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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by 김추억

冬柏
계절을 잊게 만드는 꽃나무 앞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늘 피고 지는 꽃들에 싸여 꽃의 귀함을 모르고 살다가
막상 꽃을 찾기 어려운 계절 앞에서
나는 비로소 꽃을 본다


주변이 다 추위 앞에서 주눅 들어 있건만
보란 듯이 찬란한 꽃을 피워낸 강인한 동백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눈과 서리, 괴로운 한파가 와야만
붉게 피어나는 동백의 숙명 탓에
잠시 엄숙해진다

마지막 들국화도 다 지고
화려한 채색의 단풍도 다 떨어져
낙엽만이 나뒹구는 메마른 계절

행인의 시린 마음을 달래주려는 것일까
쓸쓸함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동백은
지나치게 애를 썼다

삶의 미련을 두고
하나 둘 꽃잎이 떨어져도 되건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한 꽃봉오리가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송두리째 떨어진다

다시 한번 꽃을 피우려는 듯
온기가 식어버린 냉기의 땅을
따뜻하고 뜨거운 빛으로 물들인다

동백 앞에서 눈을 감고 하는 행인의 다짐,
찬 서리에 결코 시들지 않는
동백꽃이 되련다
피울 수 없는 중에 꽃을 피우리라

송두리째 낙화해도 좋으리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며
대지를 붉게 덮는 저 처연한 동백이 되련다



2024.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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