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점장 필터링하기
Disclaimer: 제가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글이므로, 업계 전반적인 규칙 및 분위기와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멘토가 나에게 해 준 말이다. 그러면서 큰 자산이 될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지금 신설 임대업 법인은 사실상 대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RTI(Rent to Interest)가 1 이상이면 나올 수 있으나, 현재 서울 인기 지역에서 대출을 일반적인 비율로 받으면 RTI는 1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법인 대출 시에는 원래 RTI를 보지 않지만 지금은 PF부실 등 여러 가지 위험요소 때문에 나라에서 은행에게 이런 지침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 잔금 대출이 안 나와서 고생하는 사람 많다는 얘기가 계속 들리고 있는 형편이다. 빌딩 투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대출을 내가 어떻게 뚫었는지 핵심 내용 위주로 들려주려 한다.
2월 마지막 주에 빌딩 매수 계약을 하고 그날부터 대출 읍소 모드에 들어갔다. 내가 아는 빌딩 법인 중개사, 대출 상담사에게 연락을 해서 은행 지점장들의 연락처를 받았다. 불과 몇 주전만 해도 난 진실된 마음으로 다가가면 세상 일이 잘 풀릴 거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은행 지점장은 나보다 훨씬 더 높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듯이, 그들 대부분은 결국 내가 흔히 보는 영업사원에 불과했다.
은행 지점장에게 문자 보내고 통화하고 필요한 서류 보내는 업무를 2주 넘게 했다. 열몇 개의 은행 지점과 소통하면서 작년 말부터 재밌게 해 온 빌딩 투자 크런치 모드에서 처음으로 좌절감과 자괴감을 느꼈다. 회사 인터뷰에서 서류, 1차 면접에서 계속 탈락하는 상황과 비슷했고 그냥 내 집에서 만족하며 살 걸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지 허무함도 몰려왔다. 본업과 사업으로 돈을 번 다음에 빌딩 투자를 하는 게 맞는데, 난 빌딩 투자로 부자가 되려고 한다. 의사 같은 전문직에 현금 20~30억 보유하면서 월 현금흐름이 최소 3천만원은 돼야 빌딩 투자를 하는 건데, 나 같은 평범한 직장인이 이 바닥에 끼어보겠다고 설치는 게 부끄러웠다.
그래도 난 최선을 다 했다. 달라는 기본 서류는 즉각 전달했고 사업계획서, 미래 손익계산서, 재무상태표까지 만들어서 제출했다. 3주 동안 은행 지점장들과 소통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이제 통화 후 30초면 파악할 수 있다.
RTI가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은 바로 거르면 된다 -> RTI가 문제면 추가 서류나 다른 조건, 예를 들어 대표자 명의의 부동산 같은 추가 담보나 월 현금흐름 상태, 신용평가를 요구한다.
바로 통장 만들어서 매매가격의 10% 정도를 자본금으로 설정하라고 하면 능력 없는 지점장이다 -> 은행 심사역에게 승인 나기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다. 난 자본금 2천만원으로 대출 승인받았다 (지금은 부채비율 관리 목적으로 증자한 상태). 자신의 설득력이 부족하니 심사역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쓰는 방법 같은데 난 좋게 보지 않는다.
말이 많으면 능력과 의지가 없는 것이다 -> 처음부터 군말 없이 필수 서류 요청하고 신용정보동의받고, 대출 적합성 검사하는 게 정상이다. 자기 자랑하거나 자기처럼 공격적인 사람 없다면서 말 많은 사람은 바로 거르면 된다. 능력자는 일을 하지 입을 털지 않는다.
시간 끌거나 연락 두절인 사람은 배려심이 없다 -> 위에 말한 것처럼 바로 서류 요청하고 신용평가 하지 않으면 대출해 줄 생각이 없거나 능력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많은 지점장들은 일주일 이상 시간을 끌었는데 결국 모두 못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나마 최종 통보라도 하면 다행이고 어느 시점 이후 연락을 씹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우아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모른다. 나 같은 일개 IT개발자도 아는 사람 관계에서의 배려가 없는 것이다.
이번에 빌딩 매수하면서 5년 치의 리스크까지 감당할 수 있는 자금계획을 세우고 준비했다. 대출도 제2금융권의 높은 금리를 가정하고 계산해 놓았다. 아파트보다 레버리지 비율이 높고 거시경제 상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업용 부동산은 이렇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대출 알아본 지 10일 후에 아직 부탁 안 했던 중개사에게 연락했다. 지점장 연락처를 받고 그냥 포기하려 했다. 어차피 이미 다른 지점에서 거절당했던 은행이었고 그 은행도 현재 빌딩 대출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려운 일도 아니고 손해 볼 건 없으니 기계적으로 문자를 보냈다. 그분은 자기 지점은 지금 어려우니 근처 다른 지점을 소개해줬다. 그리고 그 지점장과 통화를 했다. 의지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난 이제 끝날 때까지 어떤 사람, 어떠한 상황도 믿지 않기에 계속 의심했다. 그러면서도 논리도 감정도 없이 내 모든 상황을 공개했다. 나의 직업, 소득금액 중 회사 주식에 대한 설명, 주주인 아내의 직업, 2년 치 리스크에 대한 자금대비까지.
목, 금요일에 수차례 통화하면서 전략과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다음 주 월요일에 건물에 대한 정식 감정평가를 진행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금액이 나와야 했다. 월요일 저녁부터 화요일 오전까지 기대 반 불안감 반으로 일을 하지 못했다. 화요일 오후 3시에 감정평가사가 평가한 금액이 나왔고 이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대출 금액과 금리가 마련됐다. 그리고 은행 심사역에게 구두 승인도 받았다고 했다. 너무 기뻤지만 법인 통장에 돈이 들어오기 전까진 믿을 수 없었다. 지금은 알게 됐지만 보통 구두 승인받았다는 얘기를 거짓말하진 않으며, 그 정도면 문제없이 승인된다고 봐야 한다. 지점장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최대한 빨리 대출을 실행하자고 했다. 난 화요일 오후 4시부터 필요한 문서 출력하고 등기소 가서 서류 뽑고, 남아있던 코인 일부도 매도하면서 초인적인 멀티플레이를 했다. 수요일 아침, 잔금일이 변경됐으므로 계약서를 고치고 구청에 부동산거래 수정신고를 한 후, 은행으로 가서 대출 서명을 했다. 필요한 작업을 미리 준비해 주셔서 아파트 대출보다 더 빠르게 끝났다. 그리고 금요일에 대출이 실행됐고 잔금을 무사히 치렀다.
안 되는 건 없다. 그 은행 그 지점에 실적이 부족해서 자금을 더 써도 되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고, 지점장이 처음 말한 대로 전략을 잘 짜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조건이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능력과 의지가 있으면 처음부터 심사역에게 가능성을 물어볼 수도 있고, 경험이 많다면 다양한 전략이 나오는 것이다. 잔금 후에 작지만 지점장, 부지점장, 차장님에게 모바일 쿠폰을 선물했다. 최악의 조건을 가정하고 있다가 일이 잘 풀리자 정말 기뻤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번에 대출 비딩 경험하면서 은행 지점장, 팀장, RM들의 대한 리뷰를 모두 노트에 적어놓았다. 이것도 나의 작은 자산이다. 그리고 빌딩 대출에 대한 각 은행별 가이드라인 및 특징도 전부 파악했다. 좋은 매물 찾기 어려운 시기에 내가 원하는 물건을 매수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데, 대출의 기적까지 일어나서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감탄사를 내뿜는다. 다음에는 빌딩 법인 중개사에 대한 얘기, 대세상승장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왜 지금 빌딩 투자를 했는지 하나씩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