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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집, 좁은 방, 낮은 집

스물여섯, 8평 B02호

by 김온영 Feb 05. 2025

2022년 서울에 집중 호우가 쏟아졌다. 예상을 뛰어넘는 비에 반지하에 살던 이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끔찍 한 사고 사실보다 대통령이 피해 지역을 방문한 사진 한 장 이 인터넷을 달구었다. 반지하 창문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안타까움을 표하던 이들의 사진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듯 나는 고개를 돌렸다. 

대학에 들어가며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났다. 그리고 몇 번의 이사가 있었다. 기숙사, 2층 다세대주택의 방 한 칸, 고시원, 친구 집, 아파트 하숙 생활을 거쳐 전셋집에 다다랐다. 중소기업을 2년여 다니며 모은 전세보증금으로 갈 수 있는 집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또한 선택권이 나에게 있지도 않았다. 여러 집을 둘러본 후, ‘나의 취향과 집의 상태에 따라 머물 곳을 선택해야지’라는 스물여섯 사회 초년생의 계획은 복덕방에 들어서며 곧 틀어졌다. 

“보증금을 얼마까지 쓸 수 있어요?” 

“그 보증금으로 갈 수 있는 데는 여기밖에 없어요. 보시겠어 요?” 

“반지하, 말이 그래서 그렇지 방도 넓고 살기 괜찮아요.” 

나의 선택지에 반지하는 없었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그래. 사람들의 편견이지. 반지하면 어때. 해가 충분히 들 지는 않지만 낮엔 회사에서 생활하고 밤에도 거의 늦게 들어오잖아? 방도 크고 괜찮네. 이 정도면 뭐.’ 


방과 분리된 주방 겸 거실과 화장실이 집 안에 있었다. 2구 가스레인지가 있어서 요리도 가능했다. 주방 옆 다용도실엔 세탁기도 있었다.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인터넷을 연결하고 자기 계발을 다짐하며 기사 자격증을 공 부하고 온라인 MBA 과정을 들으며 경력 도약을 꿈꾸었다. 이곳에 와서 가구라고 불릴 만한 물건들도 샀다. 책장이 딸려있는 책상과 회전의자, 노트북, 작은 냉장고, 냄비와 접시 등등을 구입했다. TV도 놓았다. 두려움으로 기억된 첫 자취방을 구했을 때의 설렘이 다시 떠올랐다. 나 혼자 살 공간이 생겼다는 기쁨을 넘어 스스로 이 공간을 마련했다는 뿌듯함 이 더해졌다. 

반지하는 여름엔 열기를 느낄 수 없어서 선선했고 겨울엔 외풍이 없어 따뜻했다. 그래서 가끔은 쾌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비가 오고 나면 달랐다. 비 온 후, 습기가 잘 빠지지 않았다. 이불이 꿉꿉하고 말려둔 옷을 입어도 빳빳 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입던 옷을 다시 입는 것처럼 찝찝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자주 보였다. 습기와 함께 오래된 집에서 나는 냄새들이 났다. 냄새의 정체는 곰팡이였다. 바닥과 맞닿은 벽지부터 검은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하며 영역이 점점 넓어져갔다. 하지만, 문제는 벌레도 습기 도 곰팡이도 아니었다. 그건 장마철에 일어난 집중 호우였 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2층 주택의 가장 낮은 곳은 내 집 현관이었다. 비가 오면 현관 앞,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하수구는 부지런히 비들을 흡수했다. 그러다 집중 호우가 내린 날 자신의 소화 능력을 넘어서자 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모래주머니를 쌓아 현관을 봉쇄하려고 해 보지만 늦었다. 물은 현관뿐만 아니라 화장실 배수구에서도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현관 앞 신발장에 물이 차고 신발이 물 위로 둥둥 떠 다녔다. 곧 거실로 물이 넘쳤다. 거실은 포기하고 얼른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 안에 놓여있는 물건들을 높은 곳으로 쌓아야 했다. 이불부터 책상 위로 올리고 바닥에 있던 옷가지며 노트북, 책 등을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옮겼다. 나는 짐들을 옮기고 주인아저씨는 양수기로 물을 퍼 올렸다. 쏟아지는 비처럼 땀이 쏟아졌다. 반지하 전셋집이 천국에서 지옥이 되는 순간이었다. 

‘살기 괜찮다고? 이래도 괜찮아?’ 화가 났다. 이런 집을 소개한 중개인에게, 이 정도의 집 밖에 비가 그치고 물이 빠졌다. 윙윙거리며 물을 퍼내는 양수기 소리도 멈추었다. 

주인아저씨는 

“곰팡이 생기니까 보일러 틀어서 말리세요.”라는 말과 함께 양수기를 챙겨서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한 것인지 모르겠다. 난 이렇게 물러 터졌다. 

물이 들어왔다가 빠졌을 뿐인데 다른 집이 된 것처럼 낯설었다. 방의 물기를 닦고 걸레를 짜다 보니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 도망가고 싶은데 갈 곳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뿐이었다. 장판을 걷으니 습기를 잔뜩 머금은 시 멘트 바닥이 보였다. 바닥이 마르도록 장판을 다 걷어내고 보일러를 틀었다. 시멘트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물을 끓이고 김치와 함께 라면을 먹었다. 생전 겪어보지 못한 비현실적인 물난리를 겪고 난 후에 라면을 먹고 있으니 점차 현실로 돌아온다. 

반지하, 그 안에 내가 있었다. 창문을 내다보는데 누군가 꿇어앉아 내 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눈길이 마주치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수치스러웠다. 누군가 창을 통해 내 방을 들 여다보는 순간, 창피해졌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바라보아야 하는 곳이 내가 사는 집이었구나.’ 내가 반지하에 살 았음이 그리 자랑스럽지 않은 기억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 반지하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한 남자를 만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파트 한 채, ‘턱’ 해오는 남자를 만났다. 다만 그 아파트가 직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문제였다. 결혼과 함께 새 아파 트에 입주하며 신혼의 재미를 즐겼지만, 매일 왕복 2시간씩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퇴근이 늦어질 때면(나는 회사에서 남편을 만났다), 집으로 가는 대신 아직 전세 기간이 남은 반지하에서 잠을 자 고 출근했다. 반지하 전셋집은 나만의 공간에서 남편과 둘 의 공간이 되었다. 몇 달간 두 집 살림을 하며 지내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 전세 아파트를 얻어 반지하를 떠났다. 


집중 호우로 인해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던 서울시 반지하 주택에 물막이판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 35%에 이른다고 합니다. 

반지하에 살던 50대가 사망 후, 일주일이 지난 후 발견되었습니다. 

외신에서 한국의 집중 호우로 인한 반지하 피해 소식을 보 도하며 영화 「기생충」에 나온 반지하를 ‘banjiha’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기사들이 나올 때마다 남편은 나에게 얘기한다. 

“내가 당신을 반지하에서 구해줬잖아.” 

그러면 나는 대꾸한다. 

“그 반지하에 얹혀산 게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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