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신병동에서 치료받는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드라마에 나오는 한 명 한 명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만한 모습들이라 공감이 되면서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저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준 고마운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드라마를 보면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 여러 정신적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모습이 조금도 이상하다거나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 익숙하게 다가왔죠. 조금만 생각하니 그 이유를 금방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제 옆에 그들의 모습이 있었던 거죠.
우리 집안에 대대로 우울증 유전자가 내려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몇 년 전 일입니다. 아빠에게는 3명의 여동생과 1명의 남동생이 있어 명절이 되면 할아버지 집에는 저희 식구와 작은 아빠 식구만이 단출하게 모입니다. 작은 아빠에게는 저와 비슷한 또래인 아들과 그 밑에 쌍둥이 남매가 있어서 그래도 꽤 나름 북적이는 분위기였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 첫째가 할아버지 집에 오지 않게 됐습니다. 그렇게 몇 년 뒤에는 그 밑의 쌍둥이들마저도 거의 오지 않게 됐죠. 나중에 엄마가 작은 엄마에게 물어본 뒤에야 첫째와 쌍둥이 중 남자애가 우울증에 걸려 대학에 가지 않고 집에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첫째에게 우울 기질이 있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쌍둥이 남자애까지 우울증이라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이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생각하다가 어쩌면 우리 집안은 우울증 유전자 보유 집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허무맹랑한 생각인 것 같지만 의외로 신빙성은 있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우울증이었고, 저도 사실 대안학교에서 마음의 힘을 기르지 않았다면 우울증에 빠졌을지도 모를만한 우울 기질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아빠는 오랜 알코올중독으로 알코올성 우울증까지 겪고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후 기본적으로 2일은 방 안에서만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길게는 일주일을 밖에 나가지 않은 채 멍하니 TV를 볼 때도 종종 있습니다. 언니는 대학교 때부터 조울증 증세를 보여 수시로 엄마의 애간장을 태웠죠. 어느샌가 저에게 아빠와 언니의 상태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친척 아이들의 소식을 접하고 나서 그 심각성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신기하게 주로 남자들에게 그런 우울증 증상이 많이 보였습니다. 아빠도 그렇고, 사실 작은 아빠도 활발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정적이고 말이 없는 분이었죠. 그리고 우울증에 걸린 작은 아빠의 자식들도 모두 남자였습니다. 할아버지 쪽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우울증에 걸리기 쉬한 유전자를 타고났던 걸까요?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아빠의 뒤편에 진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할아버지였죠. 가족에게서 가족에게로 내려오는 악순환이 다른 형태로 우리 가족에게 반복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아주 최근이었습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빠를 이해하게 된 중요한 계기이기 때문에 좀 더 뒤에서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