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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보다 진한 사랑.

내 부모가 아니여도.

by 잉크 뭉치


병원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파란 하늘 위로, 단 하나 남은 구름이 바람에 실려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부드럽게 감싸고, 찬바람이 불어 머리칼이 함께 흩날렸다.


그 떠내려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문득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차 안에서는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나.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병원 옆을 지나가는 장례식장 간판이 풍경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동생들은 아직 모른다.

아버지가 피가 다른 이복 형제라는 사실을.


나도 그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겨울, 첫눈이 내리던 날, 한 추모관에서.




그날, 나는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했다.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미 있는 시간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여행의 첫 목적지가 추모관일 줄은 몰랐다.


추모관 안에서 아버지는 조용히 한 장의 사진 앞에 멈춰 섰다.


젊은 여자의 얼굴.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머뭇거리던 입술을 꾹 깨물며,
주먹을 꽉 쥔 손을 가슴 앞에서 움켜쥐었다.


결단을 내린 듯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고,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제들과 나는 엄마가 달랐다."




나는 그 말에 순간 멍해졌다.

‘엄마가 다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먼저 물어보려 했지만, 아버지는 잠시 말을 잇기 어려운 듯 보였다.


"내가 어렸을 때, 친엄마는 일찍 돌아가셔서 얼굴조차 희미하지만. 나도 네 나이쯤 되었을 때, 너희 할아버지가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단다."


아버지는 깊게 숨을 내쉬고, 무겁게 어깨를 떨궜다.


"그래도 한 번도 섭섭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

너희 할머니는 나를 친자식처럼 아끼셨고,

너 역시 그렇게 사랑받고 있으니깐."


그 말은 찬바람처럼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가 병상에 눕기 전에, 나한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있어."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 다퉜던 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동생들과의 유대를 외면했던 탓이었을까.


"너희 형제끼리는 싸우지 마라."


나는 단순히 ‘가족 간의 사이가 나쁘구나.’ 하고 넘겼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 엄마가 행복하길 바란다.
형제들도 그걸 알아줬으면 하는데..."


아버지의 떨리는 말 속에는 속내를 털어놓는 후련함과,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답답함이 섞여 있었다.


그저 그의 진심이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언젠가는 형제들도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길...
아빠는..."













차가 덜컹하고 과속방지턱을 넘었다.


백미러 너머로 본 아버지의 눈빛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렇게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피가 다르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버지는 평생 그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자신을 키워준 사람이 부모가 아니라면, 그 무엇이 부모란 말인가.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품은 사랑은 핏줄보다도 진했다.


무엇보다,

나는 오늘 병실 문틈 너머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고요한 틈 사이로 흐르는 부성애는 또렷이 전해졌다.


창밖으로 보이던 맑고 푸른 하늘은 어느새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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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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