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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타 Oct 03. 2024

한 달만 고생하면 일 년이 편하다

학교 교육행정직 마음먹기 매뉴얼


시지프스의 형벌


교육행정직은 2,3년에 한 번씩 근무지를 옮겨야 합니다. 

첫해에는 인수인계받은 미결사항들을 처리하고 1년 내내 그 학교에 대한 정보를 익혀갑니다. 

1년을 보내다 보면 더 개선해야 하거나 새로운 사업들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2,3년을 알차게 보내고 나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이죠.


적응하자마자 새롭게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 학교에 맞는 새로운 사업을 신청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루틴은 매년 수립되는 학교교육과정을 뒷받침하는 아주 중요한 시스템이 됩니다.


어찌 보면 끊임없이 돌을 끌어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과도 같습니다. 

2년마다 학교를 옮겨야 하니 안정성도 없고 해가 바뀔수록 난이도도 점점 올라갑니다.


반복되는 고된 노동자들의 삶이 모두 그러하겠지요?

인사제도가 수립되기까지에는 부단한 검토와 논의가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른 장단점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받아들이고자 하였어요. 

일단 스스로 적응하는 것이 더 현명할 듯하여 적응에 초점을 두고 일을 하고 있어요. 


학교시설물은 안전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노후된 건물이 많습니다. 

자칫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여러 위험요소들을 빨리 파악하고 개선해야 하는 것이죠. 

안전을 기본전제로 하고 그 외에도 학교에 필요한 사업은 정말 많이 있어요. 

연간 행정업무를 진행함과 동시에 그 학교만의 특징적인 사업을 하는 곳도 있기에 빨리빨리 파악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답니다.


시지프스의 형벌이란(의미, 유래, 예시) (tistory.com)



해낼 결심, 고생할 각오


부임 후 한 달간은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답니다. 

지난달까지 진행하던 업무들을 무리 없이 진행하려면 내용을 빨리 파악해야 합니다. 

인사이동이 있는 1월과 7월에, 학교는 방학이지만 행정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쁠 때입니다.

예결산과 직결된 업무를 처리해야 하므로 여유가 없습니다. 


시기적인 특성상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학교의 전반적인 업무를 파악해야 하더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알아야 하고 빨리 해결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부임 후 한 달간은 무조건 작년 자료를 전체적으로 훑어보며 분위기를 파악합니다.

 

기존 근무자들에게 얘기를 듣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이렇게 문서로나마 먼저 파악해 보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급한 일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해 하나씩 처리하곤 했어요. 

한 달이 지나 보면 어느새 본인도 이 학교의 교육가족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때 가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거나 아직도 파악 중이란 얘기를 하기가 겸연쩍어서 가급적이면 속도를 내보았지요.

그래... 결심했어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처음 인사이동이 있고 몇 달 동안, 원래부터 적응이 느린 저는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했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인사이동이 있은 후에는 얼른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당연히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어요. 그냥 마음만 단단하게 먹어보는 거예요.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해보려고 하다 보면 오늘 보다 더 편한 내일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첫 한 달을 고생하면 뒤이어 오는 많은 날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해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일에 있어 자신감을 가지게 되니 만나는 사람들 마다 어렵지가 않았어요. 

멀리 할 사람도 파악이 되고 알면서도 모른 채 할 일도 생기고요.. 마치 인생 2회 차 같다고 할까요? ㅎㅎ    



업그레이드 파도타기


군대와 학교는 바뀌지 않는다고 누가 그랬나요? 

이렇게 바뀌는 게 많은 곳인데 밖에서는 안 보이는 것 같아요.

교육부 전체가 사용하는 나이스나 에듀파인 등의 시스템은 해마다 업그레이드가 되어 얼른 배우고 익혀야만 일을 해낸답니다.  

교육 관련 사업도 다양하고 1년에서 3,4년 주기로 내용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일 년 휴직하고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 있다는 말도 있어요.


학교에 필요한 사업이나 공사가 있을 때는 지원 가능한 예산을 파악하여 예산 신청을 하여야 합니다. 

인사이동과 동시에 새로운 근무지의 현안사업을 얼른 파악해야 하는 것과 후임자 역시 그 사업을 파악하느라 고생해야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뛰어난 실장님들은 가능하셨겠지만,  빠른 시간 내에 현 학교의 정확한 문제점과 개선사항을 파악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벅차게 느껴졌거든요. 


사진: Unsplash의 Marvin Meyer

어쩔 때는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합니다. 

전임자와 후임자가 각각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다를수 있기 때문에  욕을 먹을 수도 있거든요. 

근무지만 생각하다가 전체 교육예산의 낭비를 초래할까 염려되기도 하지요. 

그래도  결국은 내가 일하는 만큼 교육환경이 업그레이드될 것이고 그 속에서 우수한 인재가 즐겁게 학교를 다닐 것이라는 희망으로 일해봅니다.



시기적절함이라는 균형감각


요즘 신규공무원들을 보면 정말 머리 좋은 분들이 많아요. 

학원도 안 다니고 자기주도학습만으로 시험에 합격했거나 남들보다 짧은 기간에 교재를 독파해서 합격한 분들도 많았어요. 

그렇게  혼자 공부하고 자율적으로 생활한 분들이라 업무 매뉴얼 습득도 정말 빠르더라고요. 

저는 행정업무가 너무 어려웠는데 후배님들은 그렇지 않아 보여서 정말 부럽기도 했어요.


학교는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수립된 교육정책과 학교 교육과정에 맞춰 일을 진행합니다. 

그러므로 잠시 미루거나 반대로 미리 몰아서 수가 없는 일이 많아요. 

항상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숙지하고 있고 시기적절하게 잘 처리해 나가면 어느새 일 년이 다 끝나 갑니다. 

쉬지 않고 일하는 게 우리네 업이지만 끝이 있다는 건 정말 희망 적인 말이죠? ㅎㅎ


이런 학교의 특성을 몸에 익히고 나서는 생활에 리듬감이 생기더군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워라밸이 가능해진답니다. 

일과 내 삶의 밸런스! 직장인 누구나 꿈꾸는 것이지만 참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 

특히나 변화무쌍한 대한민국에서는 이 얼마나 꿈의 단어일까요? 


매 순간 당황하지 않고 나의 인생플랜과 조화롭게 실행해 나갔다면 얼마나 맘이 편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공무원으로서 항상 긴급한 상황과 대처가 필요한 일이 있고 방학을 누리는 여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주 52시간을 채워야 할 만큼 빡빡한 자리도 아니거든요.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너무 크게 와닿았던 저의 유약함이 정말 안타깝고 애틋합니다.


글을 쓰며 결심해 봅니다. 

오늘부터라도 학교일정과 내 삶을 균형 있게 잘 맞추어나가면서 진정으로 건강한 워라밸을 실현해 보자고요.

긍정적인 마인드로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며 행복함을 만끽해 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사진: Unsplash의Jared Rice

(표지 사진: Unsplash의 Renáta-Adri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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