에게 들켜 이슬람인은 그 자리에서 총에 맞아 죽고 만다. 할머니 덕에 경우 살아난 나왈은 아이를 낳고 도시로 나가 대학을 다닌다.

  - 읽고 생각하는 걸 배워. 그래서 이 불행에서 벗어나도록 해.

  할머니는 아이의 오른쪽 발뒤꿈치에 점 세 개를 찍는 문신을 하고 고아원에 맡긴다. 내전이 극심해지자 모두들 피신을 한다. 삼촌 집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왈은 혼자 아이를 찾으러 떠난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고아원은 이슬람인에 의해 이미 폐허가 되어 있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기독교인이 이슬람 주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나왈은 민족주의자들을 증오하며 이슬람단체를 도와 기독교 지도자를 암살하고 감옥에 간다. 15년 간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당한다. 결국 성고문으로 인해 임신을 하고 쌍둥이를 낳는다. 아이를 낳고 풀려난 나왈은 이슬람 단체의 도움으로 캐나다로 가서 정착을 한다.

  - 그건 아셔야 해요. 그 때는 엄한 논리에 따라 끊임없이 서로에게 앙갚음을 했어요. 마치 덧셈처럼요.

  레바논에서 만난 공증인이 시몽에게 말한다. 잔느와 시몽은 거대한 파도 같은 진실을 마주한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얼마나 두렵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가. 알고 싶지 않은 과거의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잔느와 시몽은 아버지이자 형인 그에게 어머니의 편지를 전한다.    

  너는 사랑으로 태어났어. 그러므로 네 동생들도 사랑으로 태어난 거지.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란다./ 너의 어머니 나왈 마르완. 72번 죄수로부터

  사랑하는 아이들아 이야기의 시작은 언제일까. 너희가 태어날 때일까? 그러면 그 시작은 공포란다. 너의 아버지가 태어날 때? 그러면 그 시작은 위대한 사랑이란다. 너희 이야기의 시작은 약속이란다.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는 약속. 덕분에 마침내 약속을 지켜냈구나. 너희를 사랑한다. / 너희들의 엄마가. 나왈로부터.

  마침내 봉인되었던 침묵이 깨지고, 분노의 흐름을 끊어 낸다. 잔느와 시몽은 그녀의 이름을 새긴 비석을 세운다. 그 비석 앞에 아들이자 남편인 그가 서 있는 게 엔딩신이다.

  유대인의 경전은 토라고, 이슬람인의 경전은 코란이고, 기독교인들의 경전은 성서다. 유대인은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며 예수를 부정한다. 이슬람이란 ‘유일신 알라에게 절대 복종한다’는 뜻이다. 기독교는 예수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 기독교 성서는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고 구약은 유대 성서와 비슷하다.

  같은 하나님을 다르게 해석하면서 지옥이 시작되었다. 이 세 종교의 공통점은 모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삼는다는 것과 다른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는 거다. 자신들의 경전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 살육하고 유린해도 정당화 한다. 모든 전쟁은 종교(이념)를 빙자한 영토전쟁이다.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의 성전인 '통곡의 벽(로마제국이 솔로몬의 성전을 파괴하고 남은 벽)'이 있고, 이슬람교에게는 무함마드가 승천한 장소인 '황금사원'이 있고, 기독교인에게는 예수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마을'이란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예루살렘은 영원히 평화롭지 못한 마을이 될 것이다.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한 일종의 신화다.’ 어느 미래학자의 말이다. 인간은 인간이 만든 신화를 붙잡고 얼마나 많은 생명을 도륙하고 타인의 삶을 무참히 짓밟아 왔는가. 생명가진 것들의 탐욕, 특히 위정자들의 권력욕은 숙명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과학 기술로 생사(生死)의 비밀이 풀리고 영생한다면 종교는 사라질까. 그 때 쯤 이면 이 모든 비극은 끝이 날까.

  문득 붓다와 예수의 참된 가르침이 사무치게 그리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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