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욱 May 22. 2024

6화. 미국 공무원은 나무늘보?

@2007 워싱턴 시간여행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찾아야 하는 민원 부서는 크게 두 곳이다.


사회보장제도와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보장국(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의 지역 사무소와 운전면허증 발급에서 차량 등록에다 유권자 등록까지 할 수 있는 Department of Motor Vehicles, DMV가 있다. DMV는 우리로 치면 운전면허 시험장에다 자동차 등록 사무소 그리고 일부 동사무소의 업무까지 담당하는 그야말로 민원 처리의 종합 부서다.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를 발급받기 위해 낮 12시가 조금 넘어 버지니아 주 Fairfax County의 한 지역 사무소를 찾았다. 

   

청원경찰에게 방문 이유를 말하자 번호표를 뽑아 주었다. ‘22’라고 적혀 있었다. 5평 남짓 되는 대기 사무실에는 이미 3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22번이면 얼마나 기다릴까.’ 약간의 호기심 속에 나도 자리를 잡았다.

     

“다음은 A116번” ‘어 이게 무슨 조화지? 나는 분명 그냥 22번인데, 왜 A를 붙이지?’  한 10여분이 지났을까? 이번엔 ‘D 327’이라는 번호를 부르는 게 아닌가?  물론 그 번호표를 가진 민원인은 직원과 상담하기 시작했다.   


조금 불안해 졌다. ‘번호표가 잘못 된 건 아닐까? 사람들이 더 오기 전에 다시 번호표를 뽑아야 하나?’  청원경찰에게 내가 제대로 된 번호표를 가졌는지 물었지만 그는 ‘자리에 앉아 기다리라’는 시늉만 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17번’을 불렀다.

     

‘아하 그렇구나. 각자 찾은 업무에 따라 번호표를 미리 분류해 두었구나’


번호표 발급기를 직접 살펴보니 ‘사회보장 번호 신규 발급이나 재발급은 1번을, 장애연금이나 은퇴 연금 관련은 2번을, 노년층 의료지원(Medicare)은 3번 버튼을...이런 식으로 다섯 종류로 분류돼 있었다.

    

 ‘17번이라.’ 시계는 1시를 넘어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이제 10여명.곧 내 순서가 오겠지.....하지만 기대는 분노로 바뀌었다. 

미 공무원 업무처리는 풍자의 대상. 2016년 영화 주토피아에선 나무 늘보에 비유한다.(영화 캡쳐)

17번 업무 처리에 한 30분이 걸리더니 그 다음 번호도, 그 다음 번호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렇게 더디게 처리하다간 오늘 안에 업무를 볼 수 있을까?  더구나 번호 앞에 알파벳 A, B, C, D가 붙은 사람들의 업무는 매우 빨리 처리됐다. 나보다 늦게 왔는데도 이미 일 처리를 마친 뒤 사무소를 나가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오후 3시가 넘어서자 분노는 체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곳 업무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어차피 업무 시간 안에는 처리하겠지. 그냥 기다리자’  약 30분을 더 기다렸고 21번 차례가 됐다.


그런데 21번인 동양인은 상담에 들어간 지 2분도 안 돼 화가 난 얼굴을 하고서는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덕분에 내 차례는 조금 당겨졌다.     


나를 담당한 직원은 비교적 친절하게 업무를 처리했다. 물론 사람마다 편차가 있다. 올해 초 미국에 도착한 한 지인은 담당 직원이 서류 하나가 잘못됐다며 고압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마찰을 빚었다고 했다.


이 직원은 사회보장 번호 발급 신청서와 여권, 비자 관련 서류, 입국 때 받은 서류 등을 꼼꼼히 살피더니 내가 잘못 기입했거나 누락된 부분을 찾아내 그 자리에서 보완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서류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하더니 관련 서류 전부를 다시 돌려줬다. 관련 내용을 자기 컴퓨터에 입력했기에 서류 일체를 돌려준 것이다.


그 직원은 ‘사회보장 카드가 5일에서 10일 사이에 집으로 도착할 것’이라며 ‘혹시 그 안에 오지 않으면 다시 연락하라’는 문서를 첨부하면서 일을 마무리 했다. 한 20분쯤 걸린 것 같다.


상담이 2분만에 끝난 내 앞 번호 동양인은 ‘다른 모든 서류는 갖췄는데 가장 중요한 여권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한다.     


‘참 안됐다. 4시간 가량 기다렸는데 서류미비로 다시 이 절차를 밟아야 하다니’  

미 버지니아 DMV 전경

사회보장 사무소와 마찬가지로 DMV도 업무처리 절차는 똑같다. 운전면허 시험, 차량 등록, 차 번호판 교부 등 각 업무마다 일련 번호를 달리해 놓고 번호표를 나누어 준다. 그리고 자신의 번호가 되면 업무를 상담하고 처리한다.


대기 시간이 무척 길어 일 하나 처리하는데 조금 과장하면 거의 하루 온종일이다.


그런데 구비 서류를 하나라도 빠뜨리면...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국이라면 ‘민원업무가 신속하게 처리 되지 않는다며 공무원들 무지 욕먹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자기 순서가 되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충분히 묻고 또 일처리가 어떻게 되는지 소상하게 알 수 있다. 공무원들도 대기자들보다는 상담 민원인에게 집중한다.   

  

기다린 만큼 자기 순서 때 충분히 서비스 받을 수 있다는 공감대 때문일까?  미국 민원처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앞서 내가 겪은 '불안-초조-분노-체념’이라는 과정은 생략하고 오직 기다릴 뿐이다. 그래서 번호가 나오면 환호하고 기뻐하는 지도 모르겠다.

     

여담하나.      


미국 버지니아 주 운전면허 시험은 시력 검사와 필기시험, 도로 주행으로 구성돼 있다. 컴퓨터로 치는 필기시험은 도로 표지판과 운전 법규에 대한 지식을 점검하는 데, 한 문제를 푼 다음 정답여부를 확인해야 다음 문제로 넘어가도록 돼 있다. 모두 35문제를 푼다.  


도로 주행 시험은 잘 아는 대로 차에 동승한 시험관이 지시하는 대로 동네 한 바퀴 정도를 10분에서 15분 정도 달리면 끝이다.      

미 DMV 홈페이지에 나온 컴퓨터 운전면허 시험 안내

 운전면허 도로 주행 시험 때 시험관에게 물어봤다. ‘하루에 몇 사람이나 DMV를 찾느냐고?’


‘버지니아 주에 여러 DMV 사무소가 있는데 내가 찾은 TYSONS CORNER DMV 사무소에는 하루 1천 명 이상이 방문한다’고 했다.  ‘또 시험관 한 사람이 하루 40여명의 주행 시험 응시자를 처리한다’고 했다.


한 사람에 10분정도 잡아도 하루 4백분, 거의 7시간이다.     


민원인들은 장시간 기다리느라 지치고 짜증나고,  담당 공무원들도 격무로 힘든데, 사무소를 늘리거나 공무원이나 보조 요원을 더 충원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물어보았다. 그게 업무 효율을 높이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답은 이랬다.      


“그게 다 세금이다.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겠다고 공감하면 모를까. 아직은 세금을 더 내야 하겠다고 생각할 만큼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거지”  ///TOK///       

이전 06화 5화. 1년동안 공짜 TV 갖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