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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추억 Jan 09. 2025

이 순간 / 피천득


이 순간 /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 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이 순간/ 김추억


pm11:44
이 순간 내가
인공위성일지도 모르는
유난히 빛나는 별을 보았고


다소 비장한 귀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1악장을 듣고 있다


가장 친한 친구인 나와 함께
머릿속 카페 구석에서 즐겁게 이야길 나누며
피천득의 시를 쓰고
또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끄적이고 있다


나도 허무하지 않다고 의미를 부여잡고 있다
이 순간 내가 말이다


피천득 시인이 먼저 태어나서
내 詩를 하나 뺏겼다


저건 나의 시였는데
늦게 태어나서 시 하나를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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