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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와책임 Jun 22. 2024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감사하는 정신, 공동체를 살리는 생각, 진정한 존중.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출장 일정을 모두 마친 후,

금요일 저녁, 한국인으로서 안 가볼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피곤했지만 공유 자전거를 타고 갔다.


평화로운 워싱턴의 하늘


도착하니 웬걸, 사람이 정말 많았다. 한여름의 금요일 밤인데, 다들 불금을 즐겨야 할 시간에 뭘지 싶었다.


금요일 밤.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우리의 역사를 같은 바운더리 안에서 기억하고 있었다.

가서 물어보니, 두 그룹이 방문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참전용사단체 일부와, 현장학습을 나온 중학생들 일부.

"알지도 못했던 나라, 만나보지도 못했던 이들을 위해 국가의 부름에 답한 아들딸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스카우트 제복을 입은 한 강사 분이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학생들의 인솔자가 학생들을 이분 앞으로 인도했다. 강사는 설명을 시작했다.


"The Korean War is known as the forgotten war."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설명의 요지는 이러했다.

"2차 대전 후,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분할 점령 후 남북에 정부가 들어섰는데, 스탈린에게 고무된 김일성이 남한을 침략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미온적이었던 처음의 입장을 돌이켜, 참전을 지시했다. 남한은 부산까지 밀렸으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인천에 상륙하여 반격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원폭 투하를 건의했다 해임되었다. 장진호에서 수많은 이들이 전사했다......"


강사의 설명은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거의 완벽한 수준이었다. 나는 조용히 무리에 섞여 경청했다.


강사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설명에 한창인 미국인 강사.

"바로 옆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가면, 한반도 지도가 있습니다. 지도의 북반부는 어둠에 휩싸여 컴컴합니다. 우리가 함께 싸운 남한의 후손들은 그 남반부를 빛으로 채웠습니다. 그 대조를 보면, 우리의 선조들이 싸운 것은 옳은 선택이었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lesson)입니다. 그리고 놀랄 수 있겠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Surprisingly, the war is not over.)


강사의 설명이 끝나자 무언가 가슴속에서 끓어올라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에 박수를 쳤다. 박수를 막 치니 주변에서 모두 뒤를 돌아봤다.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전역한 예비역 육군 중위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3년간 장교로 복무하면서 합동참모본부에서 미군과 함께 일했습니다. 마침 출장 일정을 마치고 내일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잠시 여기를 들렀다가 이렇게 많은 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선조 (forefathers)들이 우리의 자유를 위해 싸워준 덕택에 자유의 유산을 물려받았고 그분들의 헌신의 증인입니다. 이 기회에 여러분들에게 대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강사님의 설명은 완벽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강사님의 설명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영상으로 남길 겨를도 없었다. 감격한 나머지 두서없이 막 말했는데, 박수가 나오고, 몇몇 학생들이 thank you를 외쳤다. 강사님이 웃으면서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힘껏 악수를 하는데 그 순간 전달되는 상호 간의 유대감이란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겸손하게 이렇게 말했다.


"We've got a better source than I do!" (저보다 더 나은 강사가 여기 있네요!)


나는 답했다.


"아닙니다. 강사님의 설명은 완벽했고, 우리의 역사를 당신의 것처럼 전달해 준 것에 respect를 보냅니다!"

 

어머님 한분이 다가오시더니, 뜻밖의 인사를 내게 건넸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당신의 복무에 감사합니다.)


이 인사를 한국인인 내게 전하는 미국인 어머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한국군에서의 내 복무가 한국 땅에서 복무하는 미군의 복무와 동일한 속성의 것이라는 인정에 기반한 인사이지 않았을까.


Common Cause, 공동의 목적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 대한 경의의 표현.

우리는 사실 많은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우리 공동체를 유지해 왔던 가치가 마구 허물어지는 시대다.

가치가 훼손되면, 감사가 사라진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의존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가 막혔던 시대. 그 시대를 극복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수많은 헌신과 희생, 슬픔과 깨짐을 기억한다. 자유를 위한 숭고한 희생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6월 호국의 달을 맞아, 살면서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인 목숨을 바치는 행위,

그 정신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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