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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와책임 Jun 08. 2024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구별하는 법

개인의 자유는 이기적 개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짜사나이에서의 한 장면.


"4번은 개인주의야."


이근 대위의 발언이었다. 사실 이 발언은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이근 대위의 잘못된 표현이었다.

만약 한국인의 정서적 맥락을 고려하여 정확히 전달하려 했다면,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4번은 이기주의야."




한국에서의 개인주의 (Individualism)는 이기주의, 자기 중심주의, 얌체 같음과 같이 안 좋은 뉘앙스를 내포하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 개인주의는, 특히 아주 건강한 개인주의는 도덕적 개인주의, 합리적 개인주의, 그리고 자유와 더불어 책임지는 개인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면서 존엄하며, 평등하고, 행복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 동시에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고, 이른바 '공화' 해야 한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흔히들 '집단'을 앞세우고 싶어 한다. 빨리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유형의 억압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지니고 있.


토론과 설득, 창의의 발현에 대한 수용, 비판에 대한 또 다른 건설적인 재 반론.

이런 것들을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을 가진 집단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억압의 정도는 강해진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사적인 자치의 주체로서의 개인'이라는 개념은 매우 낯설다.


'나의 사적 영역에서, 내가 독립적으로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운명을 결정할 주인공'으로서의 개인.


이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와 국가 공동체를 각계각층에서 지향해야 한다.


그렇다면 필요할 때 협업이 잘 안 될 텐데? 하고 많은 이들이 우려한다.
결속이 어려울 텐데? 너무 많은 자유를 주면, 방임에 이를 것 같은데 그건 어쩌지?
기업 하는 사람들, 창업하는 사람들 모두 비슷한 우려를 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사적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스스로 삶을 개척할 개인이, 주체적으로 선택을 해서
기꺼이 동참하기로 하는 그 위대한 선택의 결과이자,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의 표현이 협업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남의 눈치 봐서가 아니라, 나의 주체적 선택이 앞서는 것이다.


자유에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본질이 망각되는 사회이진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신앙인이다. 나는 예수가 선포한 복음을 믿게 되었고, 영적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요즘에는 종교를 가지는 이들에 대해 핀잔을 주거나, 그런 이들을 멸시하는 것이 더욱 일상화가 되어 있다.
아마 종교를 가진 이들이 온전하게 자유와 책임의 가치를 삶으로 살아냈거나, 잘 전달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종교인으로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신앙인을 자처하며, 그렇게 살아내길 희망한다.


누가 뭐라 해도, 기독교 신앙의 근간에는 '자유'가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라는 유명한 구절로 대표된다.
죄로부터의 자유를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근원적인 해방을 이야기하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 아닌가.


따라서 이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적 자유함을 얻었으니, 살아가는 각자의 위치에서도 그러한 자유와 책임을 온전히 구현하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으레 가지게 될 것이다.


그 자유가 구현되는 영역은 가장 기본적으로는 존엄한 '개인'에서부터다.
이 개인을 온전히 존중 (acknowledge) 할 수 있다면,

직장 내 갑질, 꼰대 문화, 직장 내 따돌림 등의 현상이 창의를 바탕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의 공간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기업 문화는 개인에 대한 존중만 올바로 되어도 개선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서툴다. 우리 모두가 서툴다. 쉽게, 빨리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결코 억압에서 오지 않는다. 토론과 성찰,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정-반-합을 지향하는 데에서 온다.

설득을 하고, 소통 시도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억압은 안된다.


기업가들은 명심해야 한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다르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개인이다. 이 개인을 결코 억압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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