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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시 Aug 14. 2024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솔로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주변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들려오게 됐습니다. 결혼을 하는 친구들도 늘었고, 결혼이 대화의 주제가 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당연히 주변 어른들도 남자친구가 있는지 당연하게 물어봤죠.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저와는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교제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젊은 나이에 연애 한 번 해보지 않는 건 인생의 낭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연애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비혼주의자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닙니다. 절대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결혼을 통해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일이 분명 축복이고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아니까요. 하지만 가족을 꾸리는 행복 역시 어쩐지 저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저에게 있어서의 ‘가족’은 가족을 꾸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체감하게 해준 가시 울타리였나 봅니다.

누군가는 결혼을 다른 두 세계가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어렵고, 그만큼 대단한 일이라는 뜻이겠죠. 하지만 그만큼 서로 하나가 되지 못했을 때 불행해지기 쉬운 것도 결혼인 것 같습니다. 믿었던 배우자와의 결혼생활이 깨지는 과정은 선명한 상처를 남기고, 아이가 있다면 특히 그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의 불행한 결혼은 지울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결혼을 해서 서로 플러스가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스스로의 경험과 더불어 이상하게 제 주변에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언니가 그랬고, 작은 이모가 그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혼하지 못해 산다는 마음으로 겨우 겨우 자식을 위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제 주변의 모든 상황들이 제게 행복한 가족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이 주는 힘을 알면서도 가족이 주는 상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을 때의 후폭풍이 얼마나 무섭고 무겁게, 그리고 끈질기게 삶을 억누를지를 잘 알아서 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던 겁니다.

저는 엄마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아빠를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이혼을 할 건지, 안 할 건지의 선택지 중 아빠와 결혼한 책임을 지고 끝까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으로 참고 견디다 마음의 병을 얻고, 이제는 그 마음의 병까지도 견디고 있는 엄마를 볼 때면 제 미래보다 현재의 엄마, 그리고 아빠, 언니를 품고 좋은 기억을 하나라도 더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제 가족을 생각하기도 버거워서 연애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관심이 없어지게 된 것도 같습니다. 정말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라면 온 정성을 쏟겠지만, 한 번에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매번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제 얘기를 하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상상하니 그것이 그저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면 결혼을 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저에게도 아직 충분한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저 자신과 가족과의 균형을 맞춰 같은 보폭으로 걸어 나가기도 아직은 조금 벅찬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렵겠지만 앞으로 시간이 흘러 언젠가 제 앞에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놓치는 일이 없도록 지금은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이 자문자답 일지를 채워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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