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이 되면서 주변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들려오게 됐습니다. 결혼을 하는 친구들도 늘었고, 결혼이 대화의 주제가 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당연히 주변 어른들도 남자친구가 있는지 당연하게 물어봤죠.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저와는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교제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젊은 나이에 연애 한 번 해보지 않는 건 인생의 낭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연애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비혼주의자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닙니다. 절대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결혼을 통해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일이 분명 축복이고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아니까요. 하지만 가족을 꾸리는 행복 역시 어쩐지 저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저에게 있어서의 ‘가족’은 가족을 꾸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체감하게 해준 가시 울타리였나 봅니다.
누군가는 결혼을 다른 두 세계가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어렵고, 그만큼 대단한 일이라는 뜻이겠죠. 하지만 그만큼 서로 하나가 되지 못했을 때 불행해지기 쉬운 것도 결혼인 것 같습니다. 믿었던 배우자와의 결혼생활이 깨지는 과정은 선명한 상처를 남기고, 아이가 있다면 특히 그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의 불행한 결혼은 지울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결혼을 해서 서로 플러스가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스스로의 경험과 더불어 이상하게 제 주변에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언니가 그랬고, 작은 이모가 그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혼하지 못해 산다는 마음으로 겨우 겨우 자식을 위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제 주변의 모든 상황들이 제게 행복한 가족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이 주는 힘을 알면서도 가족이 주는 상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을 때의 후폭풍이 얼마나 무섭고 무겁게, 그리고 끈질기게 삶을 억누를지를 잘 알아서 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던 겁니다.
저는 엄마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아빠를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이혼을 할 건지, 안 할 건지의 선택지 중 아빠와 결혼한 책임을 지고 끝까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으로 참고 견디다 마음의 병을 얻고, 이제는 그 마음의 병까지도 견디고 있는 엄마를 볼 때면 제 미래보다 현재의 엄마, 그리고 아빠, 언니를 품고 좋은 기억을 하나라도 더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제 가족을 생각하기도 버거워서 연애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관심이 없어지게 된 것도 같습니다. 정말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라면 온 정성을 쏟겠지만, 한 번에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매번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제 얘기를 하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상상하니 그것이 그저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면 결혼을 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저에게도 아직 충분한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저 자신과 가족과의 균형을 맞춰 같은 보폭으로 걸어 나가기도 아직은 조금 벅찬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렵겠지만 앞으로 시간이 흘러 언젠가 제 앞에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놓치는 일이 없도록 지금은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이 자문자답 일지를 채워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