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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시 Aug 28. 2024

아무도 모르는 세상

‘다른 사람들의 눈에 우리 가족은 어떻게 비칠까?’ 

20살이 넘어서 줄곧 이런 궁금증을 품고 살았습니다. 삐걱거리고 기울어진 우리 집이 밖에서 볼 때는 얼마나 더 엉망일까 생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아득해졌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제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아빠도 술을 먹지 않은 날은 일요일마다 꾸준히 교회에 참석했습니다. 엄마는 교회에서 주방장을 맡았고, 언니도 교회에 성실히 참석해 컴퓨터를 맡아 관리했습니다. 아빠도 교회 주변의 나무를 관리하고 교회 간판을 만들어주는 등 어쩌다 보니 우리 가족은 교회의 주축이라고 할 만큼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죠. 그리고 제가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할 무렵부터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게 됐습니다.

유명 대학의 제2캠퍼스에 다니게 된 저는 해당 대학의 본 캠퍼스에 다닌다는 오해를 자주 받았습니다. 그와 더불어 교회 주방에서 성심성의로 봉사하는 엄마와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와 봉사하는 언니, 그리고 교회에 작품을 몇 개나 내준 아빠, 거기에 더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걸로 알려진 저까지. 이렇게만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었을 겁니다. 교회의 몇 안되는 사람들만이 아빠가 알코올 중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일에 잠깐 보는 걸로 아빠가 알코올 중독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눈치챌 리 없고, 교회에서 늘 웃고 있는 엄마와 예배에 늘 함께 오는 저와 언니의 모습만 보면 온 가족이 매주 교회에 함께 나올 정도로 단란해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이 생긴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긴 시간을 지나 왔습니다. 함께 있는 몇 시간의 시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시간을 그들은 지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것은 그게 다일 거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지금 보고 있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 에세이 책에서 직장 상사가 갑자기 별거 아닌 일에 불같이 화를 냈다면 그 이유는 어쩌면 땅콩 알레르기가 올라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유머 섞인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이가 없는 말이지만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내는 걸 눈앞에서 보면 그 사람의 인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 사람은 방금 전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거나, 혹은 소중한 사람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을지도 모릅니다. 원래는 상대방을 충분히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인데 말이죠.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속사정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렇듯 저는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나서부터 누군가를 함부로 단정짓는 일을 경계하게 됐습니다. 교회나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행복한 가족으로 봐주는 일은 그렇지 않게 보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의 시선과 제 가족의 적나라한 모습 사이의 괴리감에 허망함과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요.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세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그건 어쩌면 같은 가족마저도 다 알 수 없는 오로지 나만의 세상이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나만이 그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지만, 비로소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보듬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저도 지금 그 길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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